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고, 알보다 조금 작은 분들도 대부분 인식하듯, 상식의 생존율이 매우 낮다.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은 지난 두 정권을 거치며 상당 부분 소멸되었고, 새로운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도, 상식의 귀환은 쉽지 않아 보인다.

가슴 아픈 세월호가 3년 만에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상식과 정의는 여전히 가라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가 사라졌다고 해서, 바뀐 것은, 어쩌면 바뀔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가 섣부른 낙관으로 흐른다면 말이다.

박노자 교수가 새삼 강조했듯, 신자유주의의 혼돈 속에서 기득권을 움켜쥔 자들은 절대 스스로 포기하거나 내놓지 않는다. 잘못은 그대로 방치될 수 없으며, 반드시 바르게 잡아야 한다는 것. 잘못을 저지른 이는 그 누가 되었든, 반드시 응당한 처벌을 받는다는, 그 빌어먹게도 당연한 사실이, 말 그대로 현실에서 확인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시급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상식 중 하나는 바로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는 뼛속까지 사무쳐 있는 수치스러운 사대주의와 맞물려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썩게 만든다. 북한에 대한 무지막지한 일방적 타자화는 급기야 민족, 민족주의에 대한 혐오, 거부로 이어진다.

얼핏 보면 대한민국은 온통 북한 전문가들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너도 나도 북한 정권에 대해 한마디씩 할 수 있고,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이 얼마나 객관적인지, 얼마나 사실에 기반 한 것인지는 필요치 않다. 이미 이분법적으로 나눈 후 바라보는 북한에 대한 평가는 심각한 오류와 편견과 증오로 점철되기 일쑤다.

게다가 개성공단마저 중단된 지금, 우리가 북한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있는,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 활발했던 남북교류로 인해 어느 정도 남과 북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부정적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만 보인다.

때문에 아예 상대를 알아가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통일과 남북문제를 연구하는 이들, 남북교류나 협력, 인도적 지원을 위해 뛰었던 활동가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도 그 현실을 보여준다. ‘탈북’ 현상은 비단 북한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언론도 잘못된 북한 인식에 일조하고 있다. 물론 그들 역시 현장취재를 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분명한 소스에 기반 한 기사를 마구 써댈 권리는 없다. 사실을 보도하는 기사에 본인 혹은 언론사의 입장이 개입되고, 단어의 사용도 갈수록 천박하다. 김정은 정권 들어 더 고약해진 북한의 언론보도, 성명과 점차 닮아가는 모습이다.

지금의 우리 언론은 분명 분단을 고착화하고 남북의 갈등을 확산시키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모든 언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각자 알아서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

어떤 정부가 새로 들어서든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모두 처음 우리가 가졌던 일말의 희망마저 참혹히 부순 바 있다. 애초 그들의 수준을 보았을 때, 섣부른 희망이었다.

하지만 차기 정부 역시 마냥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만은 없다. 물론 이전 정부보다야 어느 정도 낫겠지만, 변화된 국제 정세와 남북한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의 화해를 열망하는 우리들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슬프지만 일단 정권을 잡은 집단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로 움직이기가 훨씬 쉽다.

이 모든 결과로 인해 현재 우리가 북한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물론 그동안 나름대로 쏟아져 나온 북한 관련 논문 등 연구 성과와 언론 기사들도 일정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울러 해마다 한국 땅을 밟고 있는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유의미하다.

하지만 역시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현재 북한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과 이상을 모르는 이상, 우리는 북한을 온전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 김민종, 『북한의 청년들에게 물었습니다』, 책과나무, 2016. 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때문에 이 책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저자는 2016년 6월 평양을 방문해 어린이종합식료공장, 김일성종합대학, 장천남새협동농장,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네 그룹의 청년들을 인터뷰했다. 사전에 준비해간 설문은 남한의 청년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물어 작성했다. 즉 남한의 청년들이 북한의 청년들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총 100개로 구성된 질문의 내용은 다양하다. ‘통일을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남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 통일과 남한 관련 질문부터, ‘대학생활은 어떤가’ ‘학생의 용돈은 얼마인가’ ‘사교육은 있는가’ ‘가장 인기 있는 과목 및 학과는 무엇인가’ 등 교육과 학교 관련 질문, 그리고 직업·연애·결혼 관련, 일반생활·문화 관련, 기타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엔 한 달 수입과 지출, 이혼이나 재혼 가능 여부, 지금 북한에서 가장 핫한 것은 무엇인지, 종교 자유 여부, 평양 시내 고층아파트 가격은 얼마인지 등과 사회주의란 무엇인지, 군 복무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이웃 간에 서로 감시를 하는지, 빈부격차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생각, 남한 청년들에게 하고픈 말 등 흥미로운 질문도 적잖게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 20~30대로 구성된 인터뷰 그룹은 저자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했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겼다. 과연 북한 청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그들이 생각하는 남한, 통일은 어떤 모습일까.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시면 좋겠다.

우리가 아직까지 가장 어처구니없게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북한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점을 잊거나, 아예 모른 척 한다는 점이다. 그곳도 가정이 있고, 벗이 있으며, 연인이 서로 사랑하는,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 사는 곳’이다. 이를 외면하거나 무시한 채 바라보는 북한은 당연히 ‘괴물들의 세상’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이들은 이내 종북으로 낙인찍힌다. 그런 해괴한 논리가 살아 있는 대한민국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

김정은 체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분명 우리에게 커다란 위협이다.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을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북한의 도발을 막고, 남북이 공존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하는 것은 여전히 난망하지만, 핵이 없이도 남북이 함께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 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우리도 핵을 가지고 북한과 맞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는, 공멸을 앞당기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더더욱 지금 북한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들이 스스로 원해야 통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비로소 소통과 공감이 가능하다.

물론 평양에 거주하는, 그리고 이른 바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소속과 환경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북한 전체 인민의 생각과 얼마나 같을 수 있느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부 상투적이고 판에 박힌 대답들에서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통의 노력, 서로 알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이제 다시 우리는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심정으로 시작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그들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동서독이 통일한 뒤 순수 동독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될 때까지 약 22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우리는 과연 통일이 이뤄진 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북한 출신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을까. 다가오는 대선 앞에 여전히 종북이란 단어가 횡행하고 이념을 무기로 상대를 악마로 만들어버리는, 이 천박함 속에서 우리는 언제쯤 상식과 정의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 모든 것은 분명 만남과 접촉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 무슨 거창한 통일기구나, 선언이 아닌, 남북의 학생들이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벗으로 삼을 수 있는, 바로 그런 시간부터 통일은 꿈꾸어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Q. 통일을 왜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나요?

A. “저는 통일을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갑니다. 자기가 일단 조선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같은 민족끼리 사는 것은 뭐하고 해야 할까, ‘같은 겨레끼리 함께 살자.’ 그러니까, 민족성이란 말입니다. 민족성이 없는 사람은 통일도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조선 민족이다 하고 일단 생각했으면 통일을 해야 한다고 무조건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민족의 자주권도 보다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갈라져 있으니까 한민족이라기보다도 이질성이 많아지는데, 이런 분열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는 남남이 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픕니까?” - 어린이종합식료공장 노동자 강옥희(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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