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는 조선 초기의 이상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안평대군의 개인적인 꿈이라지만, 중국 동진 때 시인 도연명의 [도화원기]의 무릉도원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무릉도원에 나오는 핵심 이야기는 전쟁과 살육, 약탈이 없는 곳, 과거의 전통과 예법을 지키는 것, 자급자족하며 평등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곳 따위이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공동체를 상징한다.
중국의 어디쯤 있다는 무릉도원 이야기는 조선 후기까지 태평성대의 영상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전쟁을 겪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성리학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신진 선비들이 인조반정을 통해 정권의 중심이 된다.
신진 선비들은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오랑캐인 왜국이나 청나라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러한 선비들의 생각은 조선을 인문학의 중심 국가로 보는 조선중화사상을 완성시킨다.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를 통해 이 땅이 곧 이상세계라는 것을 표현한다.
금강산을 중심으로 한양 주변의 풍경이 그려졌고 관동팔경, 단양팔경 따위로 확장되면서 조선 팔도의 명승지는 모두 이상세계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전도]도 마찬가지이다. 이상세계를 표현한 그림에 사람을 그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神)이나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았던 성리학과도 연관이 있다.
그래서 조선의 이상세계는 대부분 풍경이 중심이다. 인물이 가끔 등장하기는 하지만 여행자나 풍류를 즐기는 사람을 조그마하게 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최소한 김홍도 이전에는 그랬다.

김홍도는 일정부분 도교를 유학적으로 수용하여 신선세계를 곧 태평성대의 세상으로 보았다. 동시에 신선세계에 사는 신선을 조선의 선비들로 표현했다.
이것은 중인신분 화원이었던 김홍도의 독자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 당시 주류 선비들의 생각과 정서를 미술적으로 반영하고 표현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신윤복은 풍속화를 통해 선비의 풍류를 그렸다.
앞선 그림이 산수가 중심이었다면 신윤복의 그림은 인물이 중심이고 산수는 배경의 역할을 한다. 또한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모습도 표정이나 복장, 행동이 구체적이다.

▲ 김홍도/삼공불환도/견본수묵담채/418.4*133.7/1801년/호암미술관 소장. [자료사진 - 심규섭]
 

[삼공불환도]는 정승벼슬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뜻으로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표현한 그림이다. 동시에 그런 세상을 간절히 바란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이 그림의 연원은 1801년 12월 순조의 병이 쾌차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한공(韓公)이 계병을 만들어 휘하의 관료들에게 나누어 준 그림 중에 하나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는 4점의 작품이 나온다. 그 중 [신우치수도] 2점은 도교적 내용을 담은 그림이고, [화훼영모도]는 꽃과 새 따위를 그린 것이며, [삼공불환도]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린 것이다.
김홍도의 나이 57세의 완숙한 필치로 완성한 이 작품은 한 폭에 그려 8폭 병풍으로 만들었다.

이 그림은 이상세계를 그린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전체적인 구조가 비슷하다.
그림의 구조는 크게 좌우로 2등분 된다.
중앙의 담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집안의 모습을 그렸고, 왼쪽은 산과 들판, 작은 개울을 그렸다. 그렇다고 담장 사이에 넘지 못할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몽유도원도]의 경우 왼쪽으로부터 출발해 오른쪽의 동굴 마을로 연결된다. 마찬가지로 [삼공불환도]는 왼쪽 나룻배와 고기잡이 그물이 있는 어촌에서 출발하여 위쪽의 소를 탄 선비와 아래 쪽 아이를 업고 바구니를 머리에 인 아낙네는 모두 오른쪽의 대갓집으로 연결된다.
마치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최항, 신숙주 등과 함께 무릉도원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상상 속에나 존재할 수 있었던 [몽유도원도]의 기암괴석은 낮고 부드럽고 산과 들판, 강으로 대체되었고, 복사꽃이 만발한 동굴 속의 마을은 소나무, 대나무, 버드나무로 둘러싸인 대문 안쪽의 큰 기와집으로 표현되어 있다.
담장 안쪽에는 큰 기와집을 그렸는데 높은 담과 대문이 있어 마치 독립된 공간처럼 보인다.
이는 좁은 동굴을 통과한 이후 넓은 마을 있다는 [무릉도원] 속의 이야기와 흡사한 표현이다.

집안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등장한다.
그네 뛰는 여자아이, 베 짜는 아낙네, 공부하는 아이, 글을 읽은 유생, 동료들과 풍류를 즐기는 선비, 술상을 들고 나르는 주모,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피우는 사람, 비파를 연주하는 사람, 마구간의 관리하는 머슴 따위는 특별한 연결고리 없이 저마다의 역할에 충실하다.
불에 탄 자욱이 확연한 오른쪽 기암괴석이 그려진 곳에는 정자가 있다. 정자 안에는 술판이 벌어졌는지 주모는 술병을 나르고 있다.
중간 쪽 대문을 경계로 왼쪽에는 들판과 강과 산이 그려져 있다.
들판에는 농사일을 하는 농부가 있고 아이를 업고 새참을 머리에 인 아낙이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또한 강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고 위쪽에는 소를 타고 오는 선비도 보인다.

▲ 삼공불활환 부분-소나무, 대나무, 버드나무로 둘러싸인 대갓집에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다. [자료사진 - 심규섭]
 

이 그림에는 선비들의 지조와 절개, 풍류를 상징하는 여러 요소들이 표현되어 있다.
태호석과 파초, 소나무, 대나무, 버드나무와 하늘을 날고 있는 제비나 연못의 오리가 그것이다.
또한 그림 속의 집안에는 마구간의 두 마리의 말과 안채 마당의 개와 닭들이 그려져 있다.
특별히 관심을 끄는 동물은 세 마리의 사슴과 두 마리의 학이다. 알다시피, 학과 사슴은 신선세계를 상징한다. 학이나 사슴을 집안에서 키우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이런 표현을 한 것은 이곳이 신선세계, 곧 이상세계라는 것은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의 내용은 중국의 유명한 문인인 중장통의 낙지론(樂志論)을 바탕으로 했지만 중국풍이 아니라 조선의 풍경과 사람을 그렸다.
중국의 어디쯤 있다는 이상세계는 조선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또한 허황된 신선이나 중국의 유명 인물이 아닌 조선의 사람을 그리고 있다.
조선 땅이 곧 이상세계라는 조선중화사상이 올곧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보통 이상세계, 태평성대의 세상은 상상이나 꿈속에만 볼 수 있는 머나먼 곳이다.
하지만 그림 속의 세상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손에 잡힐 것 같이 실제와 유사하다.
현실과 유사한 태평성대를 표현한 것은 꿈과 현실 사이가 그만큼 가깝다는 말이고 동시에 이상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 자신감이 넘쳤다는 말이다.

그림 속에는 전쟁과 살육, 약탈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세상은 원래 있었거나 절대자가 만들어 준 곳이 아니다.
선비들은 엄격한 예법을 통해 사회질서를 발전시키고 자발적 청빈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었다.
농민은 농사를 짓고 어부는 물고기를 잡고 아낙네는 물레질과 같은 노동을 한다. 자녀를 가르치고 악기를 연주하고 소박한 풍류를 즐기는 일은 모두 올바른 정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군사적 패권이나 물질적 허영이 아니라 지성과 인격, 희생과 같은 인문학으로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세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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