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후 복학한 뒤, 나는 여기 저기 휑하게 빈틈을 드러내는 학점을 보충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혔다. 그도 그럴 것이, 입대 전 밴드 생활과 학점과는 별 인연이 없는 독서로 인해 학점을 따야 할 그 시간들을 탕진해버린 것이었다.

때문에, 복학 후 수강해야 할 과목은 1,2학년에 이미 마쳤어야 할 필수과목들이 여럿 있었고, 할 수 없이 빽빽한 시간표를 짜야만 했던 것이다. 제대 후 나름 철이 들었다는 생각도 나의 빈틈없는 시간표 작성에 일익을 담당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모하게 도전한 과목이 하나 있었으니, 이는 필수과목도 아니요, 전공과목도 아닌 엉뚱한 ‘소설창작론’이었다. 국문과의 수업이었고, 난 나도 모르는 사이, 주섬주섬 책들을 챙겨 나와 강의실에 기어들어가는 것이었다.

수업의 교재는 따로 필요치 않았다. 돌아가며 학기 말까지 단편 소설을 하나씩 지어내어 이를 수업을 듣는 학우들에게 돌리고, 본인은 간단한 요약이랄까, 아니면 소설을 쓰게 된 동기 따위를 설명하면 그만이었다. 그럼 교수님은 점잖게 내용을 듣고 계시다가, 이따금씩 한 마디를 툭 던져 놓곤 하시었다. 물론 사람마다 그 말 한마디를 받는 것은 쉽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다.

▲ 김승옥, 『무진기행』 , 문학동네, 2004. 10.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금 돌이켜 보자면 나의 도전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내가 왜 소설창작론이란 전혀 엉뚱한 수업을 듣길 희망했는가 생각해보면 그 원인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김승옥이었고, 〈무진기행〉이었음을 밝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염치없고, 주제를 모르는 생각이었음은 물론이다. 다른 이도 아닌 김승옥을, 다른 소설도 아닌 〈무진기행〉을 읽은 후에 ‘아, 나도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말이다. 마치 이소룡의 발차기나 기기묘묘한 기합소리를 듣고 ‘아, 나도 쿵푸를 배우면 저렇게 될 수 있겠지’하고 생각한 것과 다름 아니다. 한마디로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었다.

하지만 수업은 정말 재미있었다고 기억된다. 다른 학우들의 기상천외한 소설들 - 물론 몇몇은 도대체가 납득이 되지 않는 포르노 소설이거나, 염세를 넘어 거의 자살을 종용하는 것들이어서 나를 주눅 들게 혹은 감탄하게 했지만 -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 역시 소설을 한 편 장만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고, ‘차근차근’ ‘미리 미리’라는 단어와 당최 친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심히 낭패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모험적으로 선택한 과목에서 좋지 않은 학점이 나온다면, 나의 전체적인 학점 평균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는 이런 모험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어두움마저 깃들어가는 것이었다. ‘고민이닷, 고민이야~’하며 담배를 뻐끔거리고, 소주잔을 들어 올려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날이 이어졌다.

결국 애꿎은 원고지를 무수히 잡아먹고 난 다음에야, 함께 자취하는 녀석의 숙면을 수차례 방해하고 난 다음에야 꾸물꾸물 소설 한 편을 내놓을 수 있었다. 제목도 거창했으니, 〈그 작자와의 하루〉였던 것이다. 내용도, 주인공도 모두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아 나에게도 아직 수치심이란 남아있단 말이냐. 차마 입으로, 글로 이를 표현할 수는 없도다.

나는 두려움과 기대가 섞인 감정으로 소설을 발표했다. 학우들의 반응과 교수님이 던지실 한 마디를 기다리며…. 아, 첨가하자면 난 그 수업의 유일한 타과생이었던 것이다. 교수님은 넌지시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주가 있구먼….”

아, 천당에서 천사가 속삭인다면, 바로 이런 말일 것이다. 이어서 학우들도 재미있다는 듯 소설을 읽어 넘기고 있었다. 키득키득 웃어넘기는 학우들이 그렇게 어여삐 보일 수가. 그렇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하고, 즐거워야 하나니.

지금 생각해봐도 그 소설은 허점투성이였고, 참 허무맹랑했다. 내용도 어쩐지 심상치 않은 냉소와 비관, 그러다 결국은 급격한 긍정으로 흘러버리는 것이 영 형편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내가 소설을 한 편 지어냈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으니, 내 소설은 온전히 김승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문체, 그의 냉소, 그의 유머와 위트. 난 모든 것을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소설이 아닌 김승옥의 소설을 지어낸 것이다.

그렇게 난 내 대학생활의 큰 부분을 그에게 의지했고, 그에게 감탄했으며, 그에게 절망하며 보냈다. ‘1960년대 작가’에게 지배당한 2000년대 청년. 세월은 때론 아주 부질없는 것이었다. 난 비로소 김승옥을 통해 소설을 읽었고,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구원이자, 절망에 다름 아닌 것이었다.

어디론지 구멍이란 것이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던 시절, 햇빛의 눈부심보다는 막걸리집 노오란 전등빛이 오히려 안심되던 시절.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연신 “요오것 봐라, 요오것들 봐라”를 따라하고 있었다.

이제 마흔을 넘긴 지금 다시 그의 소설을 꺼내든다. 다시 무진으로 떠난다. 그 충격적이었던 문장들, 그 스산한 안개와 같은 문체, 하찮은 인간을 더욱 하찮게 만들던 냉소.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시대가 바뀌어도, 아니 시대가 바뀌었다고 굳이 믿어버리는 지금도, 역시 김승옥은 우뚝하다. 아직도 그의 냉소는 유효하다.

다시금 원고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다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는 헛된 바람. 그동안 어줍지 않게 살아온 가당찮은 시간들이 허망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 이야기하나 없겠소! 하는 배짱일까. 아니면 여전히 헛헛하고 여전히 마땅히 들어갈 구멍을 찾지 못했음일까.

소설가를 꿈꾸는, 이야기꾼을 꿈꾸는 이들에게 언제나 환희와 좌절을 주었던 작가 김승옥. 그의 글은 196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결코 21세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21세기가 그의 글들을 두려워해야 할지니….

“김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두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 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다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 서울 1964년 겨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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