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1861-1919)에 대한 간략한 소개이다.

1881년 신식 무기의 제조법과 조련법을 배우기 위하여 중국으로 떠났던 영선사(領選使) 일행의 제도사(製圖士)로 조석진(趙錫晋)과 더불어 톈진(天津)에서 1년 동안 견문을 넓히고 돌아왔다.
이 때 알게 된 조석진과는 평생을 친구로 사귀면서 당시 화단의 쌍벽을 이루었다.
1902년 어진도사(御眞圖寫)에 조석진과 더불어 화사(畵師)로 선발되어 화명을 높였다. 어진도사 이후 그의 화실인 경묵당(耕墨堂)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11년 왕실의 후원으로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이 설립되자 이곳에서 조석진, 김응원(金應元) 등과 같이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 서화미술원 출신으로는 이용우(李用雨), 오일영(吳一英), 이한복(李漢福), 김은호(金殷鎬), 박승무(朴勝武), 최우석(崔禹錫), 노수현(盧壽鉉), 이상범(李象範)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한국 근대 전통 회화를 이끌게 되는 대표적인 화가들이 되었다. 1919년 민족 서화가들을 중심으로 서화협회(書畵協會)가 결성되자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서화계의 지도적 인물로 추앙되었다. 회장으로 추대되기 두 달 전인 4월 초순 3·1운동과 관련되어 내란죄라는 죄명으로 경성지방법원의 예심에 회부되었다가 곧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지 못한 채 그해 사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중식 [安中植]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신식 무기의 제조법과 조련법을 배우기 위해 청나라로 파견된 영선사에서 안중식의 역할은 제도사(製圖士)였다. 제도사는 각종 군사무기의 부품 도면을 그리는 역할이다. 동시에 무기를 사용하는 모습이나 자세를 꼼꼼히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렸을 것이다.
20세 초반의 나이로 왕의 명령을 이행하는 영선사에 발탁되었다는 것은 안중식의 미술적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1902년 안중식은 왕의 어진을 그리는 화사로 선발된다. 국가미술기관인 도화서는 1896년에 실질적으로 폐지된다. 하지만 왕의 어진을 그리는 일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화원을 선발한 것이다.

조선이 망해가던 시기에 활동했던 안중식은 고종의 화가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궁중화가였다.
흔히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를 규정할 때, 삼원삼재라는 말을 쓴다.
삼재는 선비화가로 겸재 정선, 공재 윤두서, 현재 심사정이며, 삼원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을 일컫는다. 안중식은 바로 이런 삼원의 한 사람인 오원 장승업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에게 배운 제자들은 이후 현대적인 한국화의 뿌리가 되었다.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그린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 선비들의 자부심이 녹아있는 그림이다.
그 당시 선비들은 주자성리학을 바탕으로 나라를 운영하여 이상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몽유도원도]는 이러한 선비들의 이상이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꿈 이야기에는 깊은 골짜기에 있는 도원을 가르쳐 준 사람으로 산관야복(山冠野服) 차림, 즉 이름을 알 수 없는 산골의 노인이 등장한다. 하지만 안평대군 일행을 도원동으로 안내한 산관야복의 노인이 누구인지는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어부에 우연하게 발견된 무릉도원과 사람의 안내로 만나는 이상세계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도원을 알려준 산관야복의 안내자는 정치를 통해 이상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선비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몽유도원도]에는 기암괴석을 중심으로 이상세계와 그곳을 찾아가는 길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화면을 현실, 경계, 이상세계의 영역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크게는 현실과 도원(桃園)의 영역이 반반 정도이다.
이것은 현실과 이상세계의 경계가 확고하다는 의미이다. 동시에 이상세계를 찾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상세계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도연명의 무릉도원은 특별난 이야기지만 신비하지 않다. 이와 비교해 [몽유도원도]의 세계는 구체적인 기암괴석의 표현이나 복사꽃과 폭포, 개울 따위의 표현으로 한층 신비하게 느껴진다.

[십장생도]는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를 표현한 궁중회화이다. 조선의 궁궐을 장식했던 그림은 대부분 이상적인 가치를 담고 표현한다.
[십장생도]와 [몽유도원도]의 유사성과 연결고리는 아주 많다. 복숭아, 대나무, 동굴, 기암괴석 따위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십장생도]는 무릉도원 이야기를 바탕으로 [몽유도원도]의 정치철학, 백성들의 현실적 욕망을 결합하여 이상세계를 완성한 그림이다.
[십장생도]에 표현되어 있는 세상은 신비하고 황홀하며 감히 범접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림 속의 풍경과 사물은 마치 뒷동산을 보는 것처럼 현실적이고 편안하다.

[십장생도]에는 이상세계를 찾아가는 길이 없다.
대신 커다란 동굴이 그려져 있다. 동굴은 현실과 이상세계를 나누는 경계이다. 그러니까 [십장생도]의 공간은 동굴의 안쪽, 즉 이상세계만을 표현한 것이다.
무릉도원 이야기에서 도원은 잠깐 갔다 온 곳이고, [몽유도원도]에는 현실과 도원이 반반씩 그려져 있다. [십장생도]에는 드디어 동굴을 통과한 온전한 이상세계가 펼쳐진다.
그래서 현실과 이상세계는 하나가 된다. 현실이 이상이고 이상이 곧 현실인 것이다.
그만큼 이상세계가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 안중식/도원문진도(桃園問津圖)/164.4*70.4㎝/비단에 채색/1913년/리움미술관. [자료사진 - 심규섭]

 

안중식이 그린 [도원문진도 桃園問津圖]라는 그림이 있다.
안중식은 궁중화원으로 채색화에 능했다. [도원문진도]는 무릉도원 이야기를 청록산수기법, 즉 채색화로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은 무릉도원 이야기를 그대로 옮겼다. 어부가 커다란 동굴 속으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 배를 몰고 들어가는 장면과 그 위로 복사꽃이 만발한 이상세계가 표현되어 있다.

안중식이 [십장생도]를 그리지 않고 무릉도원 이야기에 근접한 그림을 그린 것은 의아하다.
안중식은 궁중화원 출신으로 [십장생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무릉도원과의 유사성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원문진도]를 그린 것은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 그림의 창작연도는 1913년이다. 대한제국, 그러니까 조선은 1910년에 망했고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식민통치를 하고 있었다.
안중식은 조선이 망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도한 화가이다. 자신을 총애하던 고종이 1919년 초에 승하하자 자신도 그해 겨울에 숨을 거두었다. 물론 3.1만세운동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일본경찰에 끌려가 정신적 육체적 수모를 당했던 이유도 있었다.

[십장생도]는 조선의 꿈과 이상을 담은 그림이다. 조선이 망했다는 것은 조선의 꿈이 없어진 것과 동일하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십장생도]를 그리는 일은 암묵적으로 금지되었을 것이다. 1920년도에 그려진 창덕궁 재건벽화에서도 [십장생도]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봉황도, 백학도, 신선도 따위로 부분적인 요소들로 그려질 뿐이었다.

또한 조선이 망한 상태에서 새로운 꿈과 세상을 찾아야했다.
이는 단순히 안중식의 개인이 아니라 나라를 잃은 지식인이나 백성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세상을 찾기 위해 발버둥 쳤다. 십승지로 도피하는 사람도 있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계몽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제국주의자처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다양한 세상을 주장했다.

[도원문진도]는 바로 이러한 세상 사람들의 처지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복사꽃과 마을이 있는 도원은 멀고 높게 표현되어 있다. 채색원근법을 적용한 도원은 마치 아지랑이처럼 손에 잡힐 듯 말 듯 화려하면서도 아련하다.
어부는 이제 복사꽃이 피어있는 강(江)의 입구에 다다랐을 뿐이다. 도원의 입구를 상징하는 커다란 동굴의 표현은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준다. 이 동굴을 통과해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도원을 만난다는 것은 기약하기 어렵다.
좁은 물길은 이어져있기도 하고 끊어져있기도 하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리다.
우리는 100여 년 전 세상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독립된 나라에 살고 있고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꿈과 희망을 쫒고 있다.
돈보다 생명이 존중받는 세상, 부정부패가 없는 세상, 공정한 규칙이 적용되는 세상, 무엇보다 민족이 하나 되는 평화로운 세상은 [도원문진도]의 도원처럼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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