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공부는 하지 않고 참 많은 영화들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시험이 다가오면 갑자기 읽지 않던 책이 보고 싶고, TV 드라마가 갑자기 재미있어지고, 영화들도 그렇게나 보고 싶었잖아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 당시 보았던 수많은 영화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뭐 제가 기억력이 좀 좋은 편이라, 대충 제목이나 주연, 줄거리를 들으면 떠올릴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전부 기억하진 못하죠.

하지만 1994년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은 잊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당시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으로 열연했던 영화입니다. 그의 광기어린, 때론 나약하기만 한 괴물의 모습은 좀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열린책들, 2011. 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사실 이 책은 무려 200여 년 전에 쓰여진 고전 중 고전입니다. 모든 공포영화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괴물의 원조 격인 셈이죠. 인간이 감히 신의 영역에 도전하여, 생명을 창조하고, 그 생명이 오히려 인간을 공격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설정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상투적 스토리에 또 다시 빠져들고요. 아마 영원이 이어지지 않을까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정작 메리 W. 셸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드라큘라나 늑대인간, 미이라의 원작자나 배경에 대해 생각보다 모르는 것과 같죠. 너무 유명하면, 오히려 그 근원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간에겐 말이죠.

끔찍한 괴물의 원조를 창조해낸 이가 여성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울러 《프랑켄슈타인》이 그녀의 첫 작품이자 거의 유일한 대표작이라는 점도 재미있고요. 연인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사람들과 장난삼아 시작한 ‘괴기소설’ 창작하기가 결국 문학사에 남을 고전을 만들어냈으니, 이것도 운명이었을까요.

하여튼 저자의 이름마저 가려버릴 정도로, 프랑켄슈타인은 20세기 대중문화의 뚜렷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창조한 불운한 주인공의 이름이었음에도, 후에는 괴물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유명해진 것이죠. 원래 괴물은 이름조차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 책이 만약 단순한 괴기소설, 공포소설의 의미가 가지고 있었다면, 글쎄요. 지금까지 그토록 많은 영화, 소설, 연극 등으로 재창조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00년 전에 던진 메리 셸리의 질문에 여전히 인류는 답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우리는 아직도 황우석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여전히 유전자 복제, 생명 복제 등의 단어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아마 더 확산되겠죠. 사회적 합의나 정서가 허락하지 않는 생명 복제가, 인류의 생명을 구원하고 경제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점차 합리화되고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까요.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럼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온전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대의와 열정으로, 혹은 개인적 욕망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무책임하게 저질러지는 과학의 광기가, 결국 인류를 모두 ‘인간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진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복제 생물, 인공 생명체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꿈꾸는 것일까요. 무책임한 결과에 따라 만들어진 생명체가 창조자에게 버림받고, 광기어린 괴물로 변해버리는 과정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이 전해주고자 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과연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가능할까요?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욕망과 열정이 숨 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프랑켄슈타인》은 인류의 추악한 욕망과, 뒤늦은 후회.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되려 했던 인간의 욕망은 결국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결과를 안겨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선택은 결국 우리들의 몫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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