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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성루에서 ‘위안부합의’와 ‘사드배치’ 까지[박근혜 정부 4년] 외교안보 정책 결산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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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4  16: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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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수준을 논하기에 앞서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라고 특정할만한 무언가가 없다. 박근혜가 대통령 임기 내내 ‘정부’라는 공적 체계와 따로 놀았고, 그의 발언도 ‘박근혜’의 생각이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4년 간 대외관계의 급격한 악화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감정적 반응이 질 낮은 정치적 계산과 화학반응하여 발생한 재난이다. 이를 국익의 관점에서 간언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책인양 포장해서 공적 체계를 통해 전파하고 집행한 참모들, 특히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 이유다. 

천안문 성루에서 사드 배치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9월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베이징 천안문 성루에 올랐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항일 전승 70돌 기념 열병식’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초강대국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 사이에서 중견국가 한국의 ‘신 균형외교’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여겨졌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박 대통령이 중국에 경도되어 있다고 강하게 우려했다. “이웃 국가인 중국과의 우호협력 관계를 고려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하는 중국이 되기를 바라고, 또 중국에서의 우리 독립 항쟁의 역사를 기리는 측면을 감안해 열병식을 포함한 전승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는 청와대의 배경 설명도 그러한 우려를 뒷받침했다. ‘친중반일’ 기조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다. 성루에 오르기 하루 전(9.2), 박 대통령은 리커창 국무원 총리를 만나 ‘10월말 11월초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이끌어냈다. 소외된 일본을 배려한 셈이다. 

나름 치밀한 행보 속에 “역대 최상”을 구가하던 한중관계는 불과 4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수소탄 실험)’을 단행한 후 시진핑 주석과의 전화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게 박 대통령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정부소식통은 “박 대통령의 배신감이 컸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시 주석과 통화 시도가 실패하자, 박 대통령은 더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1월 13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박 대통령은 “어렵고 힘들 때 손을 잡아 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라며, 중국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까지 거론했다. 2월 5일 두 정상 간 통화가 이루어졌으나, 얼어붙은 한중관계를 녹일 정도는 아니었다.

2월 7일 북한이 장거리로켓 ‘광명성’으로 지구관측위성 ‘광명성-4호’를 쏘아올리자, 한.미는 즉각 ‘사드 배치 공식 협의’를 시작했다. 사드 배치 최종 결정(7.8) -> 경북 성주 성산포대를 부지로 지정(7.13) -> 롯데골프장으로 부지 변경(9.30)을 거쳐 지난 2월 28일 롯데와 국방부 간 부지 교환 계약이 체결되고 한.미 간에 토지공여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 6일 밤에는 사드 발사대 2기를 실은 미군 C-17 수송기가 오산 미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사드 배치 관련 “단호한 반대”와 “절차 중단”을 요구해오던 중국은 중국 내 롯데마트 99곳 중 절반 이상을 영업정지하고 자국 여행사에 한국 관광 상품 판매를 금지하는 등 보복조치에 나섰다. 관영매체들은 한국산 제품 불매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단교에 준하는 상황’까지 거론되고 있다. 

진부하지만 중요한 의문은 ‘사드 배치가 과연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북한 핵.미사일 방어용이라지만 사드는 저고도(40km 이하)로 날아오는 북한의 야포와 단거리 미사일을 요격하지 못한다. 한국의 심장부인 수도권을 방어하지 못하는 무기 체계다. 반면, 사드 체계 내 X-밴드 레이더의 탐지범위는 2,000km에 달해 중국 동북부와 동부 연안의 주요 전략기지를 샅샅이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는 또한 미국이 일본과 함께 구축 중인 지역 미사일방어체계(BMD)로 한국을 편입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미국의 꾸준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 이어 초기 박근혜 정부도 사드 배치를 포함한 BMD 편입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다. 2015년 3월 11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의총에서 사드 배치 공론화를 주장하자,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었다(3NO)”고 불쾌감을 토로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중국은 “사드 배치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그리고 일본)이고, 최대 피해자는 중국과 한국”이라고 주장해왔다. 

사드 배치 결정이 졸속으로 이뤄졌음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는 현 정부가 내건 명분이 계속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2016년 1월 13일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거론했을 때는 북핵 해결에서 중국의 역할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가 강했다. 2월 7일 협의 개시 발표는 보수층 달래기 목적이 강했다. 4차 핵실험 직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7월 8일 최종 결정 발표는 6월 22일 북한의 ‘화성-10호(무수단)’ 미사일 시험발사 성공으로 한국과 일본, 괌 지역 미군기지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부각된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2월 27일 롯데이사회의 부지 교환 승인과 다음날 롯데-국방부 계약, 지난 6일 사드 체계 일부 한국 이송 등의 과정에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심판을 앞둔 국내정치적 고려가 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윤병세가 이끄는 외교부 관리들은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의 역할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고 호도했다. 김관진의 영향 하에 있는 국방부 관리들은 한미동맹 강화 카드라고 목청을 높였다. 겉만 보면, 국방부가 맞았다. 그 결과 한국은 핵을 보유한 북한 외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적까지 얻게 됐다. 사드 배치로 한미동맹이 얼마나 강화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와대 안보실장에서 물러나는 즉시 방산비리 피의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김관진이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다(소식통)”는 견해도 있다.

‘위안부 합의’와 군사정보보호협정

2013년 3월 27일 윤병세 장관은 박 대통령에게 △북핵문제의 진전을 위한 동력 강화, △한미동맹과 한중 동반자 관계의 조화.발전 및 한일관계 안정화 등을 외교부 업무방향이라고 보고했다. 사석에서 만난 한 전직 고위당국자는 “업무보고 자료를 보니 일본 정책이 없더라. 미국, 중국하고만 잘 하면 된다는 기조였다. 큰일이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일본 문제는 중국 문제이자 미국 문제로서, 미.중 사이에서 균형잡기와 직결된 문제이다.” 

그의 지적대로, 박근혜 정부 들어 대외관계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작점에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간 합의가 있다. 현 정부는 국가 간 합의이므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더불어민주당 등은 조약도 아니고 “그냥 10억엔 돈만 받았을 뿐”이라며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초기 한일관계를 잘못 설정했다. 한일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연계해버린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2011년 8월) 헌법재판소의 위안부 관련 위헌 결정의 영향이 컸다”고 해명했으나, 결정 취지가 두 문제를 연계하라는 것도 아니고 ‘위안부’ 피해자들도 그렇게 주장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보다는 2013년 2월 25일 취임 축하차 방한한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미국 남북전쟁을 예로 들어 “같은 국가에서도 역사인식이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라는 등 막말을 일삼은 데 대한 박 대통령의 ‘분노’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눈치 빠른 윤병세 장관은 이틀 뒤 “중국을 미국 다음의 외교파트너로 보고 있다”면서 “일본의 경우 호혜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중요시하지만, 역사와 관련해서는 단호히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치고나갔다. 3.1절 기념사에서 박 대통령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변화와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부상하는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 3국 협력이 절실했던 오바마 미 행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두 사안 간 연계를 끊어서 한편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꾸준히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 한일정상회담을 열어 현안문제를 논의했어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가 수용하지도, 국민들이 납득하지도 못하는 문서를 합의라고 덜컥 내놓으니 반발만 커진 것이다.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관여한 한일협정 50주년인 2015년 안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박 대통령에게 있었던 것 같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미국 외교관도 “우리는 한일관계 개선을 요구했지, 위안부 문제를 저런 식으로 처리하라고 한 적 없다”고 황당해했다. 
 
2016년 11월 23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은 ‘위안부 합의’와 사드 배치에 따른 필연적인 수순으로 여겨진다. 

2016년 12월 30일 부산 지역 시민단체들이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하면서 ‘위안부 합의’가 다시 한.일 간 현안으로 부상했다. ‘위안부 합의’는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은 인지하고, 한국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베 일본 내각은 이를 근거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면서 △주한 대사와 부산 총영사 일시 귀국, △경제고위급 회의 연기,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 등의 보복조치를 취했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은 상대가 약할 때 더 모질게 몰아붙인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당신 아니냐’는 윤병세 장관에 대한 일본의 감정도 작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윤 장관이 참모로서 대통령에게 이성적인 조언은커녕 감정에 편승해 초기 한일관계를 잘못 설정하더니, 자신이 발표한 합의가 사실상 붕괴된 이후에는 빠져나갈 구멍 찾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북 접근법의 대전환 있어야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 정부의 대외정책 변화를 관찰한 한 외교안보 전문기자는 “한국 대외정책의 근저에는 북한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놓여 있다”고 짚었다. 

그 동력이 감정이든 이념이든 계산이든 북한에 대결적 접근법을 취하면, 한국은 미국의 군사적 억제력에 더 의존하고 한미일 3국 협력의 틀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화해협력적 접근법을 취하면, 미국에 대한 의존성이 줄고 일본과 억지로 가까워지거나 중국과 멀어져야 할 이유도 없다. 

실제로, ‘위안부’ 문제와 ‘사드 배치’ 등과 관련한 박근혜 정부의 행보가 흐트러지면서 폭주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5년 12월경이다. 북한과 국제사회 간 관계 개선의 전망이 사라진 시점과 대체로 일치한다. 

2015년 8월 남북은 비무장지대 지뢰폭발사건을 계기로 판문점 협의를 거쳐 ‘8.25합의’에 이르렀고, 10월 20~26일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12월 11~12일 남북 차관급 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다. 

류윈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10월초 노동당 70주년 행사 참석차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12월 12~14일 베이징에서는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이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연 직전 모란봉악단이 전격 철수하며 북.중 관계 개선 흐름도 중단됐다.

북한은 다음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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