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30대 이상이라면 어렴풋하게 ‘삐라’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MB정부 들어서, 그리고 지금 역시도 새로운 차원의, 하지만 너무나 고루한 ‘삐라’를 보고 듣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역사의 진보는 적어도 최근 10년간은 ‘동작그만’이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삐라는 학교 선생님이나 파출소에 신고해야 하는 ‘위험한’ 그 무엇이었다. 저자 이임하는 6․25전쟁 시기 미군이 살포한 무수히 많은 삐라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미국적 가치’를 규명하려 노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은 FBI(연방수사국)가 천 년을 조사해도 끝내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의 삐라를 뿌렸다. 그리고 6․25전쟁 때는 다달이 1억 장이 넘는 삐라를 한반도에 뿌렸다. 매일 500만 장 가까운 종이가 하늘에서 내려와 쌓였다. 미국은 왜 그렇게 많은 삐라를 뿌렸을까? 무릎까지 찰 만큼 많은 삐라를 뿌린 까닭이 무엇일까?

▲ 이임하, 『적을 삐라로 묻어라 - 한국전쟁기 미국의 심리전』 , 철수와영희, 2012. 10.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저자의 이런 의문은 책을 펴낼 그 순간까지 다 풀리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느낌만은 또렷했다. 어마어마한 삐라의 생산과 살포는 대량생산과 소비를 넘어 과잉생산과 소비를 닮았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6․25전쟁이 시작될 즈음 대량생산을 넘어 과잉생산의 단계로 들어섰다고 한다. 6․25전쟁 때의 심리전 삐라는 자본주의가 과잉생산 과잉소비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늘에서 펄펄 쏟아져 내렸다.

심리전은 이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냉전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냉전은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재생산하는 촉매 가운데 하나가 아니던가. 그렇게 6․25전쟁 때 삐라는 과잉생산 과잉소비, 심리전, 냉전을 하나로 묶는 열쇳말이었다.

저자는 6․25전쟁 당시 수행된 미국의 심리전을 연구하던 중 삐라가 가장 많이 사용된 수단이었음을 알았다. 그런데 삐라에 담긴 내용들은 저자가 어렸을 때 배웠던 반공교육의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유, 평등 등 교과서를 통해 알았던 가치들이 이미 미국의 심리전에서 이야기되었던 것들이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배웠던 가치관들이 결국 그 사람의 세계관을 형성함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쟁 당시 미국이 뿌려댄 삐라의 내용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윤리관, 가치 등이 과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삐라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서 소중한 가치라 불리는 다양한 것들이 왜 그동안 선언적 수준에서만 그쳐왔는지도 삐라를 통해 확인하고자 했다.

미국이 6·25전쟁 당시 삐라를 통해 심리전을 펼친 배경에 대해 저자는 “이미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심리전의 위력을 확인했다. 독일 나치가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선전, 선동은 전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이러한 나치의 선전술을 이어받았다. 다만 나치가 선전을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에 비해, 미국은 적을 대상으로 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미국 내에서도 왜곡과 조작, 거짓으로 진실을 가린다는 부정적 의미를 가진 선전에 대해 비판적이었음에도, 미 정부와 군은 이를 심리전으로 이름만 바꿔 유지했다. 그리고 6․25전쟁 이전에 중요한 정보기관들이 구축되었고, 심리전에 필요한 예산도 충분히 확보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미국이 심리전에 주력한 것은 근대전, 즉 총력전의 완성이 심리전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총력전이라 하면 전 국민을 동원하는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심리전은 동원의 차원을 넘어 전후사회의 재편까지 고려한다. 전쟁 이후 사람들의 가치관, 세계관까지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우 전쟁 당시 미국의 심리전 내용들이 사회구조 재편에 그대로 반영됐다. 특히 교육 부분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북의 군인들과 민간인, 중국군을 대상으로 생산된 삐라가 어느새 한국의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교육 내용으로 자리 잡았다. 심리전은 단순히 전쟁의 승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사고를 바꾸어 버리는 무서운 도구였던 것이다.

저자는 대부분 사람들이 신자유주의가 1980년대 서서히 그림자를 내비치다가 1990년대 본격적으로 얼굴을 드러냈다고 하지만 냉전은 이미 신자유주의적 특징을 잉태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과잉된 생산과 소비는 한 나라의 경계를 넘어 온 지구를 헤집으며 자연을 훼손하고, 노동력을 갈취하고, 하나만으로도 수십, 수백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산더미처럼 쌓고 있다.

6․25전쟁 때 삐라의 생산과 소비는 이런 모습을 닮아 있다. 읽지도 않을, 지천에 널려 있는, 불쏘시개로 쓰일 삐라를 무한 생산해 뿌리지 않았는가. 이러한 과잉생산 과잉소비의 신자유주의적 문화는 고스란히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지금도 삐라는 남북이 애용하는 선전수단이 되어버렸다. 동시에 한반도에는 여전히 미국적 가치를 담은 수많은 ‘삐라’들이 뿌려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을 상징하고, 때론 포장하는 수많은 기제들이 지금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6․25전쟁을 통해 전달된 미국의 이미지를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는 절대선으로 강렬히 인식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살아있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의 이익이 곧 우리의 이익이라는 착각에 빠진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자국의 이익을 포기한 채 타자를 위해 희생한 적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선과 일본을 처리한 방식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은 일본의 전범세력을 몇몇의 군국주의자로 한정시키고, 천황은 평화주의자로 둔갑시켜 면죄부를 주었다. 이것이 향후 미국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천황이 전범으로 처벌받았다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일 간 역사분쟁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전쟁 피해국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라 불리는 이들이 신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흥분하지 않고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더 혈안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은 삐라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기제들을 통해 미국적 가치가 전해지고 있다며, 이를 냉철히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도 우리는 전쟁 중이다. 하지만 더 이상 전쟁의 주체는 남과 북의 인민군과 국군이 아니다. 분단 체제의 유지를 통해 이익을 얻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전쟁을 끝내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얻어내는 미국일지도 모르겠다. 어지럽다. 저자의 마지막 말에 희망을 걸어본다.

“삐라들이 담아낸 공산주의 비판의 흔적은 그대로 살아 전쟁 뒤 한국 사회에 그 흔적을 남겼다. 한국 사회가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방식이나 내용은 삐라의 그것과 완전히 닮아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이 단지 공산주의의 비판만으로 얻어지는 현실 또한 그렇다. 삐라는 전쟁 이후 사람들의 의식 속에 살아남아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다. 이를 깨뜨리기 위한 노력이 여전히 필요하다. 앞으로도 6․25전쟁은 계속 호명되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에 대해 다양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친 전쟁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경험에 대한 강요된 억압’을 깨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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