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람들은 무겁고 탁한 그림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식인일수록 무거운 그림을 좋아하고 백성들은 밝고 화사한 그림을 좋아한다.
현대의 지식인들이 무겁고 어두운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순전히 서양철학의 영향 때문이다. 알다시피, 서양의 미학은 그리스로마의 문명을 부흥시킨 르네상스와 기독교문화에 따른다. 그리스시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숱한 아름다움 중에 비극미가 가장 아름답다고 규정했다. 또한 현대문학의 바탕을 만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도 유명하다. 원죄와 회개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문화도 비극미와 무관하지 않다.
비극의 내용은 인간의 죽음, 고통, 허무, 슬픔, 실연, 전쟁, 살인, 배신, 질투, 변절, 추방, 실락원 따위이다.
서양의 미술은 비극적인 표현이 중심을 이룬다.
비극의 미술적 표현은 선명하고 화사한 원색을 배제하고 깊은 명암, 어두움, 무채색 따위를 기본으로 한다. 예술성, 회화성을 획득하는 가장 근본적인 바탕에 비극미가 있다.

서양의 미술과 달리 우리그림은 수묵화, 궁중회화, 민화로 역할이 구분되어 있다. 각각은 독립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 세 가지를 결합했을 때 비로소 완전한 미술이 된다.
수묵화는 조선의 지배세력이었던 선비, 양반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세계를 담고 있다. 동시에 주자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철학과 미학을 표현한다.
선비들이 추구했던 정치는 민본주의(民本主義), 태평성대(太平聖代)였고, 정치의 최종 수혜자는 백성이었다. 따라서 선비들의 문화는 자발적 청빈, 엄격한 예법, 지조와 절개, 유유자적, 풍류라는 희생과 헌신, 절제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색이 없는 수묵화는 인격수양과 실천적 가치를 가진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그림인 것이다.

▲ 이형록/책가도/종이에 채색/8폭 병풍/140.2×468.0cm/19세기/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자료사진 - 심규섭]
의도적으로 무겁고 어둡게 표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그림은 색이 바라고 휘발되어 훼손 상태가 심하다. 전체 분위기와 달리 중간 중간 밝은 원색의 사물이 보이는데, 이는 물감의 상태에 따라 접착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책장 자체를 금박이나 밝은 색으로 장식하기 위해 어둡게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어둡게 표현된 사물이나 책 표지도 같은 의도이다. 어두운 색은 대부분 먹을 섞어 표현한다. 세월이 흘러 장식하는 색이 떨어져 나가고 혼합한 색이 휘발되면서 어두운 먹만 남았다.

궁중회화는 선비들의 실천적 가치를 통해 구현되는 최종적인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간결한 형식과 화려한 색채, 거대한 화면 따위는 이상적인 세계를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궁중회화의 내용은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이며 생명존중과 공생공영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이상세계를 담은 그림은 밝고 화사하며 화려해야 한다. 그림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밝고 화려한 색상을 사용한다. 칙칙한 무채색을 사용하면 화면은 지저분해지고, 어두운 색을 많이 쓰면 마치 밤처럼 무거워진다.
가능하다면 금색과 같은 반짝이는 요소를 넣어야 효과는 증폭된다.
궁중회화는 최고급 비단과 물감을 사용했다. 평균적인 화면의 크기는 2m가 넘는다.
빨강, 파랑, 노랑, 하얀색, 검은색이라는 기본적인 원색을 사용했고 혼색은 거의 없었다. 원색을 사용하면 화면의 채도는 극단적으로 높아지는데, 색채의 조화를 위해 사물을 간결한 형태로 양식화하고 흐름이 있는 반복을 통해 조화와 균형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미술재료를 사용하고 관리를 잘하더라도 미술품은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 화려하던 색은 빛이 바라고, 각종 곰팡이나 습기에 의해 부식되거나 훼손된다.
18세기를 전후해 창작된 대부분의 궁중회화는 원래 색상보다 어두워지고 탁해져있다.

우리그림 중에 비교적 묵직한 색상으로 표현했던 그림은 [책가도冊架圖]이다.
[책가도]가 무거워진 것은 순전히 책장 때문이다. 책장 자체의 질감이 어둡기도 하지만 선 원근법에 따른 명암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명암은 그야말로 밝고 어두움을 표현하는 방법인데,
사물의 입체감을 내기 위해서는 어둠, 즉 검정색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작품의 내용은 ‘인문학으로 구현하는 이상세계’이다.
긍정적인 이상세계를 무겁게 표현하는 경우는 없다. 또한 작품을 구성하는 각종 사물에도 어떠한 부정적인 요소가 없다. 따라서 원래의 [책가도]는 아주 밝고 화사했을 것이다.
책장의 질감을 살리고 명암을 넣어 어둡게 처리한다고 해도 그 안의 사물까지 어두워지지는 않는다. 실제 [책가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책장이 아니라 책과 각종 사물이다. 배경이 어두워지면 사물은 더욱 밝고 화사하게 보인다.
무거운 책장이나 어두운 명암의 처리는 [책가도]를 그리는 화원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책장의 배경을 원색으로 칠해 채도를 높인 작품도 허다하다.
[책가도]가 원래 그림보다 무거워진 것은 색이 바라서 탁해졌기 때문이다. 그 외의 특별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 여러 책가도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책가도는 이 보다 더 밝고 화려했을 것이다. 색상이 거의 없는 책을 화사하게 표현하기 위해 화려한 책표지를 사용했다. 또한 책장은 중간 정도의 채도를 사용해 무겁고 어두워지는 것을 방지했다. 적절한 명암표현에 따른 깊이감은 책장 안의 사물을 돋보이게 하며 더욱 화사하게 만든다. [자료사진 - 심규섭]

우리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나 외국인들이 [책가도]에 호감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책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사람의 관심을 끄는 매력이 있다. 책은 일반적으로 지식과 지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책가도]에 표현된 책은 조선의 철학과 사상을 담은 사서삼경(四書三經) 따위일 것이다. 그림 속의 책에 제목은 없지만 이 외의 책을 표현했다고 상상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논어, 맹자 따위의 경서(經書)나 조선의 유학적 가치보다는 무겁게 표현된 색상이나 분위기에 끌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모르게 서양의 미학으로 우리그림을 규정하고자 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밝고 화사하게 표현한 우리그림을 가볍고 촌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작품 내용에 대한 이해보다 직관적인 색의 밝기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그림의 미학과 서양미술의 미학은 다르다.
서양미학이 비극미, 숭고미, 비장미 따위라고 한다면, 우리그림의 미학은 환희, 신명, 풍류라고 할 수 있다.

가끔 우리문화의 바탕을 한(恨)이라고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판소리와 같은 우리소리에는 슬프고 비극적인 내용이 많다. 심지어는 걸걸하고 탁한 소리를 내는 수리성을 가장 높은 경지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그림도 슬프고 비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서양의 비극미와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한(恨)을 다른 말로 ‘좌절된 희망’이라고 부른다.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한이 생긴 것이다.
한은 조선이 망해가고 일제침략에 의해 희망이 좌절되고 고통을 받으면서 생긴 것이다. 이러한 한의 미학과 서양의 비극미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양의 비극미에는 희망이란 개념이 없다. 희망은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하지만 우리의 한에는 희망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낡은 생명, 훼손된 생명, 고통의 생명을 뜻하는 한은 더 큰 생명의 힘으로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것을 신명이라고 한다. 신명은 원초적 생명력이고, 생명에 대한 철저한 존중이며 공동체의 힘이다. 동시에 미래를 향한 강렬한 희망이자 긍정이며 실천인 것이다.

화사한 색상과 따뜻한 분위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화려한 꽃을 보면 가슴이 뛰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와 나비를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바다와 파도가 가슴을 요동치게 하고 소나무, 대나무는 굳센 의지를 가지게 하고 복숭아나무와 붉은 열매는 유혹한다.
이렇게 우리그림을 보면 의욕과 활력이 생긴다.
작품 속의 내용이나 뜻을 몰라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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