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미중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예사롭지 않음은 미중 정상회담이 끝난 후 공동보도문이 나오지 않은 데서 출발한다. 트럼프 정부가 북핵 이슈를 미중 정상회담의 중요한 의제임을 이미 공공연하게 밝혔기 때문에 공동보도문이 나오지 않은 것은 북핵 이슈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간 것이며, 그들의 합의 못한 내용은 무엇인가?
 
미중 정상회담을 들여다 볼 겨를도 없이 시리아 폭격이 북한에 대한 경고 성격을 갖고 있다는 소식, 미국의 주요 방송사 간판 앵커와 저명한 종군 기자가 한국에서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정적으로 미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회항 소식이 전해지면서 ‘북폭론’까지 일고 있는 형국이다. 애초 싱가포르에서 호주로의 항해가 계획되었던 칼빈슨호가 다시 한반도로 방향을 돌렸다는 분명 심상치 않은 소식이다. 이미 칼빈슨호는 지난 3월 한미연합군사연습에 참여했다. 훈련에 참여했던 미항모가 다시 한반도를 찾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트럼프 정부는 북폭을 기획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트럼프 정부의 북폭 기획은 어떻게 현실화되는가? 그리고 북폭이 현실화된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칼빈슨호의 회항과 대북 강경발언, 이미 한반도는 전쟁 국면

칼빈슨호의 회항과 더불어 미국 고위 관료들의 대북 강경한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정부는 대북 정책 재검토를 완료했다. 그와 더불어 나온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이 하지 않으면 미국이 직접 하겠다”는 발언이었다. 미중 정상회담 직후 틸러슨 국무장관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상황이 무언가 조치가 필요할 만큼의 위협적인 것”임을 시진핑 주석 역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같은 시진핑의 태도를 틸러슨은 중국 역시 ‘무언가 조치가 필요한 상황’임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틸러슨이 말한 조치는 ‘군사적 조치’로 해석된다. 칼빈슨호의 회항 소식뿐 아니라 미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한반도 핵무기 배치’, ‘김정은 제거 작전’까지 포함된 대북 정책을 건의했다는 NBC의 보도가 동시에 나왔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칼빈슨호의 한반도 재배치가 북한 경고용이며 따라서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정세현 전 장관 역시 북한이 시리아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시리아에 대한 폭격을 감행한 것처럼 북한에 대한 폭격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전문가의 분석도, 정세현 전 장관의 전망도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그 같은 일반적인 분석은 현실적이지 않다. 한반도에는 정전시 혹은 전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직접적인 군사적 대치, 군사력 사용 의지가 표출되는 순간 한반도는 정전시에서 전시로 전환되는 특수한 지역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이렇다 할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연이어 터져 나오는 트럼프 정부 고위 인사들의 대북 강경발언 그리고 예정에 없던 칼빈슨호의 회항은 한반도가 사실상 전쟁 국면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정전시와 전시 밖에 존재하지 않는 한반도 상황에서 전쟁은 선전포고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선제 폭격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군사적 대치, 긴장감의 고조 자체가 이미 전쟁 국면인 것이다. 폭격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자체로 한반도는 전쟁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강경해진 이유

미국 정부 관계자들의 강경한 발언, 칼빈슨호의 회항으로 대표되는 군사적 움직임은 분명 대북 경고용 성격을 갖는다. 즉 북한의 행동을 변경시키기 위한 압박용이다.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고 북한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며, 레드라인을 넘으면 군사옵션을 현실화하겠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은 ‘북한의 ICBM’ 발사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ICBM을 발사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의 레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4월 9일 ABC 방송에 출연하여 북한의 ICBM 발사를 ‘레드 라인’으로 분명히 명시했다. ‘트럼프의 레드 라인’은 ‘트럼프 정부의 레드 라인’으로 공식화되었다. 틸러슨이 북한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시리아 공습에 대해 “국제규범을 위반하는 모든 국가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간에 협상을 할 경우 협상을 주도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보다 많은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해 군사적 옵션을 강화하는 것은 일반적인 패턴이다. 이전의 북미 협상 국면에서도 이같은 패턴은 반복해서 나타나곤 했다.
 
대단히 아이러니한 상황일 수는 있겠지만, 트럼프의 대북 정책이 완료되기 전에 미국은 중국을 통해 북한에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지난 3월 틸러슨이 중국을 마지막으로 한중일 순방을 마치고 돌아간 직후 조셉 윤 미국 6자회담 대표가 중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전용기에서 틸러슨은 동행했던 기자에게 조셉 윤의 중국 방문에 대해 “북한이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지금 가장 긴급한 일이다”라고 답변했다.
 
이 인터뷰에서 틸러슨은 “우리는 너희(북한)와 갈등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너희가 방향을 바꾸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미국의 첫 번째 스텝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것(첫 번째 스텝)은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을 북한이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강경해진 발언과 군사적 움직임은 ‘미국의 심각성을 북한에 알리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틸러슨의 인터뷰 내용은 Independent Journal Review 홈페이지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http://ijr.com/2017/03/827413-transcript-independent-journal-reviews-sit-interview-secretary-state-rex-tillerson/)

즉, 틸러슨은 중국 방문 과정에서 첫 번째 스텝으로서 ‘북한의 행동 변경’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고, 미중 정상회담 이후 두 번째 스텝으로서 ‘군사적 압박과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미중 정상회담이 공동보도문조차 발표되지 않은 이유가 확인된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추진하는 ‘대북 군사적 압박과 경고’조차도 한반도 평화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 의사를 피력했던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혼자라도 하겠다”는 기존의 강경한 입장을 피력함으로써 구체적인 대북 정책에 대해 합의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상황의 위급성, 한반도 비핵화,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틸러슨 국무장관과 왕이 외교부장이 확인한 원론적 입장에서 한 발도 진전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다.
 
북폭 위험성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북폭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지난 시기 북미 관계의 역사는 대북 경고와 압박을 목적으로 한 군사적 조치가 현실화, 실제화되었던 사례를 갖고 있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포기시킬 목적으로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를 강행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활동을 계속할 경우 외과수술식 타격을 가하겠다는 경고를 보낸 바 있다. 그러나 북미 대화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경고용 군사적 조치는 현실화되었다. 1994년 6월의 전쟁 위기가 그것이다. 미 국방부에서 실시한 전쟁 시뮬레이션 결과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피해 역시 막대할 것이라는 결론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군사 공격은 그대로 추진되었다. 지미 카터의 방북과 김일성 주석과의 극적 타결이 없었다면 대북 선제 공격은 감행되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 들어와 많은 전문가들이 대북 군사 옵션이 갖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또한 유일한 현실적 방안으로 ‘동결 대 동결’ 협상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여전히 ‘비핵화’를 강조할 뿐 ‘동결 대 동결’ 협상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미 북한은 “핵포기가 목적이라면 어떤 대화에도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천명한 바 있다.
 
미국의 메시지에 북한이 답신을 보냈는지, 답신을 보냈다면 어떤 내용의 답신을 보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보낸 메시지가 ‘핵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라면 북한은 거부 의사를 피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 역시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 해 11월 제네바에서 있었던 북미 1.5 접촉에서 “(트럼프 정부의 정책 재검토) 결과를 기다리면서 지켜볼 것”이라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의 윤곽이 드러나기 전에 북미 협상 가능성의 “문을 닫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자유아시아방송 2016년 12월 8일자 보도)
 
지금까지 북한은, 비록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로켓엔진 연소 시험‘ 등을 하기는 했으나,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 ICBM 발사를 자제해왔다. 이제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는 끝났다. 트럼프 정부와도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된다면 북한은 ‘어떠한 행동’을 취할 것이다. ‘어떠한 행동’은 신년사에서 예고했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북한의 행동 패턴으로 본다면, ICBM 발사를 자제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된다면, 북한은 멀지 않은 시기에 ICBM 발사를 감행할 것이다.
 
북한의 ICBM 발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 정부의 레드 라인이다. 이미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다”고 공언한 이상 트럼프는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해 군사적 대응을 추진할 것이다. 이 때의 군사적 대응은 경고용이 아닌 실제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가 완료된 이후, 김정은-트럼프의 진검 승부는 이제야 본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은 상대방의 행동을 변경시키기 위한 군사적 조치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1994년 6월의 위기 당시에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트럼프 정부는 군사 옵션에 대단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 백악관 NSC를 총괄하는 맥마스터 안보보좌관은 칼빈슨호의 회항을 ‘신중한(prudent)’ 결정이라고 했다. 틸러슨은 북미 대결이 격화될 경우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 도달할 수 있다”면서 대북 군사 옵션이 갖는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적대 관계에 있는 두 나라에서 협상의 여지가 보이지 않을 경우 ‘군사 옵션이 갖는 위험성’보다는 ‘적대국에 대한 불신과 적대 의사’가 지배하게 된다. 결국 상황이 악화될 경우, 비록 초기에는 경고와 압박을 목적으로 한 군사적 조치였을지라도, 그것은 실제 군사 행동으로 귀결된다. 미국의 북폭 가능성은 그것이 갖는 위험성을 미국이 인지하고 있더라도, 그래서 대단히 신중하게 접근될 지라도, 결국 현실화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은 누구의 의도에 의해 발발한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두 개의 동맹 체제’ 그리고 양 동맹 체제를 주도했던 국가들의 ‘엇갈린 의도와 오해’로 인해 발생했다. 2017년 한반도에서의 전쟁 역시 ‘엇갈린 의도와 오해’ 속에서 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한반도 위기는 대선을 비껴가지 않는다
 
한반도의 위급한 상황을 인지한 것일까? 4월 10일 문재인 후보가 “한국의 동의 없는 어떠한 선제타격도 있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시의적절한 입장 표명이었다. 유력한 대선 주자가 “모든 것을 걸고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막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 심상정, 홍준표, 유승민 등 다수의 대선 주자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역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입장 표명만으로는 전쟁 국면이 해소되지 않는다. 미국의 대북 군사 옵션을 중단시키는 효과적인 힘으로 작동할 수 없다.

“집권하면”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는 점 역시 무책임하다. 한반도 전쟁 국면은 대선을 피하지 않는다. 5월 9일 이후 미국의 대북 선제 공격을 막는 대책도 필요하지만 5월 9일 이전의 대북 선제 공격을 막는 대책 또한 강구되어야 한다. 현 시국은 1994년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 국면이다. 북미 양측이 모두 핵선제 공격을 공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1994년 위기와는 다른 차원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 후보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선 후보 원탁회의’라도 시급하게 개최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문재인 후보가 제시한 ‘긴급안보비상회의’는 의미를 갖는다. 이 자리에서 대선 후보들은 최소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대원칙’이라도 합의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해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는 데서 시작된다. 미국은 군사연습과 일체의 군사적 옵션을 중단해야 하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한다. 대선 후에 사드 배치 역시 중단하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나아가 즉각적인 북미 고위급 협상 재개를 촉구하는 것이 현 위기 상황의 본질적 해법이다. 북미 고위급 회담은 ‘동결 대 동결’로 시작하여 상호 불가침 의사를 확약하고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에서 합의했던 북미 관계 정상화 로드맵을 현실에 맞게 재설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군사적 적대 행위를 중단하기 위한 실질적 대책들을 강구함과 동시에 핵무기의 불반입(미국)과 불반출(북한), 불위협과 불사용 의사(북미)를 천명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근원적 해결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반도 위기는 대선을 비껴가지 않는다. 바로 지금,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전쟁 반대,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해 행동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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