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선 / 6.15산악회 총대장

 

▲ 도봉산 다락능선 산행길에 오른 6.15산악회 회원들. [사진-6.15산악회 제공]

이신바예바라는 여자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있다. 아직까지 현역인지 모르겠으나 이 선수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러시아 출신으로 반듯한 외모와 늘씬한 몸매에 세계신기록을 여러 번 세우다보니 유명세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라이벌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워낙 출중하다보니 자신의 기록이 세계신기록이며 마음먹고 뛰었다 하면 또 자신이 세운 그 기록을 경신하는 순환구조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신바예바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6.15산악회도 최고령 산행 신기록이 있다. 자격은 대원들과 같은 조건으로 코스를 완주해야 한다. 유기진 선생님은 1925년 을축생으로 92세다. 7~8년 동안 매달 당신께서 몸소 세운 신기록을 경신하셨으니 그 신기록 숫자가 얼마인지 계산하기도 어렵다.

이신바예바 선수의 기록도 대단하지만 선생님의 기록도 이에 못지않게 소중하다. 매 달 봐온 기록이다 보니 당연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제일 빨리 나오셨으며 최고령 산행 신기록을 경신하신 것이다.

▲ 산행길에 만난 단풍. [사진-6.15산악회 제공]

다소 흐린 날씨지만 18명의 회원이 도봉산 입구에 모였다. 우리 산악회 권오헌 회장님이 심한 감기몸살로 참석하지 못한다고 전화를 하셨다. 피로감이 짙게 배어있는 목소리로 오늘 산행 잘 하라고 당부말씀을 하신다. 여든이 넘으신 연세에 격무에 시달려 몸에 큰 무리가 온 듯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하루빨리 쾌차하실 것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오늘은 또 강덕환, 박윤경 회원이 오랜만에 나와 자리를 빛내니 회원들 모두가 반가이 맞이했다. 왜 그리 무심하냐? 그 동안 뭐가 그리 바빴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오늘 오를 산은 도봉산이다.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한 산이다. 사족을 조금 달면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한북정맥을 타고 내려오다 한강봉에서 갈라져 도봉지맥이란 이름을 달고 사패산을 이루고 이곳에 이르렀다. 이 줄기는 우이령을 지나 노고산으로 나아간다.

▲ 멀리 도봉산의 주봉 자운봉과 함께 주능선이 보인다. [사진-6.15산악회 제공]

북한산 국립공원의 일부로 주봉인 자운봉과 함께 산 전체가 커다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풍화작용으로 벗겨진 봉우리들이 솟아 기암절벽을 이루며 절경을 자랑한다.

올 사람 다 왔음을 확인하고 산악회 깃발을 앞세우고 듬성듬성 물든 단풍을 감상하며 암릉으로 이루어진 다락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향했다.

올라가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주말에는 수많은 등산객 때문에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정상부근에 있는 와이계곡 병목현상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가던 선인봉이 훤히 보이는 맞은편 망경대로 올랐다.

선인봉에는 날씨가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가을이 가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오르려고 암벽에 산꾼들이 제비같이 붙어 있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도봉산에서 경관이 제일 좋은 곳으로 이름난 이곳에 좀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시장하다는 회원이 다수라 밥 먹을 자리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산상강연을 하고 잇는 최고령 산행 신기록 보유자 유기진 선생. [사진-6.15산악회 제공]

알차고 푸짐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산상강연 시간을 가졌다. 강사는 앞에서도 말씀드린 최고령 산행 신기록 보유자이신 유기진 선생님이 맡아주셨다. 선생님께서는 “할 말이 너무 많은데 말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보인다”며 당신께서 살아오신 삶에 대해 회고를 하셨다.

유 선생님은 이제까지 후회 없는 한 생을 살아왔다고 하면서 우리를 향해 “자신의 삶에 대해 한없는 자부심을 갖고 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유 선생님은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다방면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어느 곳에 가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항상 남에게 모범을 보여주라는 말씀을 하셨다.

다 듣고 싶었지만 빗줄기가 훼방을 놓으니 어쩔 수 없이 못 다한 말씀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서둘러 강연을 마쳤다.

▲ 산 전체가 커다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6.15산악회 제공]

비가 오는 가운데 돌이 많은 하산 길을 무척 미끄러웠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결국 문제가 생겼다. 이규재 의장님이 미끄러운 바윗길에서 넘어지신 것이다. 얼굴에 상처가 나고 양쪽다리에도 상처가 났다.

넘어진 자리를 보니 그래도 속으로 그만하기를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회원들이 부축을 해서 겨우 하산을 했지만 팔십성상 조국통일을 위해 온몸을 바치신 의장님도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 없는 듯 기력 없음을 눈으로 확인하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하산 후 부근 뒤풀이 장소에서 유기진 선생님의 제의로 “조국통일을 위하여”라는 힘찬 구호와 함께 건배를 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11월 낙성대역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10월 정기산행을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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