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멸망케 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 중 ‘교육’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망국병이라는 표현이 진부할 만큼 대한민국은 기형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줄곧 파국으로 치달아 왔다.

최순실 사태에서 씁쓸히 목격한 것은 이른 바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민낯이었다. 한 중년 여성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그들은 시정잡배도 아니고 일반 시민도 아닌,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인들이자 최고의 관료들이었다. 유명 대학의 교수와 역시 유능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법조인 출신 관료들이 최순실의 공범들이었다.

결국 우리는 저런 괴물들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현 교육 시스템에 목을 매달고, 자신과 아이들의 삶을 탕진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일류대에 무조건 들어가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공포감은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부모들의 피땀과 골수를 빼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류대를 졸업한 이들이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을 사유화하는 데 앞장섰다. 부역자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나 모욕이 아니다. 그저 사실일 뿐이다.

여기에서 ‘통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상황은 더 우울하다. 여전히 냉전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기를 거부하는 남과 북은, 때문에 서로를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교육을 당연하다는 듯 시행해왔다. 물론 남측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일정한 변화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동안 분단의 이익을 향유해온 기득권층은 역사마저 왜곡하며 아이들에게 분단의식을 깊숙이 내재화시켜왔다.

▲ 함규진 외, 『통일 교육 어떻게 할까?』, 철수와영희, 2016. 12. [자료사진 - 통일뉴스]

책에 등장하는 “북한 사람들은 빨갱이이기 때문에 무조건 죽여야 한다, 내가 북한에서 살아야 한다면 자살할 것”이라 말하는 초등학생은 기득권 세력이 지속해온 교육의 전형적인 피해자일 것이다. 혹은 그들의 성공작일 수도 있겠다.

책은 서울교육대학교 통일 교육 석사 학위를 받은 초등학교 교사들 그리고 오랫동안 역사와 통일 교육 등에서 의미 있는 집필 활동을 해온 함규진 선생이 함께 생각해본 우리 시대 초등 통일 교육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정부(통일부)가 작성하여 일선 교육현장에 배포하고 있는 <통일 교육 지침서>를 주제로 통일 교육의 오늘과 내일을 진단했다. 일선 교육 현장에서 매일 아이들과 소통해야 하는 교사들이 느끼는 현 통일 교육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했다는 차원에서 단순한 잡담 차원을 넘어선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보통 우리는 현장의 목소리보다는 이른 바 전문가들의 단편적인 지적질에 경도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는 더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여섯 가지의 주요 키워드를 통해 현재 초등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통일 교육을 이야기한다.

먼저 통일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말해왔던 것들이 여전히 아이들에게 유효한가이다. 통일 항아리니 대박이니 하며 그동안 크게 떠들어온 것에 비해, 실상 알맹이는 너무 비약했다. 아이들에게 통일은 거추장스럽고, 쓸데없이 고통을 유발하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통일 문제에 대한 관심 제고 및 통일 의지 확립’이란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기엔 그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 통일이 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말한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단기적이고 또한 속물적이었다. 대박이란 천박한 단어가 말해주듯, 정부는 통일을 천박하게 만들어 버렸다. 물론 경제적 측면의 이익을 강조하면 아이들이 막연히 느끼는 공포를 해소하는 데 조금은 기여할 수 있다. 반면, 정확한 수치를 제시할 수 없고, 막연하고, 또한 경제적 이익이 사라졌을 때에는 어떤 정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지 등 불명확하고 무책임한 측면도 강하다. 이익이 되어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발상에 통일을 대입시킨 것이다. 더구나 그 약발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통일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통일문제에 대한 주인의식도 희박할 수밖에 없고, 통일은 어느 순간 그냥 ‘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두 번째는 ‘통일준비 역량 강화’이다. 이 정부 들어 참 지겹게도 떠들어 온 것이 바로 통일준비 역량 강화다. ‘영토와 정치, 제도적 통합을 넘어서 사회 문화적 측면의 통합까지, 즉 사람의 통일까지 이루어야 한다’는 개념인데, 이처럼 뻔뻔한 이야기가 또 없다. 정부는 그 말과는 정반대로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 크게 위축되었던 남북민간교류나 인도적 지원은 현 정부 들어 그야말로 궤멸되었다. 사람의 통일을 이뤄야 한다면서, 핵 문제를 핑계로 개성공단까지 중단시켰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통일준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통일박람회 등으로 show를 한다고 사람의 통일이 이뤄질까? 통일교육 주간에 잠깐 코스프레를 하면 아이들의 의식이 바뀔까? 헛소리에 불과하다. 때문에 일선의 교사들을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말이 안 되는 것을 가르치라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왔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문제다. 비민주적 행태들이 버젓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아울러 마치 북한을 비난하고, 저주해야만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인식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즉 민주주의와 반공을 일체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북에 대한 적개심이 당연한 진리라고 믿게 된다. 적개심의 대상이 통일의 파트너나 협력 상대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여전히 우리는 우월하고 북은 모든 측면에서 열등하다는 대결의식, 우월감이 통일 교육에 남아있다. 상대방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통일 교육에 있어 그동안 극심한 비민주주의적 행태를 보여 온 셈이다.

이밖에도 중요한 주제들을 책은 다루고 있다. ‘민족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으로서의 통일’, ‘북한과 안보 그리고 평화’, ‘북한의 실상에 대한 이해’ 등이다. 분단이 내면화되어버린 우리는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6·25전쟁의 트라우마에서 진즉 벗어나야 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밑절미삼아 더 큰 증오와 반목을 키워냈다. 북한은 오직 멸망시켜야 할 대상이고, 탈북자들은 그저 불쌍하고 보살펴 줘야 할 이방인일 뿐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우린 과연 얼마나 벗어났는가. 그리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책의 서두에는 아이들에게 통일을 이야기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사실 스스로조차 통일의 필요성이나 북한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음을 고백한다. 사실 그것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슬프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통일과 남북문제는 우리의 삶을 규정할 수 있는 핵심이지만,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억지로 잊어야 하는 불필요함이기도 하다. 어려운 시험들을 뚫고 교사가 된 이들도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도 역시 통일은 당장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통일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통일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더 이상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통일부가 존재하고, 통일교육원, 통일연구원 등이 존재하지만, 아이들에게 통일은 백일장이나 웅변대회 등을 통해 스펙을 쌓을 수 있는 무수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마저도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래전 이 나라의 교육이 땅에 떨어졌다면, 통일 교육은 지하 깊숙이 더 추락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정부의 목소리는 공허하고, 아이들의 눈빛은 차갑다. 다시 한 번 아이들에게 민족의 가치를(민족이라 하면 또 얼굴을 구기는 분들이 있겠지만 여전히 민족은 소중한 가치이다)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교육, 우열의 가치가 아닌 평등과 협력의 가치를 생각하게 해줄 수 있는 교육, 적대와 긴장, 증오와 절멸의 가치가 아닌 평화와 화해, 공존과 희망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통일 교육이 지금 우리에겐 절실하다.

통일 교육이 중요하다고 누구나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중요한 교육을 어떻게 다시 고민하고 구성할 것인가가 먼저이다. 너도나도 꿈같은 공약들을 제시하고 있는 지금, 과연 통일된 한반도를 위한 준비는 어느 정도 하고들 계신지 궁금하다. 통일교육에 대한 정확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철학과 소신을 갖춘 이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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