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는 그 어느 해보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대형 사건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연초부터 북한은 제4차 핵실험을 단행했으며, 이어 위성을 발사했습니다. 남한이 이에 개성공단 폐쇄라는 대응조치로 맞서자 이후 남북관계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얼어붙었습니다.

특히 북한은 5월, 36년 만에 개최된 제7차 당대회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거듭 천명함으로써 한반도 정세를 고착화시켰습니다. 게다가 미국 오바마 행정부도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북.미관계에서 어떤 의미 있는 기미조차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1월 미국 대선 당선자인 트럼프의 대북 정책도 오리무중이라 향후 정세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던 중 한국이 7월 경북 성주에 사드 배치를 급작스레 결정하자 한국-중국 간에 갈등구조가 싹텄습니다. 중국은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한한령(限韓令, 한류금지령)을 내려 양국관계에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특히, 10월 들어 남한에서 본격화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압권이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촛불시위가 나서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고, 결국 박 대통령의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이 와중에,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중에서 ‘통일대박’이 최순실의 아이디어이고, 개성공단 폐쇄에도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나와 당혹감을 넘어 황당함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통일뉴스는 이처럼 유난히 대형 사건이 많았던 올 한해를 보내면서 <2016년 송년특집>으로 ①북한내부 ②북.미관계 ③남북관계(당국간) ④남북관계(민간) 순으로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2016년은 지난 2000년 이후 남북 당국회담이 한 번도 열리지 않은 유일한 해이다.

지난 2015년 12월 11일 차관급을 대표로 하는 남북당국회담을 끝으로 지금까지 1년이 넘도록 남북당국 사이에는 어떤 종류의 회담도 열리지 않고 있다.

회담만 열리지 않은 게 아니라 개성공단도 닫혔고 남북을 연결하던 연락선도 끊어졌다.

개성공단 전면 가동중단 이후 판문점 연락관 채널과 서해 군 통신선 등 남북연락채널이 단절되다 보니 최근 동해상에서 발견한 북측 선박과 주민의 송환 통보를 위해 언론보도를 통해 입장을 전달하는 비정상적인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남북관계가 이 지경까지 악화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대화가 아니라 제재와 압박을 고집할 때부터 관계의 파탄은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비핵화에 대한 의지와 함께 실질적 행동을 보여야 하며, 대화 제의에 앞서 이에 대한 입장부터 밝힐 것.”

올해 1월 6일 북한의 ‘수소탄 시험(4차 핵실험)’과 2월 7일 장거리 로켓 ‘광명성-4호’ 발사 이후 박근혜 정부가 ‘대화재개와 관계개선’ 필요성을 줄곧 묵살하고 금과옥조처럼 고수해 온 대북 정책의 근간이고 원칙이다.

△굳건한 안보와 강력한 제재로 북한의 비핵화 압박, △원칙있는 대화를 통한 북한의 변화 견인, △국민과 국제사회의 지지에 바탕을 둔 통일역량 강화.

▲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1월 22일 청와대 연두 업무보고에서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비핵화 압박, 원칙있는 대화를 추진전략으로 제시했으나 실제로는 제재, 압박 일변도였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통일부는 1월 22일 청와대 연두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추진전략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후 북한과의 ‘대화’는 원칙이 있든 없든 단 한 차례도 성의껏 고려조차 된 바 없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은 모두 무시되었으며, 막무가내 제재와 압박으로 일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를 전격적으로 단행한 이후 2월 16일 국회 특별연설에서 “지금부터 정부는 북한 정권이 핵개발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보다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이라며, 대북정책의 전환을 선언했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는 필요를 느낄 때 스스로 하는 것이고 초강력 제재로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시도는 미국이 수십년을 해왔으나 별 성과가 없었던 일이다.

외부의 힘은 대화와 협력으로 작용할 때 의미가 있다는 지적을 박근혜 정부는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남북관계를 파탄지경에 빠뜨렸고 자신도 준엄한 심판을 받고 있다.

그 결정적이고 직접적인 계기가 됐던 개성공단의 전면중단 조치는 여전히 석연치 않다.

4차 핵실험 이후에 개성공단 체류인원을 줄여나가는 조치를 취하면서도 통일부는 개성공단이 제재대상이 아니라고 수 차례 강조해 왔던 터였고 1월 22일 연두 업무보고에서도 ‘개성공단의 안정적 운영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라고 발표했었기 때문이다.

음력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10일 전격적으로 단행된 전면중단 조치는 당일 오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단계적·부분적 중단을 제시한 통일부가 청와대의 입김에 눌린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지금 시점에서 NSC 이상의 배후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멍청하거나 순진한 일일 것이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면서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여러 정책의 배경을 음미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10월 이후였다. 그 이후 남북관계는 가히 진공상태로 빠져들었다.

박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도 "핵으로 정권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을 착취하고 핵개발에만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이 북한의 정권을 유지시킬 수 없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도록 해야 한다"며, 적대적 태도를 강화했다.

‘지금은 북한과 대화가 아니라 압박을 강화할 때’라는 서슬 퍼런 태도는 지속됐다.

4월 총선을 전후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지고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괴멸적 패배를 당하는 등 중대한 상황의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 관계 개선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면서 북한의 5차 핵실험 정황을 끌어들여 자신의 궁색한 상황을 안보국면으로 모면하려고만 했다.

더욱이 총선 직전 터뜨린 북한 해외식당 여종업원 12명의 집단입국은 국정원에 의한 ‘기획입국’설을 낳으면서 역으로 정부 여당의 북풍몰이를 심판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남북관계에 부담을 지우고 있다.

▲ 북한은 지난 5월 6~9일 36년 만에 조선노동당 7차 대회를 개최하고 군사당국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은 5월 6일~9일 36년 만에 개최한 7차 당대회에서 남북군사회담을 제안하고 5월 21일 북한 인민무력부가 남북군사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의 길을 선택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올 때까지,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강력한 제제와 압박을 지속해나갈 것”이라며, 일언지하에 대화 제의를 거부했다.

6월 13일에는 20대 국회 개원 연설을 통해 “비핵화 없는 대화 제의는 국면 전환을 위한 기만일 뿐”이라며, 북한의 군사회담 제안을 거듭 일축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는 별도로 남북대화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 가능성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주장은 “이번만큼은 반드시 '도발-대화-보상-재도발'이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고집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박 대통령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한국 배치에 대해서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막기 위한 자위권적 조치라고 강변하면서 “이런 문제는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반대 여론을 철저히 묵살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강조하면서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8.15경축사에서 또 다시 북한을 향해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대남 도발 위협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또 북한이 제안한 연석회의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의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려는 시대착오적인 통일전선 차원의 시도도 멈추기 바란다”라며, 대화 가능성을 아예 막아버렸다.

또 9월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 소식을 접하고는 “자멸의 길을 더욱 재촉할 것”,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고 악담을 퍼부으면서, 사드배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는 “북한주민 여러분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 놓을 것입니다.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랍니다"라며, 전례 없이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종용하는 발언을 해 파장을 일으켰다.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 공사 등 탈북 입국자들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이른바 북한붕괴론을 상정한 언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 것이다.

제재와 압박에 몰두하는 정부의 대북 정책은 지난 8월말 함경북도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수해 지원과 관련해서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통일부는 9월 19일 공개 언론브리핑에서 “북한으로부터 수해지원 요청은 아직 없으며, 앞으로도 요청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의 요청이 있더라도 현 상황에서는 이것(수해지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좀 낮다고 보고 있다”며, 대북 인도적 지원과 북한의 5차 핵실험을 연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권문제가 갖는 보편성에 대한 부족한 인식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9월 초부터 시행되고 있는 북한인권법이 앞으로 제대로 적용되기 위해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한편으로 대화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군사훈련은 그것이 연례적이고 방어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더욱 위험스러운 군사적 충돌을 우려하게 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합동군사연습을 겨냥해 “핵 선제타격을 퍼부어 도발의 아성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고 경고하기도 했으나, 아무튼 올해 남북의 군사훈련은 모두 마무리됐다.

병신년 끝자락에서 시작된 박근혜 정부에 대한 탄핵이 어떤 새로운 희망을 가져올지, 정유년 새해에 평화로운 한반도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갈 수 있을지 사뭇 기대감을 갖게 한다.

▲ 2016년 남북관계 주요일지. [정리-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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