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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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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10.03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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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존재

진정한 화가라면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펼쳐나가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하겠지만 나는 관중을 많이 의식한다. 아마 진정한 화가가 되기에는 내공이 부족한가보다.

보통 화가를 바라보는 위치는 양극단이 나란히 존재한다.
하나는 천박하게 보는 생각이다. 부모나 주변 친지들이 `굶어죽기 딱 좋다.`,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라고 말하는 근심 어린 충고는 미술이란 직업이 자기 앞가림과 밥벌이도 못하는 사회적으로 열등한 직업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가끔 `그림 하나 줘라, 술 한잔 찐하게 살께`라고 비실비실 웃으면서 말할 때도 나는 화가의 천박함과 초라함을 느낀다. `술 한잔 찐하게` 사는 돈으로 그림을 사면 좋을 텐데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돈을 주고 그림을 산다는 것은 화가의 존재나 위치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술을 얻어먹고 그림을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구걸한다는 의미가 깔려있다.

또 하나의 극단은 화가를 공중에 떠다니는 신선처럼 생각하거나 아주 특별한 존재로 보는 경우이다. 라면만 먹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생각을 하고, 원래 태어날 때부터 탁월한 재능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뭐든지 상상만 하면 쓱쓱 그릴 수 있다고 믿는 경우이다.
이런 극단적인 생각은 나를 아주 초라하게 만든다. 돈 많은 친구들에게 모욕을 당하는 것도 고통스럽고, 생활을 하기 위해 돈을 벌거나 현실적인 고민을 할 때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두렵다. 특히 나 같은 무명화가의 경우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내몰리기 일쑤다.
사실 화가는 라면만 먹고 살 수 없으며 원하기만 하면 쓱쓱 그릴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다. 가끔 고기도 먹어야 하고, 하나의 형상을 만들기 위해 수십 번을 고쳐 그리는 사람이다.

상황에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질중심인 사회의 분위기가 주범이고 화가들도 일반사람들이 알아먹을 수 없는 자신만의 용어와 세계를 만들어 사람들을 소외시켰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미술과 미술가는 생각보다 높은 경지에 올려져 있다. 화가는 돈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신선의 경지 아니겠는가?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달갑지 않다. 누구 말대로 `국민 사기극`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정치인, 혹은 교사 따위에게 과도한 요구를 해 놓고 그렇지 못했을 때 여지없이 씹어버리는 그런 사기극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높은 정치수준과 도덕성으로 무장한 선진국민처럼 보이는가? 이것은 완벽한 대상을 설정해 놓고 그것보다 못한 사람은 다 똑같다라는 유치한 심리의 물귀신 작전이다. 이런 분위기가 더 더럽고, 더 나쁜 놈들이 기생하고 지금까지 뻔뻔스럽게 우리 사회의 주류로 살아남게 한 토양이다.

화가의 위치를 높여놓고 이익을 얻는 사람이 누굴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분명 말하지만 나를 비롯한 평범한 화가는 아니다. 시각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지만 그 이미지에 소외당하며, 창조성과 표현력을 잃은, 마치 더듬이를 잃어버린 곤충처럼 살고 있는 일반 국민이 최대의 피해자이다. 물론 최대의 수혜자는 돈과 권력을 가졌지만 머리는 오랑우탄 수준인 사람들이나 거기에 기생하는 일부 귀족화가들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육체적 노동을 통해 물질가치를 만들어 내듯, 화가는 물감과 붓으로 정신가치를 만들어 내는 자유로운 영혼의 정신노동자이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그 만큼이었으면 좋겠다. 

현장의 화가

▶탄부의 모습/박관영/조선화/180*155/1985

이번에는 북한화가의 모습을 담은 조선화를 소개한다. <탄부의 모습>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북한화가 박관영에 의해 1985년에 창작되었다.
이 작품은 북한에서 인정받는 명작은 아니지만 북한의 화가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단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작품은 갱도 한쪽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그린 화가의 작품을 보고 즐거워하는 탄광노동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좌측에는 커다란 화폭과 화구들이 놓여있고, 습작으로 보이는 작은 그림과 스케치들이 있다. 작품을 유심히 바라보는 노동자도 있고, 여유롭게 앉아 담배를 피워 물은 사람도 보인다. 오른쪽 뒤편에 여성노동자의 표정은 마치 `어쩌면 저렇게 생생하게 우리의 모습을 담았을까`하는 표정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화면 중앙에 안전모와 양복을 입고, 붓과 습작을 든 사람이 화가이다. 아마 자신이 그린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화면 중심에서 화가와 함께 그려진 왼쪽의 노동자는 당당하면서도 흡족한 표정으로 작품을 보고 있다. 화가의 팔에 있는 완장에 `...경제선동...`이라는 글자가 있는 걸로 봐서 탄광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이고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투입된 사람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화가나 예술가는 노동자와 다른 특권층이 아니라 노동자의 모습을 담아내는 친근한 벗이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꼬질꼬질한 작업복이 아닌 양복을 입은 화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화가는 인텔리에 속한다. 하지만 북한의 화가는 철저히 `계급성`에 기초한 사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노동계급의 삶과 정서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창작을 위해 현장에 투입되어 노동자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창작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현장의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현장경험과 창작은 국가나 만수대창작사 같은 곳에서 조직되고 운영되며 지원된다.

이 작품에서는 노동자와 화가를 동등한 위치에 놓고 주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화가와 노동자가 같은 높이라는 것의 표현이기도 하다.
군림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미술과 미술가, 무언가를 창조하는 사람들끼리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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