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21~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비공식 대화를 가져 주목됩니다. 이번에 북한 현직 관료와 미국 전직 관료가 만난 이른바 반관반민(1.5트랙) 회동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기입니다. 이번 북미 접촉은 한편으로 유엔 대북 제재와 선제타격론 등 미국의 거듭되는 대북 압박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 미국 대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이뤄졌습니다. 어떤 만남이든 사전에 의미 없는 시도는 없습니다. 이번 접촉은 넓은 의미에서 경색화되고 고착화된 북미관계의 ‘출구전략’을 위한 탐색의 성격이 짙습니다. 북미 모두 미국 대선 이후 차기 행정부에서의 대화 가능성을 타진해 봤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번 접촉 참가자들의 면면입니다. 북한에서는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장일훈 유엔주재 차석대사 등 5명이 참석했습니다. 한 부상은 오랫동안 유엔주재 북한 차석대사를 역임하면서 북한의 대미 협상 창구로 활동해왔고 미국 내 인맥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통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건 전직 관료인 미국 측 인사들입니다. 미국에서는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 토니 남궁 전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한국학 연구소 부소장 등 4명이 참석했습니다.

알다시피 갈루치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제네바합의를 이끌어냈으며, 디트라니 역시 2005년 9·19공동성명 당시 미국 측 차석대표로 참석했던 북핵 전문가입니다. 시걸은 1차 북핵 위기를 다룬 명저 ‘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에서 1994년 6월 북미 간 일촉즉발의 전시 상황이 민간외교를 통해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그래서 제목 그대로 미국 당국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흘러나오는 얘기로는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항상 이 문제의 쟁점은 ‘북핵 폐기 대 북미 평화협정 체결’입니다. 당연히 북한은 ‘선(先) 평화협정’을, 반면에 미국은 ‘선 핵폐기’ 또는 ‘선 핵동결’을 주장했을 터입니다.

이렇게 보면 양측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소득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특히 대화파들의 경우 다음 대화의 지속성을 위해 뭔가 필요한 것을 찾기 마련입니다.

회동 후, 시걸 국장이 “개인적 견해로는 ‘일부 진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밝힌 점이 그것입니다. 이들 미국 전문가들은 그동안 북한과의 비공식 대화채널을 유지하며 북측 입장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번에도 이들은 이번 접촉을 통해 확인된 북측 입장을 토대로 대북정책 보고서를 작성해 차기 행정부에 정책제언 형식으로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일부 진전’의 내용이 포함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이번 북미 접촉에 대해 “미국 정부의 의지와 무관한 민간 접촉”이라며 평가절하 했습니다. 대북 압박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뜻인데, 문제는 그 이후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미국 측은 이번 접촉에서처럼 ‘포스트 오바마 행정부’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민간 차원의 움직임이 당국 간 대화로 이어진 예가 왕왕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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