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따지고 들자면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지난 2012년 말, 나는 참 두렵고도 절박했던 듯싶다.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모순들에 대해 적잖이 분노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엄연히 국가의 주인은 국민임에도, 아니 주인을 넘어 다소 낯간지럽기까지 한 ‘고객’이라는 이름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정작 국민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은 시대. 오히려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하고, 말 그대로 죽음과도 같은 ‘탈락’ ‘낙오’를 피하려, 발버둥치는 시대. 딱히 크게 잘못한 이들은 없는 듯한데, 이상하게 대다수 국민들이 형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변화는 간절했고, 현실은 남루했다. 딱 그랬다.

때문에 주로 사회의 아픈 문제들을 진단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책을 찾아 읽은 것 같다. 평소에도 물론 사회 비평서나 인문교양․정치평론을 즐겨 읽었지만, 2012년 하반기, 아니 1년을 통틀어 꽤나 많이, 혼자 아파하고 분노하고 뭐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과연 그런 수고(?)를 한 보람이 있었는지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미처 관심을 갖지 않았던 문제들에도 눈을 돌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분명 많이 배운 시간들이었다.

▲ 김대호·윤범기, 『결혼불능세대 - 투표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라』, 필로소픽, 2012. 4.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 책은 두 남자가 중심이 되어 늘어놓은 담화(!)다. 한 남자는 정책 이론가이자 글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 진보진영의 ‘까칠 왕따’이고, 또 한 명은 나와 동갑인 ‘개룡뻔남’ 기자이다. 개천에서 용이 될 뻔한 남자라는 뜻이다.

이 두 남자는 청년들의 결혼 문제를 시작으로 이 시대 진보진영의 한계 그리고 과제, 비정규직 문제, 교육정책, 정치참여의 절박성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 청년 게스트, 정치인, 교육전문가 등이 끼어들어 나름의 ‘노가리(!)’를 선사한다.

개룡뻔남 윤범기 기자가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우선, 까칠한 진보논객 김대호 소장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이 나름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 소장의 글이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다소 난해해서 많은 이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우니, ‘주고받기 노가리’ 방식으로 풀어낸다면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윤 기자의 생각이 옳았다고 본다. 일단 읽기에 부담이 없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불능세대라, 살벌한 단어다. 결혼이 아예 불가능한 세대. 반드시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지금도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아이들이 적다고 걱정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확실히 더 줄어들 것은 빤하다. 그리고 그 추세가 이어진다면, 대한민국은 한민족이 아닌 다양한 인종의 복합국가가 아니면, 멸종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장난이 아닌 거지.

‘약간 오버하는 것 아녀?’라고 반응하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상황은 오버의 수준을 상당히 넘어섰다. 영국의 어느 학자는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이어진다면, 우리가 지구상에서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첫 국가가 될 것이라는 살벌한 예언을 한 바 있다. 남의 일이라고 막말을 하셔 아주! 그만큼 우리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 얘기다.

고민해보자. 왜 젊은이들은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 결혼은 사랑만 먹고 피어나는 꽃이 아니다. 아쉽게도. 그리고 교육문제, 보육문제, 주거문제 등 다양한 삶의 조건들이 얽혀있다. 이러한 삶의 필수적인 요소들을 지금의 평범한 청춘들이 감당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리다.

대충 거칠게 계산해봐도 서울에서 부모의 도움 없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최소한 인간답게(!) 살려면 연봉 4천만 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의 전셋값, 집값 등을 고려한 계산이다. 하지만 자녀 출산을 포함시키면 이야기는 조금 더 우울해진다. 상상이 충분히 가능하실 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

지금 청춘 중에 연봉 4천만 원을 넘기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현재 둘이 합쳐 1억 1천만 원 이상이 결혼비용으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과연 그 돈을 너끈하게(!) 감당할 수 있는 커플이 얼마나 될까? 부모의 도움 없이 말이다. 또 다시 우울.

TV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면 온통 신데렐라 성공기 아니면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출생의 비밀(!)’이라는 로또를 만나 해피하게 살게 되는 이야기 투성이다. 물론 TV에서조차 비루한 현실을 담아낸다면 시청률이 바닥을 기어 다닐 것이 빤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현실을 끝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결국 결혼하기 좋은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다. 독신을 고집하는 이들도 물론 존중받아야 하지만 자발적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한 독신은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럼 해법은 무엇일까? 뭐 쉽게 답이 나올 수 있다면 문제 자체가 처음부터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단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수도권 집중 문제가 풀려야 한다. 아울러 출발이 불평등이라는 보다 근본적이면서도 우리나라 특유의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책은 청춘들의 결혼 문제로 시작해,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살펴본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 중 하나. 여기에서 김대호 소장은 진보진영에게서 강한 반발을 살 수 있는 주장을 제기한다. 진보진영이 외치는 ‘비정규직 철폐’ 구호가 오히려 대학생들의 취업을 막는다는 것이다.

그는 비정규직 철폐는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지적한다. 대신 그는 비정규직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한 번 고용하면 쉽사리 해고할 수 없어 채용에 있어서 더 신중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취업의 문은 더 좁아진다는 설명. 정규직 vs 비정규직의 프레임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바꾸어 바라보면 상당히 다를 결과가 나온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사실 우리는 한진중공업 직영 노동자 400명의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분노했지만, 4,000명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해고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불가능한 작전’보다는 부당한 격차의 해소라는 근본적 해법에 주목하자는 주장은 충분히 생각해 볼 문제다.

책은 또한 우리 사회에서 점차 좁아지고 있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다시 넓히는 문제, 이와 관련된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현직 교사이자 교육문제 전문가인 이기정 선생의 솔루션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정치 풍토, 시스템을 꼬집고, 개선이나 변화의 필요성이 있는 선거제도를 지적한다.

의미 있는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정말 열심히, 영리하게 잘 일할 수 있는 정치인을 만들고 키워내야 한다는 주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정치 생태계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의 자각과 행동뿐이다. 국민이 똘똘해야 ‘스마트 국회’ ‘스마트 정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소리.

김대호 소장은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진 상황에서 결혼이 어려워진 이유는 바로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낙관적 예측’이 사라졌기 때문이라 말한다. 지금 팍팍하게 살면, 죽을 때까지 팍팍하게 살 것 같다는 절망이다. 그는 이것이 우리 사회의 무너진 희망의 사다리, 사라진 도전의 사다리 탓이라 말한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말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무너진 시장 사다리를 복원하고, 과도한 부담이 쏠린 교육 시험 사다리를 합리화하고, 빈약한 선거 사다리를 확충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동산 사다리나 상속 사다리와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사다리를 줄여나가야 한다.

언제나 근본적 문제는 지나친 쏠림과 불평등이었다. 왜 우리보다 훨씬 가난하다고 말들 하는 부탄, 라오스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함을 느끼며 살아가는지, 이제 더 이상 모른 척 하지 말자. 그 옛날 공자 선생께서도 그렇게 강조하시지 않았나.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공평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라’고.

두 남자의 재미없어 보이는 만담을 통해, 비록 그들 생각에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분명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공평함’에 대해서 말이다. 인간적으로, 양심적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나 그랬지만 정말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사족을 달자면, 대통령께서 우리 젊은이들이 스스로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자기비하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신다고 말씀하시었다. 그것도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께서 이 책을 읽으실 가능성은 아주 극히 희박하다. 역설적으로 그게 바로 비극이다.

자기비하와 냉철한 현실인식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가 지금의 국정책임자이다. 아, 다시 하나 사족을 달자면, 역대 광복절 경축사 중 이렇게 한심하고 시대정신에 떨어지는 것은 처음이라고 감히,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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