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해를 보내고 있다. 하릴없이 다이어리를 뒤적이며, 일기를 쓴 지도 꽤 오래 되었음을 느낀다. 올 해 어떤 책을 처음 읽었는지 확인해보니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중 『클로저』다. 그것도 단숨에 읽은 것 같다. 범죄 소설로 한 해를 시작했구나, 느끼며 마무리도 썩 아름다운 책은 아니어서, 적어도 시작과 끝은 그럴 듯하게 모양새를 짓는구나, 싶다. 투정임에 분명하지만, 2016년 참 쉽지 않았나보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한 개인이 국가의 수반이 됨으로 인해 벌어진 한 편의 거대한 블랙코미디로, 많은 이들의 심신이 피곤하고 아팠던 해였다. 때문에 허탈감을 넘어 심각한 자괴감과 회의마저 가지게 된 것 같다. 누구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김진태 의원처럼 당당하고 동시에 추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것도 나름 능력이다.

나 역시 그 무슨 특별한 사람이 아니기에, 함께 분노하고 함께 좌절하고 함께 슬픔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시 4월 16일을 그리고, 기억하고, 담아두려 애썼다. 아니, 자칫 희미해질 수 있는 그 날의 눈물을 끝내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번 사태를 견뎌내는 동안, 다시 한 번 내게 깊은 슬픔을 주는 것은, 대통령이라는 직책, 의미에 대해 여전히 많은 이들이 옳지 못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결코 왕이 아니고, 지배자나 군림하는 자가 아님에도, 많은 이들이 대통령을 절대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과거에 비해 그런 인식을 하고 있는 이들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나도 알겠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이들이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날 것임을 알고 있다. 이제 다시 일어날 젊은이들은 대통령을 왕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선 현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이 적지 않다.

왕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럼에도 대통령은 중요한 자리임에 틀림없다. 5년이라는 시간동안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그냥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구성원들,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헌신을 다해야 하는 비정규직 공무원이다. 그것을 위해 국민들은 일정한 권한을 위임했다. 그리고 그 권한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박근혜는 가볍지 않은 권한과 책임을 가벼이 여겼기에, 탄핵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궁극적으로 헌재가 결론을 짓겠지만, 이미 국민들로부터는 국가수반의 자격을 상실 당했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사적으로 양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형편없는 대통령 덕분에 많은 이들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다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 미란다 트위스 / 한정석 옮김 ,『국가를 망친 통치자들 – 누가 나라와 국민을 죽이는가』, 이가서, 2016. 12. [자료사진 - 통일뉴스]

책은 황제 칼리굴라로부터 우간다의 백정 이디 아민까지 총 16명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 한 번 정도는 들어봄직한 인물들이다.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그야말로 악인들의 리포트다.

그들의 악행에는 권력, 종교, 정치적 신념에서 사디즘, 정욕, 광기 등 다양한 호명과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자기 혼자 잔학한 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많은 이들이 그들을 기꺼이 따랐고, 유능한 공범자가 되었다.

폴 포트, 히틀러, 스탈린, 이디 아민의 대량 학살에 적지 않은 수의 캄보디아, 독일, 러시아, 우간다 국민이 함께 했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저자는 “많은 사람은 공범 관계가 돈과 권력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경로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사악한 지도자를 추종했다. 자신들이 추종하는 지도자들의 예측 불가능한 행위를 잘 조정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였다”고 이야기한다.

책장을 넘기며,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든 처음 접한 사실이든 참담함과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량 학살, 강간, 폭행, 살인 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 모습들은 지옥 그 자체였다. 그 수많은 주검들 위에는 이념이나 종교의 껍데기가 포장되어 있거나, 국가주의의 망령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인간의 오만과 위선, 어리석음이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느낀다.

인과응보라는 단어가 가장 초라해지는 곳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두환은 여전히 잘 살고 있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오늘도 안녕하다. 대신 정 반대의 위치에서 치열했던 이들과 그 후손들은 비참함이란 단어조차 무색하다. 때문에 16명의 악인 중 여생을 편안히 보내다 삶을 마감한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 역시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는 해당사항 없음이다.

비관적이다. 회의적이다.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백기를 들고 투항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겠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는 전두환이, 그 엄청난 죄 값을 끝내 받아야 한다고 믿고, 이는 이명박이나 현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아울러 최순실이나 김기춘이나 우병우나 누가 됐든 죄를 지었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게 하룻밤 사이에 가능할 것으로는 믿지 않는다. 미치도록 더디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의 진정한 주범들 역시 마찬가지다. 쉽지 않을 것이다.

2016년, 많은 이들의 분노와 눈물과 외침으로,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촛불의 함성이 없었다면 정치권은 여전히 이전투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정치 혐오는 우리에게 사치일 것이지만, 쓰레기를 골라내는 일 역시 게으를 순 없다.

책에 등장한 16인은 그야말로 세기의 악인들이다. 때문에 현 대통령과의 단순 비교는 어렵다. 하지만 공통점 역시 적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인격과 자질, 책임감과 국민에 대한 경외심을 갖지 않는 자가 지도자의 위치에 오른다면 곧 비극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우리는 희극과 같은 비극을 직접 보고 겪고 있는 중이다.

박근혜, 김기춘이나 우병우의 얼굴에서는 권력에 대한 오만함만 보인다. 두려움이 없다. 누가 감히 나를 건드릴 수 있냐는 오만. 이는 재벌들의 얼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천한 너희들이 어찌 감히 나를 능멸하려 드는 게냐, 사극이 매일 같이 21세기에 구현된다. 그러면 비극이 일어난다. 자격과 자질이 없는 이들이 능력을 벗어난 위치에 앉게 되면, 비극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머지 우리들은 오직 자비만을 바라야 한다.

민주주의는 전혀 완전하지 않다. 오히려 돈과 권력이 있는 이들에게 최적화된 시스템일지 모른다. 1인 1표가 이미 허구가 되었음은 미국과 우리의 선거를 보면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시장경제, 민주주의 이상의 것을 꿈꾸고 준비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권력이 자신들의 발생 근거지가 어딘지 명확히 인식하면서, 그 한계와 책임을 동시에 인식하면서, 소수가 아닌 다수의 이해를 위해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그것이 더 이상의 악인 권력 시대를 막을 수 있는 길이다.

끔찍한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지만,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분명 비극이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살아도 덧없이 짧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꺼운 옷을 껴입고, 거리로 나서야만 한다. 연대의 기쁨도 아름답지만, 우리는 사랑을 해야 한다. 그것을 막아서는 정부는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부디 2017년에는 사랑의 이야기를 읽으며, 사랑을 하며, 시작했으면 한다. 우리 모두.

새해 행복하시라, 고생 많이들 하셨다.

“즉 ‘악’은 절대권력을 쥔 인물에게서 발생하기 쉬운 것으로 누구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악’이라는 개념과 현상을 주도하는 개인이나 집단 곁에 항상 ‘악’의 추종자들이 들끓고 있어서 그들 모두로 인해 ‘악’이 보편적인 인간 행동의 한 현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구조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우리는 ‘악’을 접하며 살고 있고 또 ‘악’은 우리의 삶 한가운데에 소리 소문 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아닌가.” -옮긴이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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