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정애 / 6.15산악회 회원

 

1년 반만의 산행, 너무나 힘들었던 산행

1년 반 만의 6.15산악회였다. 이래 뵈도 나는 6.15산악회 초창기 회원이다. 체류생활 당시부터 서울의 산들은 물론, 겨울의 금강산도 운동화로 함께 한 자칭 열렬회원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 신변에 많은 변화가 생겨 6.15산악회와 멀어져있었다.

▲ 수락산 입구에서 6.16산악회 회원들이 안내도를 보고 있다. [사진제공-리정애]

내년 2017년은 6.15산악회가 1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에 슬슬 나가야 할 것 같고, 또한 금강산에 갈 수 있는 날도 생각보다 빨리 올 것 같아 체력을 쌓아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등산을 사랑하는 친정어머니가 1년 만에 오셨는데 날짜가 딱 맞아서 6.15산악회에 함께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 동안 한 달에 한 번의 산행이라도 꾸준히 체력 유지가 됐었나 보다. 1년 반만의 산행은 너무나 힘들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 할까 싶었다. 그나마 수락산의 ‘마의 바위계단’코스가 아니라서 천만 다행이었다. 토요일마다 광화문까지 왕복 2시간 이상을 걸어 다니고 얼마 전엔 집에 가는데 공기가 맑을 것 같아 북촌로에서 와룡공원길을 지나 이름만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앞을 지나가는 등산코스로 와서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된 것 같다.

참고로 공기는 최악이었다. 몇 십대나 되는 전경버스와 관광버스가 계속 시동을 걸어놔서 평소엔 공기가 맑고 조용한 북촌로는 완전 개판이었다. 얼마나 냄새와 소음이 심한지! 시내에 나갈 때마다 생각하는데 제멋대로 불법주차하고(심하면 2중!) 1년 내내 서울의 공기를 더럽히는 경찰은 청와대에 이어 4대악 중 하나이다. ‘선진국’에선 ‘아이들링 스톱’이 대세인데 서울시도 좀 단속해주면 좋겠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남쪽 운동의 역사’

12월 산행 전날 제7차 촛불집회는 어머니와 여동생도 함께 다녀왔다. 어머니가 동무들한테 “촛불집회에 꼭 참가하고 오겠다고 말하고 왔기 때문에 꼭 가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인데 안 그래도 모시고 갈 생각이었다.

‘일련의 사건’은 일본에서도 많이 보도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정확히 다룬 일본 언론사는 별로 없지만 말이다. 어머니도 여동생도 통화했을 때, 남쪽 고향땅 현실에 기가 막혀 하고 분노하면서도 민중들이 대거 일어난 것에 대해 ‘진짜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 사진을 찍는 것을 싫어하시는데 촛불과 피켓을 들면서 인증샷을 찍어달라고 하셨다. 그 동안 여러 집회에 모시고 가긴 했지만 ‘이렇게 규모가 큰 집회는 처음’이라며 흥분하고 신이 나 계셨다.

▲ 제7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어머니가 인증샷을 찍었다.  [사진제공-리정애]

언론을 통해 촛불집회에 접한 일본인들이 트위터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부럽다’는 글들을 올렸고 어떤 티비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숙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데모를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민주주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엄청난 비난을 쏟아 붓기도 했었다.

나 또한 같은 민족으로서 남쪽의 운동의 역사가 참으로 자랑스럽다.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고 민중들의 대단함을 알고 있다. 뭐, 요즘 현실들을 접하면서 실망할 때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다만 이 남쪽의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의견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바로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대선 부정선거에 삼권분립 미확립, 정경유착 비리 등등, ‘민주주의 국가’라고 보기엔 한없이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 나라 국민들은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고 본인들이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실제는 말 그대로 ‘헬조선’인데 말이다.

그런 뜻에서도 이번 사건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무능한 박근혜가 집권하는 동안 모든 것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민심이 완전 돌아서서 통일의 기운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 오산이었다. 이 정도까지 개판일 줄이야! 오늘은 또 무슨 일이 터질까, 요즘 뉴스를 보는 재미로 산다.

‘개, 돼지’발언 때도 나름 기대를 했는데 역부족이었다. 요즘 뉴스의 댓글들을 보면서 깨어난 민중들의 힘을 느낀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의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여전히 놈들이 만들어낸 ‘종북’, ‘좌빨’등등, 색깔론으로 몰려고 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북을 비난한다. 속이 상하지만 이 문제는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한다.

문화원에서 함께 배우는 경상도 출신 아줌마는 이 와중에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최순실에 대해선 사람들과 함께 욕하면서 누가 박근혜를 비난하면 짜증을 낸다. 평소에도 ‘안동김씨가 대단하다’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아줌마인데 알고 보니까 ‘박사모 모임에 나간다’고 지난 번 수업을 도중에서 빠졌단다. 헐~!!! 주변에 그런 인간이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늘 너무 뻔뻔하고 ‘사람을 밀치고 자기가 먼저’여야 하는 아줌마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 한번 싸워봐야 하나 고민 중이다.

페이스북에서 ‘평화집회’가 답답하다는 의견들을 많이 봤다. 나 또한 그렇다. 처음부터 과격했는지 남쪽에서 살면서 과격해졌는지 모르겠지만 마음 같아서는 그냥 확! 파란 지붕의 닭장을 무너뜨리고 싶다. 그러나 이번 ‘평화집회’는 운동권 눈높이를 어느 정도 일반시민들에게 맞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시민들이 집회나 시위를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권이나 언론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지만 그 동안 ‘왜 하냐’, ‘하지 마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번 촛불집회를 계기로 일반대중들과 운동권의 거리감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중 쓰레기를 깨끗하게 치우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집회가 끝난 후 어마어마한 쓰레기와 담배꽁초가 길에 버려져 있어 이래서 시민들이 욕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집회가 끝나면 자원봉사자가 치우긴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제6차 촛불집회에서 경찰과의 실랑이

4대악 중 하나인 경찰은 역시 여전하다. 제3차 촛불집회 때였을까. 안국동의 차가 겨우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골목까지 다 막아놓고 도서관에 가겠다는 여학생한테 ‘왜? 뭐 하러 도서관에 가냐’고 불심검문을 집요하게 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럼 학생들이 도서관에 가서 시위라도 하게? 왜 막고 지랄이야! 새대가리 같으니라고!!’

▲ 수락산 오르는 중 멀리 도봉산이 보인다. [사진제공-리정애]

제6차 촛불집회에선 우리가 피해를 입었다. 그날 시내에 나간 김에 방산시장에 들러서 단열벽지를 사고 집회에 참가했다. 삼청동 쪽으로 넘어가려고 할 때, 청와대 진입로 쪽에 있던 폴리스라인이 내려오면서 우리 앞길을 막아버렸다.

지나가려고 했더니 경찰간부가 ‘어디로 가냐’, ‘왜 가냐’등등 불심검문을 시작했다. ‘시민이 삼청동에서 법 먹으려고 한다, 왜!’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나름 얌전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경찰간부 두 명 중 한명은 심하게 고압적이고 융통성이라는 게 코딱지만큼도 없었다. 단열벽지에 꽂혀있는 피켓을 빼야 지나갈 수 있다고 해서 뺐는데도 단열벽지를 가리키며 ‘뭐냐’고 몇 번이나 캐묻는다. 단열벽지임을 몇 번이나 설명했는데 심지어는 ‘왜 집회에 이것을 가져왔냐’고 한다. ‘확!’하고 싶은 것을 ‘꾹!’참고 ‘시내로 나온 김에 저렴한 방산시장에서 사왔다’고 자세하게, 정중하게 설명했는데 납득하지 않는다. ‘왜 방산시장에서 사야 하냐’, ‘왜 이리로 가져왔냐’등등, 심지어는 ‘시위에 쓰는 도구 아니냐’며 우겼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단열벽지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단열벽지 모르세요? 단!열!벽!지!!”라고 했더니 그 고압적인 경찰간부가 눈을 부릅뜨고 “이분이 너무 공격적이시네. 가만히 계세요!”라고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이제까지 너무나 신사적으로, 얌전했던 김익 씨도 확!! “이것이 뭔지 몇 번이나 자세하게 설명드렸지 않습니까!!”, “그리고 시민이 인도로 가겠다는데 왜 막는 겁니까!!!”압도당한 그 경찰간부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길을 비켰다. 그러나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좁았다. “더 비키세요!! 여기를 어떻게 지나갑니까!!!”라고 하자 경찰들이 싹 비켰다. 인간승리의 순간이었다! 역시나 투쟁국 출신! 내 남편은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도둑도 잡고 경찰도 잡고~!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경찰이냐!”라고 말하면서 그나마 화가 풀렸지만 지금도 생각만 하면 뒷골이 당긴다. 그때 우리 옆에서 함께 있었던 여동생은 ‘엄청 무서웠다’고 했다. 오만하고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경찰, 언제 바뀌긴 할까?

금강산 갈 수 있는 체력 쌓는 중

이번 수락산 산행은 비교적 편한 코스였음에도 너무나 힘들었다. 한 달에 한 번의 산행이라도 가는 것과 안 가는 것은 체력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나마 토요일의 광화문 행으로 겨우 따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김익 씨는 “그래가지고 어떻게 금강산에 가냐”고 하지만 걱정 붙들어매셔. 금강산에서는 정신력이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니까 지금 체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하거든!

▲ 수락산 중간쯤에 오른 회원들. [사진제공-리정애]

산상강의는 양심수후원회의 권오헌 선생님이 요즘 정세 중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일련의 흐름에 대해 설명하셨다. 사건의 발단부터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주셔서 정리가 잘 되었다.

‘세뇌된다’고 김익 씨가 티비를 안 사줘서 이전엔 주로 아침, 저녁에 온라인으로 뉴스를 체크할 정도였는데 요즘 워낙 정보가 많고 정세가 재미있게 돌아가니까 저녁마다 인터넷 뉴스방송, ‘뉴스룸’을 본다. 손석희 앵커가 이렇게 괜찮은 사람인 줄 몰랐다. 이전에 통화해본 적이 있는데 그땐 누구인지 잘 몰랐던 것이 너무 아쉽다. 특히 인터뷰가 끝난 후에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든다. 국회의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이것은 일제 때 들어온 일본식 표현이다. 그러니까 조선에서는 쓰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이제까지 쓴 적이 없다.

외할아버지의 두 개 유언

요즘 외할아버지 유언이 자꾸 생각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직접 들어본 적이 없지만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말씀을 하셔서 알고 있었다.

▲ 멀리 회원들이 보인다. [사진제공-리정애]

하나는 ‘택시 뒤를 운전하지 말라’다. 일본에서 운전할 때는 그 유언을 잘 지키며 운전했다. 남쪽에서도 운전할 수 있으면 우리 선생님들을 모시고 지방에 계시는 장기수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지만 나한텐 여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올해 1월, 일본에서 취득했던 운전면허증이 말소되었다. 15년 전, 경찰이 운영하는 운전면허시험장에서 고생해서 땄기 때문에 진짜 속상했다.

시험관은 경찰관 출신이라 엄청 까다롭고 낡은 수동차라 시동이 자꾸 꺼져서 세 번째로 겨우 합격한 내 소중한 운전면허증... 일본 면허증을 여기 면허증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정보를 페친이 주셔서 해봤는데 ‘신분’때문에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침략자인 일본인들은 내 고향땅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 사는데 동포인 나에겐 단 하나의 권리도 주지 않는다. 친일파정부라서 그런가...

또 하나의 외할아버지 유언은 ‘암탉이 울면 나라(집안)가 망한다(!)’이다. 요즘이야 많이 바뀌었지만 제사 방식 등, 좋게 말하면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고, 안 좋게 말하면 봉건적인 재일동포 문화가 젊을 때는 싫었다. 그래서 이 속담을 들을 때마다 봉건주의적이라고 반감을 느꼈었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아니,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서 잊고 있었던 이 유언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돌게 되었다.

‘여성혐오’라는 논란도 있지만 단순히 그냥 암탉이든 수탉이든, 쥐든 기름장어든, 대가리(사상)에 문제가 있으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누구든 능력이 없는 인간이 지도자가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 김익 씨가 내 이야기를 듣고 ‘우리 집도...’라고 했다. 적어도 나는 닭대가리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안 되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요즘 스스로 훈계하곤 한다.

‘잃어버린 9년이었지만 대신 큰 것 얻어’

얼마 전에 출소하신 양심수 분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10년 만에 뵀지만 10년 전보다 젊어지신 것 같다. 감옥에 갔다 온 양심수들은 심신을 단련하여 건강해지고 더 젊어진다고 한다. 그 동안 출소한 양심수들을 보면서 그 말이 맞긴 맞나 보다 했다. 그렇게 젊어지고 싶으면 주사를 막 맞지 말고 감옥에 들어가면 되는데...

▲ 수락산에는 암벽이 많다. [사진제공-리정애]

그런데 그거야 양심수처럼 바른 사람의 이야기고 인간 같지도 않는 범죄자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을 것이다. 평생을 민중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았으니 여생은 감옥에서 그 동안 썼던 혈세를 갚도록 가혹한 노역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김익 씨는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한다. 독방감금이 바로 그렇다는데 맞을까? 노역이 더 힘들 것 같은데...

어느 쪽이든 이제 박정희의 망령을 단절하고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데 과연 지금의 야당이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민중을 위해 헌신하는 힘 있는 진보정당의 결성과 민중들의 의식화가 시급하다. 감시하지 않는 정권은 폭주한다는 말이 있다. 잃어버린 9년이었지만 대신 큰 것을 얻었다. 이제라도 남쪽 민중들이 자기네 나라가 썩을 만큼 썩었다는 것을 깨달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래야 조국이 통일될 때까지 그나마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으니까...

헤어질 때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6.15산악회 회원들이 둥근 원을 만들었다.
김재선 대장님의 마무리 한마디를 듣고 한결같이 운동해 오신 분들의 자부심을 느꼈다.
'6.15산악회 파이팅!’ 구호를 외치고 헤어졌다.
올해 마무리를 잘하고 2017년 희망찬 새해를 맞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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