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는 도교와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
수도승이나 신선 따위를 그린 그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당시 불교와 도교는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그럼에도 중인신분이었던 일개 화원이 버젓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조의 개혁정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사실 도교와 불교는 주자성리학의 우주관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율곡 이이가 금강산으로 출가하여 불경을 섭렵한 후 조선성리학을 완성한 것도 일맥상통한다.

아무튼 김홍도는 도교의 영향이 짙은 많은 신선도를 남겼다.
7m에 이르는 군선도(群仙圖)를 그리기도 하고 [요지연도]와 같은 궁중회화도 있다. 모두 김홍도와 연관이 있는 그림이다.
그 중에서 이 그림은 [동방삭]을 그린 것이다. 화제에는 [낭원투도]라고 적혀있는데 낭원(閬園)은 보통 신선세계를 뜻하고 투도(偸桃)는 복숭아를 훔친다는 의미이다.
그냥 [동방삭]이라고 쓰면 될 일을 굳이 [낭원투도]라고 에둘러 표현한 이유는 뭘까?

▲ 김홍도/낭원투도/49.8*102.1/종이에 담채/간송미술관.
천도복숭아를 든 동방삭은 기쁘지 않다. 대신 여기저기 살펴보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자료사진 - 심규섭]
 

신선도에 나오는 신선은 종리권(鍾離權), 여동빈(呂洞賓), 장과로(張果老), 한상자(韓湘子), 이철괴(李鐵拐), 조국구(曹國舅), 남채화(藍采和), 하선고(何仙姑) 따위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노자, 마고선녀, 동방삭, 하마선인, 선동(仙童)도 등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중국의 신선을 잘 모른다. 그저 하얀 옷에 긴 수염을 한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의 신선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동방삭]이란 신선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추정컨대, 옛날 코메디 중에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이란 유행어가 있었고 이 영향으로 동방삭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신선인 [동방삭]에 대한 이야기는 넘친다.
특히 한번 먹으면 천 갑자를 산다는 서왕모의 천도복숭아를 세 개나 훔쳐 먹어서 삼천갑자를 살았다고 전해진다. 1갑자가 60년이니 18만년을 살았다는 허무맹랑한 소리이다. 심지어는 염라대왕이 수배령을 내렸다는 말도 전하는데 서왕모와 염라대왕은 전혀 관계없는 인물이다.
신선에 관해 많은 자료를 찾아 공부했지만 결론은.....뻥이었다. 그냥 이것저것을 가져다 붙이고 과장하고 왜곡해서 그럴듯하게 만든 것뿐이다.

중국에서 그린 [동방삭] 그림을 보면 훔쳐 나오는 모습을 약간은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 많다. 주로 훔쳐 도망가는 장면에 중심을 둔다.
하지만 김홍도가 그린 동방삭의 모습은 어정쩡하다.
두 손으로 복숭아를 잡고 약간 높게 들고 있다. 몸동작도 훔쳐 도망가는 자세가 아니다. 무게 중심을 뒤로 두고 멈칫거리는 모습이다.
표정은 알쏭달쏭하다. 마치 “이게 뭘꼬?”하며 궁금해 하는 표정이다. 순간적인 표정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가진 김홍도가 이런 애매한 표정을 그린 이유는 뭘까?

김홍도가 그린 신선은 도술을 부리거나 권위적인 모습이 없다.
책을 읽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농기구를 든 모습이 중심을 이룬다. 또한 군선도의 곳곳에는 익살이나 해학적인 표현을 통해 엄숙함을 희석시킨다.
김홍도가 신선을 수용하는 방식은 철저히 선비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신선과 선비를 하나의 가치로 묶으려고 했던 흔적이 곳곳에 나타난다.

김홍도가 그린 [낭원투도]는 분명 [동방삭]을 그린 것이다.
머리의 모습은 중국의 것과 비슷하고 허리춤에 댄 지푸라기 따위는 신선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하지만 천도복숭아를 보는 사람은 [동방삭]이 아니라 김홍도 자신이면서 동시에 선비가 투영되어 있다.
표정은 호기심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과연 이것을 먹으면 삼천갑자를 살 수 있을까?’
‘불로장생하는 과일이 존재하기는 할까?’
‘서왕모가 아꼈다는 반도(蟠桃, 천도복숭아)는 우리에게 어떤 쓸모가 있을까?’

조선의 선비들은 도술이나 불로장생 따위를 믿지 않았다.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완전하게 한다는 뜻이다. 세상에 대해 이런 학문적 자세를 가졌던 선비들이 반자연적이고 허무맹랑한 불로장생, 삼천갑자 장수 따위를 믿었겠는가.

그리스로마 신화에 프로메테우스 이야기가 전한다.

▲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는 극심한 고통을 당한다. 신과 인간이 반목하고 싸우는 바탕이 되고 동시에 휴머니즘 사상이 담겨있다. [자료사진 - 심규섭]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거대한 바위에 묶여 커다란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며 고통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동방삭]이 서왕모의 선계에서 반도(蟠桃, 천도복숭아)를 훔친 전설이 있다. 이것을 중국에서는 개인의 가치, 즉 불로장생으로 수용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프로메테우스처럼 백성들에게 천도복숭아의 가치를 나누어 주었다. 한양에 수많은 복숭아나무를 심고, 복숭아를 먹었으며, 복숭아꽃 아래에서 꽃놀이를 했다. 그림 속에는 이상세계를 뜻하는 복숭아열매가 주렁주렁 열렸고, 백성들은 생활도구에 복숭아를 그려 넣어 꿈과 희망을 키워나갔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는 끔직한 고통을 당했고, 천도복숭아를 훔쳐 먹은 중국의 [동방삭]은 저 혼자서 불로장생을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불로장생의 복숭아를 모든 백성의 꿈과 희망으로 녹여낸 우리 선조의 가치도 본받을 만하다. 정치는 무릇 이래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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