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남아 있는 007에 대한 첫 기억. 음. 숀 코너리나 로저 무어 같은 옛 배우들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한참 여러 편의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도 아니었던 것 같다. 암튼….

프랑스 파리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액션신을 연출했던 작품이었다. 본드 걸이 흑인 배우였다는 것도 기억나고, 암튼 무슨 성인영화를 훔쳐보는 듯한 감동(!)으로(당시 내가 미성년자였고, 007이 성인영화이긴 하지. 아동영화는 아니니….)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영국의 소설가 이언 플레밍이 007시리즈를 처음 선보인 것은 한반도의 전쟁이 비로소 멈춘 1953년이었다. 007은 그야말로 냉전과 함께 탄생한 ‘냉전의 아이콘’이었다. 구 소련 등 공산주의권 국가에 대한 공포와 증오로 만들어진 007. 이제 냉전이 끝나고 더 이상의 이념 갈등은 없다고 말들 하는 지금, 이지만 역시나 007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1억 권이 넘게 팔렸다는 007시리즈. 이언 플레밍은 이제 가고 없지만, 많은 후배 작가들이 그를 기념하는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다. 《데블 메이 케어》의 작가 시배스천 폭스 역시 그 중 하나다.

007시리즈는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무기와 함께 등장한다. 영국의 비밀 정보국, 즉 007의 직장(!) MI6은 세계를 붉게 물들이려는 악당의 무리들과 필사의 대결을 벌인다. 물론 언제나 승리는 007의 몫. 그리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자본주의 사회의 몫이다.

▲ 시배스천 폭스, 『007 데블 메이 케어』, 열린책들, 2011. 9. [자료사진 - 통일뉴스]

《데블 메이 케어》에 등장하는 악당은 영국을 증오하는 인물이다. 물론 제정신은 아니고. 콤플렉스와 광기로 가득 찬 인물이 등장한다. 이 악당은 영국이 너무나 싫어서 소련과의 전쟁을 유도한다. 그렇다면 공멸인가.

007시리즈는 우리 편과 적의 명확한 구분 아래 시작한다. 그래야 시원시원하고, 독자나 관객들이 몰입하며 작품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악당은 결국 패배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로 전개된다. 만약 악당이 승리하고 작품이 끝나버린다면? 뭐, 아마 속편이 나오겠지.

007시리즈는 모든 첩보영화의 기본 골격을 만들어준 작품이다. 〈미션 임파서블〉이나 기타 수많은 첩보영화들은 007을 떼놓고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오랫동안 사랑받았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기본 구조에 충실했다는 반증이다. 증오와 대립, 반전과 유쾌한 승리. 영국 혹은 미국이 결국 이 미개한 인간들을 멸망에서 구해내고, 인류는 몇 나라들의 첩보원 몇몇으로 다시 생을 이어간다. 아름답다!

문학은 문학으로 이해해야 하고, 즐겨야 한다. 시비 걸고 싶지 않다. 전혀. 하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미개한 족속에 속하는 나로서는 마냥 즐겁게 볼 수만은 없다. 아름다운 본드걸이 등장하고, 온갖 화려한 액션과 거대한 스케일이 스크린을 압도해도 말이다.

1962년 10월, 전 세계의 운명은 미국과 소련의 핵 장난질로 멸망의 문턱까지 간 바 있다. 1994년 한반도는 미국 대통령의 한 마디로 불바다가 될 뻔 했다. 현실 역시 우리 의지대로 되는 것은 별로 없다. 아쉽지만 현실이다.

영화를 통해 미국은, 영국은, 이른 바 선진국이라 말하는 패권국가들은(사실 영국을 패권국가라 하기엔 이미 무리가 따르지만) 전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만방에 알린다. 아울러 자신들의 정의감, 선의를 믿어 의심치 말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치료약이 없어,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아이들은, 선진국 대통령의 한 마디에, 선진국이라 말하는 집단들의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대부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지적 재산권, 특허권이란 명분으로 아프리카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의 숫자를 알게 된다면, 환멸을 넘어 인간에 대한 회의마저 들 것이다. 정말 돈을 위해 아이들을 매일 학살하고 있는 것이 같은 인간인지 말이다.

그래, 영화는 영화로 보자.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고, 온갖 명배우들이 출동해서 고생해가며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내니, 우리는 즐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적어도 진실은 무엇인지 명확히 알며 읽을 수 있고,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이들이, 난 그런 사람들이 그래도 다행스럽게 믿음직한 ‘시민’들이라 생각하고 싶다.

역대 007시리즈를 한 번쯤 다시 쭉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예 이언 플레밍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007시리즈 DVD전집을 구입할까도 생각해봤다. 뭐, 여유가 있으면 그러고도 싶다. 하지만 먼저 읽고 봐야할 우리의 이야기들이 더 많다. 그때까지 본드여, 조금만 기다려 달라. 아직 때가 아니다.

이언 플레밍의 재림이라 불리는 시배스천 폭스의 문장력도 나쁘지 않다. 한 번 읽고 그냥 그렇게 유쾌하게 덮으면 될 책이다. 아, 그런데 이건 또 뭐냐. 다른 007시리즈가 서재에서 보이는 이유는.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수녀들과 선교사들을 많이 파견했지. 정작 프랑스 본토에서는 1789년부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면서 종교를 대단찮게 여기면서도 자기들한테 땅을 빼앗긴 힘없는 유색 인종에게는 언제나 가톨릭 신앙을 전파했거든. 아마 그렇게 해야 양심의 가책이 덜한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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