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대로 논다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문제나 사달은 사람들이 생긴 대로 놀지 않고, 생긴 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벌떡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분수를 알고 주제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어쩐지 무언가에 순응적인, 그런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뭐, 그게 뭣이 다른디?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적당한 편안함을 주는 옷처럼, 자연스럽게 이 세상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사는 것이, 결국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뿐이다. 뭣이 다른지는…결국 모르겄네.

그런 면에서, 다시 돌아보자면 어린 시절엔 참 생긴 대로 놀지 않으려 발악하며 보낸 것 같다. 심히 부끄럽다. 뭐 애들이 다 그렇지요, 하며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어느 새 올챙이의 마음을 잊어버린 못된 개구리 심보가 생긴 것 같아, 더 부끄럽기도 하다. 암튼 늦게나마 생긴 대로 살고, 생긴 대로 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본래 심성이 유약하다. 쉽게 흔들리고, 냉정하지 못하다. 어린 시절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아닌 척 하느라 나름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생긴 대로 보여주며 살아간다. 슬프면 마음껏 슬퍼하고, 행복하면 행복하다 말한다. 여전히 때와 장소에 따라 타인을 의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유약한 녀석이, 가장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 있다. 바로 아이들이 고통을 겪는 모습을 볼 때다. 물론 어르신들의 팍팍한 삶 역시 가슴을 찌르지만, 아이를 갖게 된 뒤로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먼저 눈에 밟힌다. 그리고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며 살아간다.

언젠가부터 끔찍한 소식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아이들의 어이없는 죽음과 고통이 이젠 사람들로 하여금 예전보다 더 큰 분노와 상처를 주지 않는 것 같아, 더 아프다. 아이들이 겪어야 했을 고통을 상상하는 것조차, 내겐 벅차다. 때문에 여전히 난 세월호에 대한 가슴 가득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간다.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다. 끝난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아동학대와 방치 등으로 미국에서는 1,580명의 아이들이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차마 우리나라의 통계 자료를 살피지 못하는 것은 역시나 유약함의 발로이다. 하지만 우리 역시 해마다 적지 않은 어린 생명들이 무관심과 방치 속에 숨져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아이들이, 어린 생명들이 행복하지 못한 사회는 불행하다. 미래가 담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아이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그 악순환이 결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희망을 앗아간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천사들을 지극히 살펴야 한다. 떠나간 후에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

부모는 단지 아이에게 생명을 준 것으로 그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 아이가 자라며 세상의 결핍을 깨닫고 타인의 눈물에 공감하며, 그 결핍과 눈물을 받아 안아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한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다.

물론 나 역시 지금껏 심히 부끄럽게도 아빠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 무슨 거창한 일을 한다고, 무엇이 그리 잘났다고 주제넘게 설치는 동안, 아이는 아빠와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을 홀로 보내야 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과는 또 다른 의미인 ‘아빠의 시간’을 나는, 온전히 전해주지 못했다.

▲ 글 마빡소녀 조문채와 배추벌레 이혜수 / 그림 배추벌레 이혜수, 『100% 엔젤 - 나는 머리냄새 나는 아이예요』,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10. 1. [자료사진 - 통일뉴스]

‘100% 엔젤’은 엄마와 딸이 함께 써내려간 일기다. 딸의 일기에 엄마가 답장을 보내는 형식이지만, 사실 엄마 역시 딸을 위한 일기를 써내려간 셈이다. 엄마는 일기를 통해 아이에게 타인에 대한 공감과 결핍에 대한 인정을 이야기한다. 아이는 머리를 자주 감아도 냄새가 났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엄마는 말한다. 누구나 사람은 그와 같은 어쩔 수 없는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지만 바로 그 결함과 결핍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나와 그가 다르지 않음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기실 지금 어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일 수도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은 바로 타인에 대한 공감의 결핍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상처에 둔감한 사회는 무참함에 대한 인식마저 상실케 되는 것 아닐까.

엄마(마빡소녀 조문채)는 딸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칠 생각이 없다. 다만 가식 없이 딸에게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타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이야기한다. 가족의 따스함이 전해지면서도, 파란 생명력이 글 곳곳에서 전해진다. 편견이 없이, 감정을 숨기지 않고, 때로는 경이롭고 때로는 분노가 솟구치는 이 세상 그 자체를 함께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모녀. 함께 세상과 소통해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흐뭇한 감동을 전해준다. 그리고 어떤 교육이 참된 교육인지, 과연 교육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함께 바라보는 것, 그것은 단순한 훈육과 교육이 아닌 수평적인 대화와 소통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 눈으로 함께 세상을 보려는 엄마의 노력 자체가 이미 그 무엇보다 소중한 양육법이 될 것이다.

딸(배추벌레 이혜수)의 독특한 일러스트가 함께 해 더 빛나는 책. 수없이 많은 학원을 돌리며, 학군을 따라 이사를 반복하고, 아이들을 아이가 아닌 ‘몇 등’ ‘몇 등급’으로 나누는 것이 아이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다면, 잠시 헬리콥터를 착륙시키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우리가 혹시 아이들의 행복을 무단으로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면서.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아껴가며 읽은 책이다. 반성과 감동이 반복되며, 때로는 미소 짓게, 때로는 뭉클하게 만드는, 마술 같은 책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결함은 있단다.
그리고 고치려고 해도 때로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결함도 있지.
집이 가난하다거나 다리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그 아이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네가 머리를 자주 감는데도 머리냄새가 아는 것과 똑같지.

우리는 모두 저마다 모양이 다른 결함들을 제각기 지니고 산단다.
하지만 결함이 때로는 고마운 것이 되기도 하지.
세상일이란, 이해하려고 노력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해되는 것이 있더라.
그건 자기 결함 때문에 괴로움을 겪어 보거나,
자기 결함을 숨기지 않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저절로 가질 수 있는 이해심이지.

너의 머리냄새가, 다른 사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아주 고마운 것이 되기를 엄마는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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