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2012년 8월 작성했던 서평이다. 단 한 글자도 수정하지 않고 오타만 수정한 채 그대로 올린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난 박근혜 대통령이 독재자의 딸이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 말았어야 한다고 여전히 믿는 바보 중 하나다. /필자 주

 

박근혜라는 정치인처럼 그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하고, 또한 그 실체를 확실히 규정할 수 없는 정치인이 또 있을까. 별안간 등장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야권 대선후보들까지 주눅들 정도로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 바로 박근혜이다.

이 책은 박근혜 ‘현상’을 규정하고, 그 실체를 밝히려는 노력의 결과다. 그에 대한 주관적 호불호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왜 박근혜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지, 그의 정치력은 무엇인지, 그가 추구하는 국가상은 무엇인지,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탐구했다.

사실 박근혜는 단 한 번도 삶의 고난을 겪은 바가 없는 인물이다. 물론 부모의 비극적 죽음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출생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와 권력의 틀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양김’처럼 오랜 시간동안 정치에 몸담았던 인물도 아니다. 한나라당이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쓰고, 당 해체론이 나올 만큼 위급한 상황에 ‘구원투수’로 등장해 천막당사를 치고, 과감한 혁신(물론 이는 새누리당의 주장이다. 얼마나 과감한 혁신이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을 통해 당을 구원했다는 ‘신화’를 제외하고는 그의 정치력이 발휘된 적도 없다.

아울러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한 적도 현재까지는 없다. 두루뭉술하게 다들 공감할 만한 이야기, 혹은 보수 진영을 의식한 퍼포먼스만 간혹 선보일 뿐이다. 수첩공주라는 비아냥은 물론, 반대 진영의 조롱이지만,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박근혜는 이번 대선에서 매우 유력한 후보다. 안철수라는 초강력 변수가 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박근혜는 대통령 1순위 후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매우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그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가? 그는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가 꿈꾸는, 즉 대통령이 되면 추진할 정책들은 무엇인가?

▲ 이철희 외, 『박근혜 현상 - 진보논객, 대중 속의 박근혜를 해명하다』, 위즈덤하우스, 2010. 12.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동안 진보는 박근혜를 단순히 ‘독재자의 딸’ 프레임에 가두려고만 했다. 물론 순진한 발상이다. 이미 박근혜는 현상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거대해졌다. 지리멸렬하게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는 야권에서 감당할 수준을 벗어난 것이다.

물론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생명을 낳기를 거부하는,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죽음의 땅’이 되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구태의연한 ‘성장제일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박근혜는 위험하다. 아울러 그가 꿈꾸는 세상이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다 못다 이룬 나라’라는 점은 어찌 보면 이명박 보다 더 위험한 발상이다.

하지만 최근의 사회 모습을 보면 가관이다.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을 확실시하고, 벌써부터, 아니 오래전부터 줄을 대고 그의 입맛에 맞는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기생충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 독재시대에, 경제성장률이 1위를 달렸다는 주장이다. 헐벗고 굶주린 나라가 산업화에 성공했고, 민주화도 이뤘으며 마침내 선진화에 이르고 있다는 논리다. 여기에서 손석춘 새사연 전 원장님의 이야기를 가슴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최근 그의 저서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의 한 부분이다.

“진보 일각에서도 마치 박정희를 비판만 하면 낡은 진보, ‘꼴통 진보’따위로 매도하는 윤똑똑이들이 나타났다. 박정희가 이룬 경제성장을 인정해야 새로운 진보이고 수구좌파가 아니라는 논리는 사뭇 학문의 옷까지 걸치고 등장했다.

박정희가 일본제국주의에 혈서를 써가며 충성을 맹세할 만큼 출세를 위해서라면 민족을 배신하길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도, 쿠데타 직후 《민족일보》 발행인 처형을 비롯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숱한 민주인사들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범이었다는 사실도, 민주공화국 헌법을 유린하고 사실상 총통으로 군림하며 정수장학회니 육영재단, 영남대 재단 따위로 다른 사람 재산을 빼앗거나 축적한 사실도, 국가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에 ‘채홍사’를 둘 만큼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다는 증언도 죄다 중요하지 않다.”

때문이다. 박근혜가 절대 차기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될 이유다. 그는 과거의 인물이다. 미래를 만들어갈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반대, 비난만 할 순 없다. 지금의 국민정서를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민주정권이 10년을 집권했지만, 서민들의 삶은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양심과 염치 따위는 개한테나 줘버린 이명박 정권이 그 이후 더 파탄으로 이끌었지만, 여전히 야당이나 진보진영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는 싸늘하다. 이것을 과연 조중동 프레임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때문이다. 이 책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비록 실체가 불명확하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를 정확히 알아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진보 학자들이 접근한 박근혜 현상은 매우 중요하다.

책은 박근혜의 힘을 낳는 정치구도와 전략, 박근혜 정치의 작동방식, 박근혜 현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 여론을 통해 본 박근혜의 강점과 딜레마, 박근혜의 대북관, 통일관 등을 분석한다. 이제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인 박근혜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손석춘 원장의 《박근혜의 거울》을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지금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을 넘어선, 그리고 이명박과 같은 치명적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고, 진정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런 미래를 위한 꿈을 꾸어야 한다.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그렇기에 박근혜와 같은 과거를 현명히 버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의 손을 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는 노인들을 혐오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은 길이 있음을, 그 실체를, 그 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게 진보의 역할이다.

다시 이 땅의 민주화를, 상식을, 평화와 인권과 복지를 뒤로 돌려버릴 박근혜를 사랑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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