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어느 책에선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아 챙겨두었던 책일 것입니다. 꽤 오랫동안 모셔두기만 했는데요. 아버지에 대한 책을 읽고 다시 돌아보니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자는 저와 같은 직업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물론 직책은 저보다 훨씬 높은 편집장이지만요. 매월 마감에 쫓겨 전쟁을 치렀다는 점에서 저도 모르게 강한 동료 의식(!)을 느꼈습니다.

▲ 윌리엄 플러머, 『흐르는 강물에서 건져 올린 인생』, 열림원, 2006. 3.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저자의 삶은 평탄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와의 이혼, 아들과의 갈등 그리고 자신이 혼신을 다해 펴낸 책의 참담한 실패. 이 모든 실패 속에서 그는 서서히 무너져갔고, 빠져나올 수 있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찾은 것이 바로 오래된 아버지의 낚시일기였습니다. 플라이 낚시의 대가였던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에도 강물에 서 있었습니다. 무뚝뚝했지만, 언제나 아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품고 있던 아버지. 그는 낚시에 자신의 삶을 담았습니다.

그 전까지 낚시에 대한 관심이 그다지 없었던 저자는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며 점차 낚시에 빠지게 됩니다. 아버지가 섰던 그 강가에 몸을 담그며, 그는 다시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낚시 역시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플라이 낚시는 말이죠. 오랜 경험과 숙달된 기술이 필요한 고난이도의 ‘예술’입니다. 저자는 서툰 몸짓으로 아버지를 따라갑니다. 그리고 점점 아버지의 삶과 사랑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른 봄의 어느 아침, 나는 이름 모를 바위에 앉아 아버지를 추억하고 있다. 아버지의 깊이를 깨닫기까지 왜 그리도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 나의 긴 머리, 베트남 전쟁, 아버지의 불같은 성질, 나의 불같은 성질, 겹겹이 쌓인 어머니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나는 왜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 내내 우리들의 차이점만을 보려 했을까. 나는 어떻게 아버지가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거라고 생각했을까……?”

저자는 기억이란 참으로 묘하다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난 횟수가 아니라 그 사건의 비중이라고 말합니다. “기억은 특정한 이미지에 집중해 나머지 것들은 무시해버린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그 나머지 것들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강물에서 낚시를 하며 자연의 위대함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아울러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아버지의 삶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버지는 강물을 읽고, 자연을 읽은 사람이었습니다.

“강물을 읽는다. 다소 해묵은 이론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이 말이 아주 맘에 든다. 강이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완벽한 텍스트이며 풀어내야 할 암호 체계다. 강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좋은 책과도 같으며, 하나의 강은 또 다른 강에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낼 열쇠를 품고 있다.”

그리스의 옛 속담에 “자연은 우리들이 적당히 먼 곳에 있을 때에만 온전히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정말 지극히 옳은 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는 어느 새 자연과, 강과, 새와 나무들과 하나가 되어 살아오셨던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아버지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아들과 함께 예전 아버지와 함께 했던 강가에 나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의 낚시를 도와줍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그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정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죠. 하지만 조급한 자신은 결국 아들에게 낚시 시범을 보입니다. 그리고 걱정과 달리 아들은 저자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스스로 잡은 어린 송어를 다시 강으로 돌려보내는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제가 결국 움찔하며 눈물을 보였던 것은 맨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그 옛날 아버지가 잡았다 놓아준 것이 분명한 크고 오래된 브라운 송어를 잡은 저자. 그는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그러다 문득 언젠가 어머니가 들려준 아버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낚시 클럽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가끔씩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 또 옛 친구 녀석을 잡았지 뭐요.”

저자는 결국 그 송어를 다시 강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옛 친구가 또 한 번의 겨울을 무사히 나기를 바라는 소망을 실어 보낸다.

그리고 한마디 인사도 잊지 않는다.

“그럼, 내년 봄에 다시 만나자꾸나.”

진심에서 우러나온, 아름다운 글이 갖는 놀랍고도 강렬한 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이미 저자는 2001년 아버지의 곁으로 떠났지만, 그의 아들이 다시 그 강가에서 낚싯대를 던지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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