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1> 2017년 4월 19일 통일부 A 과장
"조 기자님, 자꾸 전화드립니다. 고쳐줄 때까지 밤늦게라도 전화할 거에요. 어디세요? 어디까지 가셨어요? 저는 사무실입니다. 돌아오시죠." "수정이 안되면 기사 삭제해줄 수 있어요?"

<상황 2> 2017년 4월 20일 통일부 B 과장
"제목을 좀 바꿔주세요. 내용도 추가해주세요. 균형있게 써주셔야 그게 팩트죠."

지난 이틀동안 본 기자에게 벌어진 일이다. 19일에 있던 상황은 북한에 투자한 경헙기업인들이 정부의 지원대책을 요구하다, 통일부 장관이 없는 장관실을 2시간 가까이 점거하며 농성하던 일을 기사로 담아낸 데 대한 통일부 직원의 끊임없는 항의전화였다. 

주인없는 방에 객이 두 시간 동안 있는 상황을 '점거'라고 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 자리를 떠나지 않은 행위를 '농성'이라 기사로 썼지만, 통일부는 끝까지 '점거', '농성'이라는 단어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늦은 시각 퇴근하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은 사무실에 있으니 돌아오라는 통일부 직원의 수화기너머 목소리에 넋이 나간 사이, 또다시 걸려온 전화로 기사를 삭제해달라는 요청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자의 기사에 이래라저래라하는 통일부의 깐죽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맘을 돌릴새도 없이 이튿날 20일, 또다른 통일부 직원은 '팩트'를 운운하며 기사에 딴지를 걸어왔다.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불거진 '북한 주적론'에 대한 통일부 당국자의 설명을 기자가 왜곡했다는 식이었다.

'북한은 평화와 교류협력대상'이라는 당국자의 발언을 기사로 썼을 뿐인데, '북한은 적이자 동반자'라고 '균형있게' 적지 않았기에 '팩트'가 아니라는 통일부 직원의 핀잔과 수정요구는 자괴감을 불러왔다.

이틀동안 벌어진 통일부의 기사에 대한 핀잔은 기자 개인을 떠나 언론통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떼쓰면 기사는 고쳐지고, 삭제될 수있다는 인식이 통일부에 팽배해 있다고 받아들여진다.

기자는 현실을 통찰하고 자신의 언어로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양념같은 존재이다. 

그런 기자의 직업정신을 통일부는 한낱 통제대상으로 치부한 이틀간 상황은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리고 2000년 6.15선언과 함께 탄생한 <통일뉴스>의 딸깍발이같은 '통일정론지'의 사시를  짓밟는 행태는 용납대상이 아니다.

이틀간 벌어진 상황은 일면 기자 개인의 일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촛불민심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린 역사를 통일부가 역행하고 있다고 거창하게 의미부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동안 허송세월만 보낸 통일부가 기자의 기사를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해도 된다고 생각해왔다면 지금이라도 버려야 한다. 비판과 감시의 목소리는 통제가능대상이 아니다. 

이제 이 정부는 18일밖에 남지않았다. 언론을 통제하려 하기 전에 정말로 '교류협력의 대상'인 북한을 상대로 어떤 정책을 만들고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시켜나가야 할 지 본연의 역할에 통일부는 충실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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