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행한 3차 대국민 담화에서 최근 정국의 핵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박 대통령의 담화는 26일 190만 명의 촛불집회가 열린 뒤이자 정치권에서 탄핵소추안 발의를 막 시작하려는 시기에 이뤄졌습니다.

이날 기자회견도 하지 않은 일방적 담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에선 ‘박-최 게이트’에 대한 자신의 연관 여부를 밝혔으며, 후반부에선 그에 따른 처신 문제를 알렸습니다.

먼저,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이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나는 잘못한 게 없고 측근이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도의적 문제는 있을지언정 법적 책임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검찰이 지난 20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박 대통령을 사실상 주범으로 지목한 혐의를 정면으로 부인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피의자입니다. 범죄 행위는 밝혀져야 합니다.

이어,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저는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는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는 암수와 꼼수, 함정이 섞여 있습니다. 우선, ‘임기 단축’이란 말은 임기 중에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임기 자체를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즉, 퇴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줄여진 임기를 무사히 마치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탄핵 회피용’ 함정을 파놓은 것입니다.

또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는데 이는 판을 바꾸고 시간을 벌겠다는 속셈입니다. 자신의 운명마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맡기겠다는 것은 얼핏 ‘비선 실세’ 최순실이 곁에 없다는 비감한 현실을 반영한 듯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최순실 부재(不在)’를 가장한 암수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국회는 여야로 되어 있고, 여당에는 이른바 ‘친박’과 ‘비박’으로 나눠지며 야당에는 3개 정당이 있습니다. 이들 다섯 개 정파가 ‘합의’를 한다는 것은 벼룩 다섯 마리를 일렬로 줄 세우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기 자신은 잘못이 없지만 조건부로 사퇴하겠다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차라리 잘못이 없다면 끝까지 버티겠다고 해야 하며, 그렇지 않고 잘못이 있다면 즉각 하야하겠다고 명백히 밝히는 게 그나마 떳떳했을 것입니다. 이도저도 아닌 꼼수를 부린 것입니다.

이제까지 다섯 차례의 ‘범국민대회’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민의는 ‘즉각 퇴진’입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자기는 잘못도 없으며, 그나마 자신의 진퇴 문제도 남에게 맡기겠다는 것으로 이는 한마디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세 차례 담화의 결론은 모두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박 대통령의 담화에 담긴 암수와 함정을 모를 리 없습니다. 정치권은 대통령의 담화에 관계없이 탄핵소추를 비롯한 특검, 국정조사에 들어가야 하고 촛불은 또 다시 광장에 나와야 합니다. 12월 혹한기로 접어들지만 박 대통령의 ‘탄핵 회피’와 ‘시간 벌기’ 담화로 촛불은 더욱 거세게 타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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