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으로 한반도가 들썩인다. 오로지 미국만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저 오만방자함에, 애초 그런 인간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욕지기가 나온다. 하지만 트럼프가 취임한 날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로 여전히 진행 중인 날이다. 때문에 얼마 되지 않았던 그 때, 억울함과 비통함으로 마셔버린 소주 한 잔으로 써내려갔던 글을 다시 꺼내본다.

어느새 잊고 지낸 것은 아닐까. 2009년 1월 20일 용산을 말이다. ‘개발의 허명으로 분장한 저 욕망의 불도저들이, 저 무지막지한 권력의 화신들이’ 앗아가 버린 우리 이웃들의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삶을 말이다. 빚을 내어 마련한 식당 삼호복집. 힘들게 시작한 가게에서 그럭저럭 손님도 주인도 즐거웠던 시절.

길가에 핀 예쁜 꽃을 폰 카메라로 찍어 아내에게 보냈던 ‘멋쩍은 멋을 아는’ 사내, 용산 삼호복집 주인 양회성 씨는 2009년 1월 20일 무지막지한 권력의 폭력으로 뜨거운 불길 속에서 스러져 갔다. 《용산개 방실이》는 양회성 씨가 구박데기 보듯 하던 강아지, 하지만 어느새 귀한 외동딸 대하듯 하던 강아지 방실이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무참하고 욕망에 가득 찬 세상 속에 여전히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 최동인 글/정혜진 그림, 『용산개 방실이』, 책공장더불어, 2011. 1. [자료사진 - 통일뉴스]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생명과 생명이 더불어’를 지향하는 출판사 ‘책공장더불어’가 펴낸 《용산개 방실이》는 용산에서 넉넉하진 않지만 개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던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두 아들과 함께 일식집 차리는 것이 꿈이었던 삼호복집 주인 양회성 씨. 하지만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009년 1월 20일 참혹한 망루 위에서 삶을 마쳤다.

그런데 그가 떠난 뒤 유난히 그를 따랐던 8살 요크셔테리어 방실이가 아무 것도 먹지 않기 시작했다. 물도 넘기지 않고, 뭐라도 입에 넣어주면 뱉어냈다. 가족들이 병원에 데려가 링거를 놓고 어떻게 해서든 살리려 했지만, 결국 방실이는 ‘아빠’가 떠난 지 24일째 되는 날, 아빠를 따라 떠나갔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책공장 더불어’ 김보경 대표는 “어떤 방식으로든 용산이 계속 기억되어야 하고, 오래 기억되려면 구체적으로, 생활 속 이야기로 전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방실이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기로 마음먹었다.

단순히 용산이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망루에 올랐다가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로 기억되어서는,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무심하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용산에 대한 부채의식을 안고 시작한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작업을 진행하며 김 대표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고 양회성 씨의 부인 김영덕 씨와의 인터뷰였다.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김 대표는 가족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어야만 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오늘은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 새 김 대표는 함께 서럽게 울고 있었다.

“어머니(김영덕 씨)가 지난 이야기들을 하시면 좋은 추억, 즐거웠던 이야기들도 있잖아요. 방실이와의 추억도 있고요. 그러면 막 웃으시며 그 때의 이야기들을 말씀하세요. 그런데 결국 이야기가 용산으로 가게 되고…. 그럼 어쩔 수 없잖아요. 억장이 무너지는데…. 어머니도 저도 울어버릴 수밖에 없었어요.”

어머니는 방실이를 남편의 영정 앞에 내려주었다. ‘아빠’의 부재를 확인시켜주려는 마지막 인사였다. 방실이는 가만히 영정을 바라보다 주룩 눈물을 흘렸다. 유가족들과 추모객들은 ‘방실이도 슬퍼 눈물을 흘린다’며 오열했다. 어머니의 뒷이야기는 더욱 기가 막히다.

방실이가 떠나가던 날, 모든 유가족들을 찬찬히 바라본 후 영정 앞에서 두 바퀴를 돌더니 그렇게 쓰러져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돈과 권력 앞에 짐승보다 못한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인간 앞에 방실이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김보경 대표는 그동안 동물과 사람의 관계, 생명과 생명의 관계에 대한 책을 만들어 왔다. 그가 처음 번역해 소개한 《동물과 이야기하는 여자 -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리디아 하비》는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기도 했다.

10여 년간 여성, 육아, 어린이, 패션 등 다양한 분야의 잡지 기자로 일해 왔던 김 대표는 동물에 관련된 책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로 무작정 ‘책공장더불어’를 차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용케 ‘망하지 않고’ 잘 꾸려나가고 있다.

“방실이 이야기, 그리고 용산참사라는 비극도 결국 생명, 그리고 생명 간의 ‘관계’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처럼 돈 앞에, 욕망 앞에 생명이 경시받는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진심 어린 ‘관계 맺기’가 아닐까요. 앞으로도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관계,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전할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요.”

사람들이 쓰는 종이를 만들기 위해 매 2초마다 축구장 면적의 원시림이 사라진다는 절박함으로 ‘책공장더불어’는 재생지로 책을 만든다. 김 대표의 반려동물 사랑이 자연에 대한 사랑, 나아가 지구라는 우리 삶터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 양회성 씨 유가족이 남영역 부근에 개업했던 일식당 ‘이나까모노’는 지금도 잘 꾸려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트럼프 취임 기념으로 그곳에서 소주 한 잔이라도 기울여야겠다.

지금의 이 어지러운 모습은 2009년 1월 용산의 눈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용산은 여전히 눈물이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더러운 세상이 바뀌려면 우린 다시 용산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용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망각이란 이름으로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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