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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첫발 내딛다’<산행기>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1구간
전용정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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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8  2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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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정 /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대장

산행일자: 2017년 4월 9일(일)
산행코스: 고기리-노치마을-수정봉-입망치-여원재(8.63Km)
산행인원: 19명
산행시간: 5시간 26분(안전기원제, 휴식시간 포함)

 

   
▲ 백두대간 첫 구간 들머리인 차도 고기리에서 첫 산행을 준비하고 있는 대원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땐 이렇게까지 판이 커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2년 전인가 한창 백두대간을 걷고 있을 때 이계환 대표가 “백두대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냐”고 묻기에 “산악회 따라가야 하는데 만만치가 않다”며 어려울 거라는 투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뒤 이 대표와 여기저기 함께 산행하면서 백두대간을 타고 싶다는 말을 몇 차례 하기에 ‘많이 하고 싶은가 보다’고 생각하고 기능한 방법을 생각해보니 결국 내가 안내하여, 산행초보자도 같이하는 방법으로, 주위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둘 이야기하면서 백두대간 산행계획을 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날로 악화되는 남북관계로 인해 우리의 절망감이 극에 이를 즈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고, 급기야 타오른 촛불은 답답한 우리들 가슴에 숨통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하여 백두대간 종주는 진부령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백두산까지 가야만 되는 당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야 말았다.

4월 9일 백두대간 첫 산행날이다. 산행 전날 안전기원제 관련 물품을 이것저것 구입하고, 집사람은 전을 만들어놓고 배낭도 대충 꾸리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 산행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간단히 씻고, 배낭에 물과 전을 담은 통을 넣고 집을 나선다. 새벽공기가 이젠 별로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날씨는 산행하기 좋을 것 같다. 환승역인 신대방역엔 일요일 새벽인데도 사람이 꽤 많다. 모두 서민들 옷차림인데 휴일 이른 새벽에 일 나가는 사람들이 이리 많단 말인가. 

오전 6시 10분경 구로역에 도착하니 역사 저술가인 임영태 선생으로부터 “이제야 일어나서 못가니 미안하다”는 문자메시지가 온다. 곧이어 후배 한명도 전날 사드 반대 집회로 성주 소성리에 갔다 새벽에야 도착했다며 못 간다는 카톡을 보내온다. 어라 조금 있으니 한덕이는 이제야 일어났다고 하면서 택시 타고 사당으로 곧바로 가겠다고 한다. “아! 첫날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더러운 성질 속으로 삼키며 잘 될 거야, 주문을 외쳐 본다. 첫 승차지인 구로에 도착해 마음을 달래던 중에 이지련 선배께서 시루떡 두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무거운 시루떡을 들고 오신 선배를 보니 마음이 약간 정리된다.

9명에서 6명으로 줄어든 구로팀 모두가 타고 드디어 최종 승차지인 사당역으로 출발. 버스가 사당역 사거리 가까이 가니 셀 수도 없는 산악회 버스가 길가에 줄지어 서 있다. 1번 출구 앞에 모여 있던 일행을 손짓해 불러 작전하듯 태우고 드디어 고속도로를 향해 출발한다. 마지막으로 죽전에서 두 명을 태워야 하는데 죽전정류장도 산악회 버스 수십 대가 줄지어 있다. 버스타기 쉽도록, 뒤에 와 있으라 했는데 천천히 가도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정류장엔 진입도 못하고 4차로에 버스를 세워 찾아보니 뒤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두 사람. 못보고 버스가 앞으로 지나간 것이다. 아이고 미안해라.

이렇게 출발부터 전쟁 같은 탑승을 마치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다음부턴 죽전이 아니라 새로 생긴 동천정류장에서 타기로 했다. 사당팀은 1번 출구 앞에서 모여 있다가 버스가 보이면 잽싸게 타면 될 것이고. 

   
▲ 이날 산행의 정상인 수정봉에 오른 부자(조한덕 군과 아들 민성).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이제 19명 모두 탔으니,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몇 분 있어 대원들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던 중 우리팀의 마스코트가 될 조한덕 군의 둘째 아들인 민성군(초등학교 3년)이 “제 직업은 학생입니다”라고 하여 일행들에게 웃음꽃을 선사한다. 이어 백두대간 전체 일정과 첫 구간 설명을 마치고 피곤한 눈을 잠깐 붙였다. 잠깐 잔 거 같은데 깨어보니 버스는 어느덧 지리산구룡탐방센타를 지나쳐 가고 있다. 구룡계곡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니 이곳이 남쪽이란 실감이 났다. 주천 쪽으로 오니 지리산둘레길 팀들이 막 버스에서 내리고 있다. 주천은 운봉까지 이어진 지리산 둘레길 1구간 시작 지점이다.

몇 년 전 집사람과 함께 주천에서 인월까지 지리산 둘레길 1-2구간을 걸었던 생각이 난다. 여름휴가 기간이었는데 여름철이고 땡볕이라 그런지 둘레길에서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했었다. 여름에 둘레길 걷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역시 봄과 가을이 제일 좋다. 하지만 산행은 계절이나 날씨를 가리지 않고 다녔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언제든 좋았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운치가 있고, 눈이 오면 눈 오는 대로 좋다. 대체로 우리나라 산은 산행준비만 철저히 하면 못갈 곳이 거의 없다.     

11시 드디어 첫 구간 들머리에 도착했다. 지리산 천왕봉이 백두대간 출발점인데 지리산이 4월말까지 산불방지 기간으로 입산통제여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곳 고기리에서 첫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올해 1월에 백두대간 설명회를 하고 이후 삼각산, 태백산을 비롯 5회에 걸친 준비산행 끝에 드디어 대장정의 첫 구간 들머리에 내려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버스가 들머리를 몇 백 미터 지나쳤다. 이곳은 그동안 백두대간을 하면서 그냥 지나쳐 왔지 들머리로 가는 것은 처음이라 고리봉에서 내려와 차도와 만나는 지점을 놓친 것이다. 되돌아가면 이정표가 나올 텐데 어차피 나중에 성삼재-고기리 구간을 하게 되면 이곳을 다시 오기 때문에 되돌아가지 않고 그냥 진행하기로 마음먹고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대원들에게 모이라 하니 모두 어리둥절해 한다. 아마 백두대간의 시작이 차도라고 하니 조금 황당했던 것 같다. 이곳은 백두대간에서 유일한 차도다. 지리산 서북능선 고리봉에서 내려온 백두대간 줄기와 수정봉 산줄기를 이어주는 도로이다.

   
▲ 노치마을 표지석 앞에서 찰칵.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도로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20분 정도 걸어가니 노치마을 표지석이 나타난다. 백두대간이 마을을 관통하는 유일한 마을, 백두대간과 지리산 둘레길이 만나는 마을이다. 노치(盧峙)는 우리말로 갈대고개, 갈재이다. 주위에 갈대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확히는 갈대가 아니라 억새일 것이다.

마을 입구 오른쪽은 진주 남강으로 흘러드는 만수천의 발원지인 덕산저수지가 있고 왼쪽은 주천을 거쳐 구례 섬진강까지 이어지는 요천이 지나간다. 곧 이곳은 분수계(分水界)가 되는 지역이다. 백두대간을 하다보면 이런 분수계를 몇군데 지나가게 된다. 산줄기와 물줄기는 깊은 관계가 있다. 산줄기를 제대로 알려면 물줄기를 이해해야 한다.

노치마을의 역사를 살펴보니 고려 때 절이 있던 자리라 하는데 마을 뒷산 당산나무 앞에서 보니 고리봉, 만복대, 정령치, 바래봉 등 지리서북능선이 환히 보이고 마을 앞에는 너른 들이 있으니 가히 명당자리라 할만하다.

   
▲ 대간소공원(쌈지공원)에서도 찰칵.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노치샘에서 물 한 잔 들이키고 본격적인 산행 시작.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노치마을은 6.25 전쟁중 빨치산 토벌 목적으로 마을 전체가 불태워졌다고 한다. 임영태 선생이 <통일뉴스> 연재글에서 “6.25를 전후해 남북한 합쳐 2백만 명 이상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면서 “우리는 무덤위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고 이야기 했듯이 이 마을도 거기에 해당되리라. 이 마을 코앞이 지리산이다.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노치마을도 현대사의 비극과 분명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대간소공원(쌈지공원)에서 잠시 사진을 찍고 마을을 돌아가니 노치샘이 나온다, 노치샘도 절이 있었던 고려 때 조성된 것이라 한다. 이어 곧바로 뒷산에 오르니 4그루의 당산소나무가 당당히 버티고 있다. 수령이 250년 된 산림청 지정 보호수다. 바로 이 소나무 앞에서 안전기원제를 지내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당산나무 앞에는 제단이 갖춰져 있어 가져온 떡과 과일, 나물, 개성인삼주 등 제물을 올리고 준비해 온 현수막도 걸어 백두대간 무사완주를 기원하는 안전기원제를 준비한다.

   
▲ 제를 올리기에 앞서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첫 산행 축사를 하고 있는 노중선 상임고문.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제를 올리기에 앞서 오동진 대원의 사회로 진행된 자리에서 통일뉴스 상임고문이신 노중선 선생님께서는 축사를 통해“오늘 시작되는 백두대간 산행은 조촐하지만 시대적 소명으로서의 그 역사적 의미가 대단히 크며, 조국의 평화적 자주통일을 염원하는 남과 북, 해외의 민족구성원 모두의 절절한 염원을 담아내는 상징적 행사이기도 하고 자주통일 촉진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어 양재덕 전 한국노동운동협의회 의장님께서 “계획된 일정이 끝나면 바로 38선을 넘어 종주하고, 통일뉴스가 제일 먼저 통일소식을 전하길 바란다”며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의 대선배님께서 함께 오셔서 이렇게 축하와 격려를 해주시니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 안전기원제가 시작되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두 분의 말씀이 끝난 후 일행 모두는 마침 이날이 인혁당 사건 42주기이라 4.9통일열사들을 기리는 묵념을 하며 간단히 사전행사를 마치고, 종주대 단장인 이계환 통일뉴스 대표가 첫잔을 올리며 안전기원제가 시작되었다.

한참 제를 진행하는데 밑에서 웬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속으로 아차! 싶은 마음이 들어 서둘러 내려가는데, 김지영 원장님께서는 벌써 지게를 진 할아버지 앞에 서 계신다. 할아버지께 미리 말씀을 못 드려 죄송하다고 하니, 밭일을 하다 좋은 일 하는 것 같아 보러 온 거라 하신다. 연세를 여쭈어보니 90세라 하신다.

   
▲ 지게를 진 90세 할아버지. 밭일을 하다 좋은 일 하는 것 같아 보러 온 거라 하신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다행이라 여기고 제를 진행하는 곳에 다시 올라왔는데 곧이어 큰 소리가 들려 내려가니 이장님이라는 분이 오셔서 이곳은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라 외지인이 함부로 제를 올리는 곳이 아니라며 꾸짖는 것이 아닌가. 몰라서 그랬다며 죄송하다고 하니 옆에 계신 90세 노인께서 몰라서 그랬으니 괜찮다고 무마해 주신다. 참 너그러우신 노인이시다.

돌아와 노치마을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다 보니 이 노인의 사진이 나온다. 마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집(당산나무와 제일 가까운 집)에 사시는 데 존함이 박정봉이라는 분이다. 6.25전쟁이 끝나고 26세에 이 마을에 들어와 사셨다고 한다. 마을 유래가 궁금한 사람이 찾아오면 집으로 불러 먹을 것을 대접하면서 친절하게 이야기 해주는 기사가 나온다.

노치마을 당산제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니 “옛날 노치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민씨들이 들어와 살았는데 그들 중에 짚신을 만들어 팔았던 가난한 거지가 있었다. 추운 겨울에 거지가 죽자, 동네 사람들이 그를 묻어 주려고 하였으나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묻을 만한 곳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관이 하나 들어갈 정도로 눈이 녹아 있는 땅을 발견하고 그곳에 묻어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었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이 산에 보답하기 위해서 음력 1월 1일 밤 12시에 주산제(主山祭), 곧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

그 후 노치마을 당산제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월 1일에 지냈는데, 몇 년 전 자손이 없던 마을 노인 두 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전답을 동네 당산답으로 기증을 하여, 마을 주민들이 두 노인을 위해 해마다 7월 15일에 제사를 지내다가, 3년 전부터 당산제를 7월 백중으로 옮겨서 지내게 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노치마을 당산제 [蘆峙-堂山祭]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고 나온다.

여하튼 이 마을은 백두대간 산꾼들이나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마을이다.

   
▲ 축문 낭독에 대원 모두가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안전기원제에서는 백선기 부천시민교육센터 이사장이 낭독한 축문이 인상적이었다. 백 이사장은 낭랑한 목소리로 “이제 막힌 산과 끊어진 강을 이어 한반도 백두대간의 혈맥이 천지사방으로 달통하여/저 멀리 제주도의 한라산과 백록담에서 뻗어 나온 남녘의 봄바람이 지리산 천왕봉을 자즌모리로 몰아치고/속리산 태백산 소백산을 어루만져 오대산 설악산 금강산을 지쳐 올라/백두산 영봉을 휘몰이로 감아치니/......”하며 읊조리자 대원들은 물론 산천초목도 숙연해지는 것 같았다. 대원 모두에게서 “축문이 명문이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 안전기원제 후 4그루의 당산소나무 앞에서 찰칵.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안전기원제 후 식사시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제를 무사히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각자 도시락을 펼치니 홍어회, 쑥된장국 등 진수성찬이 펼쳐진다. 모두들 소풍 온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 중에 누군가 갖고 온 개성인삼술에다 보드카까지 먹고 나니 제를 지내며 먹은 막걸리까지 짬뽕이 되어 가뜩이나 술이 약한데 취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점심식사를 즐겁게 마치고 오늘 산행의 제일 높은 곳 수정봉을 향해 오른다. 수정봉까지 1.8Km가 계속 오르막인데 술기운에 호흡도 가빠지고 날씨도 봄날이라 땀이 많이 난다. 그러나 소나무 숲속에 난 호젓한 이 길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소나무 숲길은 여원재까지 이어진다.

   
▲ 이날 첫구간 산행은 온통 소나무 숲길이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소나무 숲에서 바람을 맞으며 즐거운 산행.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나무 숲길이다. 누군가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보다 좋다고 한다. 백두대간을 하다보면 삼척지역에 금강소나무 숲길이 있는데 나무는 크지만 길이도 짧고 분위기는 이곳만 못한 것 같다. 다시 와 보고 싶은 한적하고 편안한 길이다.    

한 시간여를 올라 수정봉에 도착. 금강산에도 수정봉이 있는데 이름의 유래가 비슷하다. 이계환 대표는 6.15산악회에서 2008년 1월 금강산에 갔을 당시를 떠 올리며 “금강산에 위치한 수정봉에 오르니 주변이 반짝거려 북측 안내원에게 ‘진짜 수정이 맞냐’고 물었더니 ‘진짜 수정이다’”고 말해줬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곳 수정봉도 옛날에 산 중턱에서 수정을 생산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정봉(水晶峰). 참 이쁜 이름이다. 오늘 처음 온 신화영 씨 친구 이름이 이수정이다. 이수정 씨도 미인이던데, 참 좋은 인연이라고 해야겠다.

   
▲ 첫구간의 정상인 수정봉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금강산에 비로봉이 있고 소백산 정상, 치악산 정상도 비로봉이다. 지리산도 옛날엔 두류산이라 불렸는데 북한에도 두류산이 몇 군데 있다. 이외에도 남과 북에는 같은 이름을 쓰는 산이 꽤 많이 있다. 분단된 지 72년이나 되었지만 남과 북은 체제의 이질감보다 수천 년 간 형성된 민족적 동질성이 훨씬 더 크고 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수정봉에서 쉬다보니 땀이 식어 약간의 한기가 느껴진다. 높이가 800m가 넘다보니 역시 밑에 와는 공기가 다르다. 잠시 쉰 후 입망치를 향해 내려간다. 등산을 하다보면 고개에 치(峙), 현(峴), 령(嶺), 재 등이 붙어 있는데, 다 같이 고개를 뜻하는 말이다. 정확한 구분은 어렵고 대체로 큰 고개는 령(嶺), 작은 고개를 현(峴)이라 부르며 치(峙)는 일제 때 많이 쓰였다가 현대에 와서는 우리말인 ‘재’를 많이 붙인다고 한다. 입망치도 어원을 찾다보면 우리말이 있을 것이다.

입망치를 지나면 다시 700여 미터에 이르는 봉우리를 올라야 한다. 앞서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김지영 원장님께서 좀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 몇 차례 다녔던 준비산행보다 비교적 쉬운 코스인데 오늘 컨디션이 안 좋으신 것 같다. 노중선 선생님께서는 걱정했던 것보다 잘 걸으신다. 양재덕 의장님이야 워낙 산엘 자주 다니시니 웬만한 젊은이보다 산행실력이 좋으시다.

   
▲ 왼쪽 여원치 민박을 지나며 첫산행 무사 완주.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이 봉우리에서 2Km만 내려가면 여원재가 나온다. 20여분을 내려가니 주지사 가는 임도길이 나온다. 임도를 질러 산길로 접어들어 내려가니 빨간 지붕의 여원치 민박이 보인다. 드디어 다 왔다.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가 밭일을 하다 왔는지 우리를 보고 혹시 들르나 싶어 유심히 쳐다본다.

2년 전 백두대간 산행 중에 이 집에서 뒤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아주머니 인심이 후했던 것 같다. 여원치 민박은 대간꾼들이 잠깐 들러 막걸리를 한잔하고 가거나 하루씩 묵어가는 집이다. 백두대간에는 이 같은 산장을 몇 군데 만날 수 있다.

   
▲ 운성대장군이라 쓰인 석물이 서있는 날머리에서 백두대간 첫 구간 무사 완주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오후 4시 20분경 대원들은 운성대장군이라 쓰인 석물이 서있는 날머리에서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백두대간 첫 구간 산행을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백두대간은 누구든 할 수 있지만 또한 누구나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백두대간을 타기가 의지와 체력, 시간에 있어 만만치 않음을 강조한 말이리라. 그런 백두대간 대장정의 첫발을 오늘 우리는 당당히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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