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설가를 꿈꾸었다가 지금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조그만 휴대용 책자를 기획하는 아버지, 그리고 호기심 많고, 무지하게 활동적인 다섯 살 아들. 이들이 도쿄에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시골 마을 이나무라가사키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

소설의 내용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웃집에 살고 있는 오누이와의 대화, 산책, 식사가 이어지고, 다음 날도 이어집니다. 정말 소소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의 이어짐.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

▲ 호사카 가즈시 저/이상술 역. 『계절의 기억』, 문학동네, 2010. 4.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하지만 왜 그럴까요. 책장을 덮고 설명하기 힘든 먹먹함이 다가옵니다. 끝없는 시간과 광활한 우주 그리고 인간의 품에 다 안을 수 없는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순응하며 또한 이웃과 함께 하는 이들의 ‘인간’다운 이야기 자체에 감동의 힘이 있었던 것일까요.

귀엽고 천진난만한 ‘구이짱’과 언제나 구이짱을 잘 보살펴주는 이웃집 누나 ‘미사짱’ 그리고 무엇이든 고치는 심부름센터 주인 ‘마쓰이 씨’와 산책을 즐기고, ‘조금 일하고 조금 돈을 버는’ 주인공. 네 사람이 엮어가는 일상은 잔잔하고 평온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여기에 감초와 같은 인물들이 몇 추가됩니다. 맘 착하고 나름 분석력이 뛰어난 게이 니카이도, 이혼 후 전 남편과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하는 닛짱과 딸 쓰보미짱. 항상 적절한 시간에 전화해, 장황하지만 즐거운 이야기를 떠들고 정작 용건은 미처 말하지 못한 채 끊는 에비노키 등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나 대화, 행동 역시 그 어떤 극단성이나 눈물을 쏙 빼놓을 만큼의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들의 삶 하나하나가 우리 모두 이해할 수 있고, 또 살아가고 있는 삶일 뿐입니다.

한적한 시골길을 걸었던 기억, 그 길을 홀로 걸었는지, 혹은 누군가와 함께 걸었는지, 희미한 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길을 걸었다는 자체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 시간이 당신에게 조금은 특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겠죠.

인간의 유한성, 설명할 수 없는 시간과 우주 그리고 자연. 희미한 슬픔과 조금은 부족하지만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우리는 유한하기에 서럽도록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유독 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삶과, 이웃들의 따뜻한 위로, 그리고 온전히 이해가 가능한 세상이 그리워지는 지금…, 특별한 경험, 특별한 독서였습니다.

나는 언젠가 몇 년이 지나 기억나는 날이 있다면 오늘 같은 날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과 함께 절벽 사이를 빠져나오는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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