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버려진 곳이나 마찬가지였던 개성공단에서 숨통이 멎어가는 중환자의 손목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숨을 이어보려 무던히도 뛰어다녔던 지난 4년. 사실 고통 속에 숨만 쉬는 그 환자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더 큰 좌절이었다. 그럼에도… 비정상적이나마 숨통만이라도 유지되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란다.”

2011년 7월, 이 책의 기획 총괄을 맡은 김진향 교수가 공단을 떠나며 간절히 바란 것은, 다만 개성공단이 비정상적인 상황으로라도 유지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4년 6개월 후 허무하게 무너졌다.

개성공단이 멈춘 지 벌써 6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이어 온 남북관계가 그야말로 끝장난 것도 딱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이 상황에서 묻고 싶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얻었을까. 그리고 무엇을 잃었을까.

개성공단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기업인들, 노동자들은 오늘도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다시 되돌릴 것을 간절히 바라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싸우고 있다. 평범한 시민, 농민, 기업인, 노동자들을 한 순간에 ‘투사’로 만들어버리고, 끝내 ‘불순분자’ ‘친북좌빨’로 만들어버리는 이 놀라운 능력은 물론 현 정부만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처럼 무참하고 무지하고 단세포적인 결정을 내렸던 정부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개성공단을 잃어버림으로써 더 많은 것을 함께 잃어버렸다.

▲ 기획 총괄 김진향 / 취재 강승환, 이용구, 김새라, 『개성공단 사람들 - 날마다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는 기적의 공간』, 내일을여는책, 2015. 6.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미 많은 이들이 책을 읽었고, 분노했다. 나는 기억한다.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대다수 국민들은 개성공단의 폐쇄를 원하지 않았다.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것을 바랐다. 한 번의 공단 중단이 가져왔던 혼란과 어려움을 이미 경험했기에, 또 다시 불필요한 고통을 자처하지 말 것을 바랐다. 하지만, 정부는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돌이키기 너무나 어려운 결정을 너무도 쉽게 무책임하게 내렸다.

남북관계의 상징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불렸던 개성공단은 한 순간에 북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의 온상으로 매도되었다. 도대체 상식이 사라지고 무지가 당당해지는 순간이었다. 공단에서 땀 흘려 일했던 모든 이들은 한 순간에 북에 핵 개발 자금을 건네 준 불순분자 취급을 받았고, 그들이 망하는 것이, 그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열을 올렸다.

문득 기시감이 밀려왔다. 매카시가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 이것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처럼 보였다. 합법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국민을 한 순간에 백수로 만들어버리는, 그들의 재산권을 마구잡이로 침해하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여기에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그 지긋지긋하고도 살벌한 이름, 안보였다.

이제 개성공단이 북한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하는 이들은 없다. 있다면 어용뿐이다. 그 이후에도 북한의 도발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젠 사드마저 배치한다고 한다.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MD(미사일방어)체제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지만,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세계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 아닌 미국 때문에 사드를 배치하려 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왜 개성공단을 멈추게 만들었을까. 왜 멀쩡한 이들을 한 순간에 실업자로 전락시켰을까. 그들이 책임져야 할 가족들의 생계는 어찌할 것인가. 그들의 상처 받은 자존감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 빌어먹을 안보가 보장되지도 않았는데, 또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개성공단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이고 가족이었다. 그곳에서 함께 일했던 북측 노동자들은 우리의 동포이자, 통일의 파트너 그리고 미리 통일을 함께 만들던 동료였다. 이제 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고초를 겪으며,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나갈지도 모른다.

내 젊은 시절 함께 밴드를 하며 락앤롤 정키를 꿈꾸던 친구 녀석이 있었다. 한없이 순하고 착하기만 한 녀석이 어느 날, 먼저 북한을 이야기하고 통일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평상시엔 정치나 남북문제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녀석이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대뜸, 긴장보다는 안정이, 전쟁보다는 평화가 무조건 좋은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 녀석은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한다. 공단이 중단되어 6개월여의 시간이 지날 동안 가슴이 타들어간다고 했던 녀석의 목소리를, 그리고 이제 지금, 한없이 순하기만 했던 녀석은 ‘이 정권은 분명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라고. 그 녀석은 세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다. 통일박람회에서 녀석의 직장에서 만든 여성 내의를 구입했다. 그냥 내가 미안하고, 면목이 없었다.

금강산 관광이 멈추었을 때, 사람들은 침묵했다. 개성공단이, 강정마을이, 밀양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울부짖을 때 사람들은 외면했다. 그리고 이제 성주가 울부짖고 있다. 사람들은 다시금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모르쇠 정부 지지만 했던 그들에게 오히려 잘 됐다고 고소해 할 것인가.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 기간 동안 북한의 핵 능력은 더 이상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 되었다. 과연 거기에 금강산이, 개성이, 남북경협과 교류협력이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1차 적인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정부에 있다. 정부는 국민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야말로 사드까지 받아버린 지금,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중국의 살벌한 보복을 대비하는 것일까. 미국에 애걸복걸 매달리는 것일까. 더욱 더 북한을 옥죄어 질식사시켜버리는 것일까. 매일 매일 언론에서 떠드는 것을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 나에겐 북한에 대한 제재가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들이, 마치 북한의 인민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것처럼 들린다.

참혹하다. 경제재재가 가져오는 그 엄청난 후과를 우리는 과연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 우리는 나중에 그들에게 무어라 말할 것인가. 우리가 죽어갈 때 너희는 무엇을 했냐 묻는다면 말이다.

참여정부 시절, 돌이켜보면 5번 정도 개성공단을 방문했던 것 같다. 그 이상일 수도, 이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느낌만은 잊을 수 없다. 설렘, 희망, 미래, 기대, 활기…. 지금 그곳은 어떻게 변해버렸을까. 그 때 그 사람들은 어디에 갔을까.

친구 녀석은 버티고 있다. 그 녀석의 회사도 버티고 있다. 많은 이들이 지금 버티며 살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불의에 버티고, 몰상식과 무지함에 버티고, 정상의 비정상화에 버티고, 잔인한 세월 앞에 버티고 있다.

남북관계가 어떻게 되던,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람. 그 어떤 관심도 없다는 사람. 누군가가 해주겠지, 그가 혹은 그녀가 나대신 해주겠지. 이렇게 믿어버리는 세상은 결국 멸망한다. 생뚱맞지만, 연설의 달인 오바마는 미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누가 대신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당신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책은 개성공단에 대한 모든 것이다. 바로 그곳에서 공단을 움직였던 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쓸데없는 논문보다, 보고서보다 확실하다. 뜨겁다. 그리고 눈물겹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그 지겹게도 당연한 것을 여전히 부정하고, 증오와 분노로 살아가는 시대. 개성공단의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는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적을 만들었고, 10년의 세월동안 가꾸어왔다.

이제 하나만 남았다. 귀환이다. 민주주의의 귀환, 주권의 귀환, 정상의 귀환, 정의의 귀환, 그리고 평화의 귀환이다.

눈물겹도록 소중한 책을 펴낸이들에게 다시 한 번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개성에서 함께 땀과 눈물을 흘렸던 남북의 모든 형제들아. 부디 건강하시라. 부디 다시 만나시라. 잊지 않겠다.

“옥류관에서 점심으로 쟁반냉면을 먹고, 나와서 대동강의 을밀대든 부벽루든 어디에서든 대동강을 바라보며 부장님과 대동강맥주를 맘껏 마셔보고 싶어요. 오늘을 추억하며 말입니다. 그 자리에 지난 4년간 개성공단에서 저와 함께 했던 북측의 여러 성원들 초대해서 다들 건강하셨냐고, 정녕 잘 계셨냐고, 진짜 보고 싶었다고. 그렇게들 반갑게 인사 나누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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