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그림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물에는 상징이 붙어있다. 작은 사물 하나도 허투루 그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궁중회화의 정수인 [십장생도]에는 상징을 알 수 없는 요소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대나무이다.

▲ 십장생도에는 대나무가 빠짐없이 표현되어 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십장생도]는 조선시대가 추구한 이상세계를 표현한 그림이다.
소나무는 뭇 생명을, 영지는 비옥한 땅을, 구름은 좋은 기후를 상징한다.
또한 학은 하늘을 대표하는 짐승이고, 사슴은 육지를, 거북은 물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여기에 영원성을 상징하는 아침 해를 표현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라는 인문학적 가치를 표현한다.

[십장생도]는 그야말로 이상세계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특정 계급이나 계층의 인물이 없다는 말이다.
보통 왕의 상징은 용(龍)이고, 선비의 상징은 사군자라고 불리는 매화, 국화, 난초, 대나무, 매, 호랑이 따위가 있다.
하지만 용(龍)이나 호랑이, 매, 사군자 따위가 그려진 [십장생도]는 없다.
학(鶴)은 선비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십장생도]에서는 하늘과 땅을 매개하고 하늘의 대표 동물로 규정되어 있다. 만약 학을 선비의 상징으로 보면 사슴과 거북이도 특정 계급과 규정해야 하는 더 큰 문제가 나온다.
[십장생도]에 표현된 동물이나 식물은 모든 생명의 대표이다. 이는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이 그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의미이다.

아무튼 [십장생도]에는 왕을 상징하는 용이나 매화, 국화, 난초 따위의 요소는 없는데 유독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그렇지만 대나무를 선비의 상징으로 보긴 어렵다. 왕의 상징도 없는데 선비의 상징만 넣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어떤 사람은 대나무가 풀과 나무의 경계선에 있는 특별한 식물이기 때문에 [십장생도]의 요소가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지극히 도교적인 관점이다. 도교적 관점이란 미신이라는 말이다.
아무튼 [십장생도]에서 대나무의 상징이 뭔지는 도무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해석을 유보해 두었다.

대나무의 상징을 찾는 일은 [십장생도]의 연원인 도연명의 무릉도원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무릉도원 이야기에는 총 3종류의 나무가 언급된다.
복숭아나무, 대나무, 뽕나무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십장생도]에 등장하는 나무는 복숭아나무와 대나무이다.
무릉도원과 [십장생도]에서 형상의 공통점은 동굴과 복숭아나무, 대나무가 전부이다.
여기서 동굴은 이상세계와 현실세계를 연결하는 관문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또한 복숭아나무는 무릉도원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이면서 이상세계의 상징이기에 빠질 수 없다.

▲ 뽕나무와 그 열매인 오디이다. 뽕나무의 외모는 다른 나무와 비슷하다. [자료사진 - 심규섭]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뽕나무는 탈락하고 대나무가 선택되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뽕나무의 원산지는 온대·아열대 지방이며 세계에 30여 종이 있다. 나무는 3~10m 정도의 높이로 자라고 예전부터 활용가치가 높아 귀중하게 여겨진 나무이다.
우리나라에는 산상(山桑), 백상(白桑), 노상(魯桑)의 3종이 재배되고 그 중에서 백상이 가장 많이 재배된다. 집주변이나 마당에 뽕나무를 많이 심었다. 뽕나무는 누에를 키우기 위한 재배종을 많이 심는데 뽕나무 잎은 누에의 먹이로 이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뽕나무 [Mulberries] (두산백과)

우리그림에서 뽕나무를 표현한 그림에는 [일월부상도]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부상(榑桑)은 ‘동쪽에서 자라는 신선한 뽕나무’라는 뜻이다. 또한 부상은 일본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월부상도]는 궁중회화가 아니라 도교적 요소가 가득한 민화이다. 창작시기도 대략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이다.
선비들의 수묵화나 궁중회화에서는 뽕나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뽕나무에 특별한 상징이 붙어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또한 조선시대 선비들이 일본을 지칭하는 부상(榑桑)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 일월부상도/삼베에 채색/19세기/122.8*150.2/삼성미술관 리움.
일월부상도는 도교적 내용이 들어간 민화이다. 여기서 인문학적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자료사진 - 심규섭]

미술적 관점에서 보면 뽕나무는 조형성이 약하다.
복숭아나무는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 열매로 특정해서 표현한다. 실제 [십장생도]에 표현되어 있는 복숭아열매는 된장을 담글 때 사용하는 옹기 크기와 비슷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대나무는 누구라도 한번만 보면 잊지 않을 만큼 외형적 특성이 강한 나무이다. 그림에는 뾰족한 이파리와 마디가 있는 몸통으로 표현한다.
그렇지만 뽕나무는 특별히 드러낼만한 특징이 없다. 여타의 다른 나무와 구분할 수 있는 요소가 약하다는 말이다.
초기 [십장생도]에 대나무와 뽕나무를 함께 그렸다하더라도 다른 나무에 파묻혀 특성을 드러낼 수 없는 뽕나무가 도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뽕나무는 비단의 상징, 풍요의 상징이다.
뽕나무와 누에고치를 이용하여 비단을 생산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뽕나무를 기르고 누에를 치며, 비단을 뽑기 위해서는 고단한 노동이 필요하다. 백성들이 엄청난 힘들게 생산한 비단을 정작 자신들이 향유할 수 없었다. 비단은 아주 비쌌고 사치스런 옷감이기 때문이다.
외부와 차단된 채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가는 무릉도원의 사람들이 비단을 뽑아 판매하거나 입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무릉도원 이야기에 뽕나무가 등장하는 것은 안정된 삶을 드러내는 장치였을 것이다. 만약 무릉도원에 사는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렸다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십장생도]에는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는 요소는 없었다.
선비들이 추구한 이상세계는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가 넘치는 세상이었다. 상업과 무역이 발전하지 않았던 한반도에서 만들어내 낼 수 있는 최고의 세상은 청빈과 자급자족, 협력과 상생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공동체뿐이었다.
학문과 예법을 통해 인격을 높이고 명분과 분수에 맞는 정치를 하며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아가는 삶이 곧 신선의 삶이라고 여겼다.
이런 생각을 가진 조선에서 물질적 풍요를 상징하는 뽕나무는 배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 말기 외세의 침략과 세도정치에 따른 삼정이 문란해지면서 [십장생도]에도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꽃이 들어간다.
학문과 인격의 힘이 아니라 무력과 재력이 판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나무가 [십장생도]에 표현된 것은 [십장생도]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내용과 맞았기 때문이다.
보통 대나무에는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는 생태적 특징을 차용해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 붙어있다. 그래서 인격의 완성체인 군자를 상징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십장생도]에는 선비의 상징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대나무에는 선비의 상징 말고도 여러 상징이 붙어있다.

▲ 대나무 뿌리와 죽순이라는 생태적 특징 때문에 협력과 단결이라는 상징이 붙는다. [자료사진 - 심규섭]

일단 벽사(辟邪)의 상징이 있다.
대나무가 불에 타면 펑하는 큰 소리를 낸다. 나무 안에 공기층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큰 소리가 귀신을 쫒는다는 소문이 있다. 이것은 중국에서 명절이나 행사 때 폭죽을 터트려 액막이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
또한 대나무에는 협력의 상징이 있다.
중국에서는 대나무의 미덕과 관련된 우의(寓意)로 단결심 또는 의협심이 있다. 이것은 죽림의 지하에 그물처럼 얽혀 있는 그 뿌리의 긴밀한 모습에서 연유된 것이다.
일찍이 당나라 현종황제가 형제 제왕(諸王)들과 궁중의 죽림을 산책하다가 여기저기 올라오는 죽순의 무리를 가리키면서 “대나무는 정말로 일족이 힘을 합쳐서 서로 돕고 있구나. 만약 짐에게 이심(二心)을 품고 있는 자가 있으면 이것을 본받으라”고 했다 한다.

신축한 집에 대나무를 즐겨 심는 중국의 풍습도 단순히 정원수로서의 풍정을 감상하고자 하는 것뿐만 아니라 집안이 대나무가 뻗어나는 것처럼 단결해서 번창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집둘레에 대밭을 조성하는 것도 이러한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나무와 단결심·의협심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 3. 10., (주)넥서스)

대나무에 붙은 단결과 협력이라는 요소는 인문학적 가치가 높다.
척박한 현실을 이겨내고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공생공영, 협력과 상생이라는 공동체의 가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대나무의 상징은 이상세계를 표현한 무릉도원이나 [십장생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선비나 왕은 이상세계의 향유자라기보다는 정치를 통해 구현하고 만드는 사람이다.
누가 뭐래도 이상세계의 주인공은 백성을 비롯한 뭇 생명이다.
이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협력하고 단결해야 한다.
왕이나 선비와 같은 정치인, 지식인은 백성들의 단결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백성들을 설득하려면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선비들이 자기 통제와 희생을 바탕으로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을 지키고 지조와 절개, 염치를 가졌기 때문에 이상세계에 대한 꿈은 훨씬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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