‘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라는 부재가 달려 있다. 가능성이라. 어떠한 가능성을 의미 하는 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껏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참으로 보기 어려웠던 것이 바로 ‘가능성’ 아니었을까. 하지만 2016년 이 땅의 민중은, 우리 시민은 철벽과 같았던 비정상의 문을 기어이 깨부수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 끝에서 가능성이란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

정치는 본래 깨끗함, 고결함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은 존재일 것이다. 권력이라는, 모든 이들이 갈망하지만, 결국 소수만이 움켜쥘 수 있는 그것을 놓고 다투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으로 정치가 끝은 아니다. 권력을 어떻게 분배하는가, 어떠한 가치와 기준에 따라, 정의와 소신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에게 분배하느냐가 정치의 결정적인 권한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치에 신물을 느껴온 것은, 권력을 움켜쥐는 과정에만 관심을 먼저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 박상훈, 『정치의 발견』, 폴리테이아, 2011. 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제 대선이 그야말로 코앞이다. 박근혜라 쓰고, 적폐라 읽는 대상이 사라졌어도, 정작 사라진 것은 박근혜일 뿐, 적폐는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음을 느낀다. 명색이 대선후보라는 어떤 이는 또 다른 이름의 적폐가 되어 유령처럼 서성이다, 어느 사이 다시금 국민들을 겁박하고 있다. 이게 적폐가 아니면 무엇이 적폐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믿는 이유는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경험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새삼스레 정치의 힘과 위험을 동시에 절감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근거나 희망을 좇아 선택했던 단 한 번이 얼마나 많은 후과를 낳는지 우리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다.

실재 우리의 삶 자체가 위협받았고, 불안과 공포에 눌려 살아왔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허상 속에 우리는 하나 둘 자유를 빼앗겼고,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신 상상을 초월하는 무모한 권력의 남용으로 강이 파헤쳐지고, 남북관계는 끝장이 나버렸다. 경제도 추락을 거듭했다. 우리는 후회밖에 남지 않을 선택을 한 것이었고, 그것을 되돌리기 위해 오랜 시간 거리에 나서야만 했다.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고, 교훈을 얻었다.

우습지만, 그것 역시 민주주의였다. 갈등의 증폭과 끝내는 폭발. 갈등이 없다면, 저자의 말대로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으로 인해 불러 들여진 정치체제’이다. 갈등이 없는 곳은 전제주의 국가일 것이다. 우리가 추운 겨울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우리 스스로 이 땅은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곳임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2017년 5월,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한다.

‘과연 정치는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며, 어떤 소명을 가진 이들이 나서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땅에서 진보 정치를 꿈꾸는 이들은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어떠한 실력을 키워야 할까. 이들은 보수와 어떻게 경쟁해야 할까, 아니면 보수 자체를 지금껏 그래왔듯 일방적으로 무시하면 될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의 의도이자 목적이다. “정치는 다 더러워” “그놈이 그놈” “더러운 쓰레기만 한가득 모인 여의도판”이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더러운 곳에 뛰어들어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지닌 집단과의 경쟁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바로 진보 정치를 꿈꾸는 이들의 목표이자 역할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으면, 결국 직접 민주주의가 발현하게 된다. 지난 촛불이 그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광장의 순수한 열정만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실천할 순 없다. 저자는 이 땅의 진보 세력들이 좋은 정당이 되고, 집권하여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의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공감한다. “‘직접성’의 가치는 대의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발전시키면서 그 기초 위에서 다양한 시민 참여의 실험과 제도를 창조적으로 모색하고 보완해 가자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타당하다.

최근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약진에서 알 수 있듯, 유권자들은,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다른 대선 후보, 차마 이름을 거론하기조차 불쾌한 누구 역시 지지율이 상승 중이라고 하지만, 그건 조금 차원이 다른 문제 같고. 암튼 진보 세력 역시 ‘정치 엘리트를 배출할 수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지지자를 대규모로 결집’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이 원하는, 민중이 바라는 꿈과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국민은 지지하고, 선택할 것이다. 그래야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권력의 정의로운 분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을 깨버리고 나와 바른정당을 만들었던 이들 중 10여 명이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정치적 소신이나 가치관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그저 다만 살기 위함이었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조롱했다. 그들이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워도 그것이 치졸한 거짓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두 번 더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적 정당성과 명분은 이미 사라졌다. 어쩌면 대한민국 보수 자멸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정치가 더러운 것임을, 온갖 음모와 협잡의 소굴인 것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또한 뚜렷한 소명의식을 갖추고 있는 이들은 정치판에 뛰어들어야 한다. 정치가 더럽다고 피한다면, 여전히 그곳은 더러운 채 머물 것이다. 끝까지 썩어버릴 것이다.

지난해와 최근 우리 정치의 모습을 보면서,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낀다. 내가 이렇게 편협한 놈이었나,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나의 분노 게이지를 상승케 하는 이들이라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그들을 부정하는 순간, 나 역시 전제주의에 매몰되는 것이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셈이다. 때로는 극한의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지만, 상대를 악마화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국민들을 우습게 생각하는, 터무니없는 오만함도 버려야 한다. 물론 국민들 역시 스스로 전지전능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정치인들이 사안에 따라 ‘위대한 시민을 칭송하는 일과 욕망에 빠진 시민을 탓하는 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행동’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비교적 용이하게 쓰인 책이지만, 세 번을 거듭 읽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스스로 정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어떠한 정의를 내리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 역시 편협함 속에 파묻혀 정치적 신념과 입장이 다른 이들을 악마화하지는 않았는지, 살기를 느끼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보았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어렵고도 위대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것이 바로 정치에서의 ‘타협’이다.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타협은 협잡이나 부당한 거래와는 다르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이상을 버리는 것과도 다르다. 민주주의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타협임을 새삼 느낀다.

개정 3판이 나왔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읽은 책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기존 진보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애정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선 후보는커녕 국회의원 한 명 없는 군소정당원의 한 명으로서, 나 역시 진보 정치인들의 약진을 기원한다. 그리고 부디 국민이 국민답게 투표하고, 정치인이 정치인답게 봉사하는, 상식적인 사회가 앞당겨지기를 바란다.

일독을 권한다.

(수정,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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