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기자 생활을 제법 했다. 비록 이름 있는 큰 곳들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뛰어다닌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기도 했고, 천지분간 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난 어리석다.

참여정부 시절, 김근태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직할 시기였다. 우연히 보건 분야와 관련이 있는 학술회의 취재를 맡게 되었다. 내 전문 분야도 아니었지만 어찌 하다 보니 발길이 세종로 프레스센터로 향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주로 남북관계·통일문제와 관련이 있는 행사에 많이 얼굴을 내밀고 다녔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요즘은 게으름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드물게 얼굴을 들고 다니긴 하지만.

그런데 참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었다. 바로 세미나나 심포지엄, 학술회의 등 행사를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와서 한마디씩 주절거리는 인간들의 얼굴을 봐야 하는 것이었다. 나에겐 따분한 주제의 학술회의보다 그 얼굴들을 보는 것이 더 곤혹일 때가 많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행사의 주최를 맡은 단체의 장이기 때문에, 혹은 제 이름으로 행사를 주최했으니 얼굴은 한 번 내밀어야 예의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인데, 나는 그것이 그렇게도 보기 싫었다.

때문에 일부러 행사의 시간표를 미리 보고 축사와 격려사 따위가 지날 무렵 행사장을 찾기도 했다. 사실 그렇게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보기 싫은 얼굴 중에는 지금의 대통령도 있었다.

▲ 최상명, 『하나가 되지 못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시대정신』 , 푸른숲, 2012. 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런데 그 날은 아마도 시간을 잘못 알고 갔던 것 같다. 행사장에 들어서니 원형테이블 중 한 곳에 기자석이라는 카드가 보였고, 자리에 앉았지만 아직 행사는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그 때 김근태 의원이 행사장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 그때서야 알았다. 오늘 행사가 보건복지부 주최의 행사였다는 것을.

김근태 의원, 아니 장관이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군상들이 파리 꼬이듯 달려들어 악수를 청했다. 모두들 주머니에서 자신의 잘난 이름이 담긴 명함을 꺼내들고 김 장관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얼마나 잘나고, 또한 잘나가는 사람인지 알리기에 바빴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김 장관도 아마 수없이 겪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일일이 악수를 하고 인사를 건네고 명함을 모두 받았다. 그냥 흘깃 쳐다보다 말았는데,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아무래도 오늘 행사도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역시 난 기자 노릇으로 밥 빌어먹기는 글렀다는 생각. 그리고 출세하는 것과도 거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식 웃었다.

그리곤 가방에서 오늘 주제와는 전혀 다른 책 한 권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아직 행사는 시작되지 않았고, 눈치를 봐서 대충 사진 몇 컷 찍고 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역시나 난 좋은 기자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때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안녕하십니까. 김근태입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고 인사를 했다. 그가 장관이기 때문에, 또는 김근태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보다 연장자가 먼저 인사를 청하는데 건방지게 앉아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기자석에 앉아있는 나를 당연히(!) 기자로 알았을 것이고, 때문에 테이블을 돌며 인사를 하던 중에 나에게도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크게 특별하지도 크게 이상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나 역시 별 감흥 없이 인사를 받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행사가 시작되었고, 김근태 장관의 축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참 신기하기도 하지. 이상하게 그의 축사가 전혀 짜증나지 않았다. 비록 오랜 전 일이라 내용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의 말투와 몸짓 그리고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단지 김근태답게 이야기했고, 김근태다운 얼굴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싱겁게도 그날 김근태 장관을 만난 것이 내가 그를 가장 가까이 접해본 유일한 경험이었다. 그 후에도 먼발치에서 그의 모습을 접할 수는 있었지만, 대화를 나누거나 인사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게 다였다.

그리고 그는 미안하지만 내 관심사에서 멀어져 갔다. 내가 맡고 있는 분야는 통일·외교·안보였다. 그와는 크게 관계없다고 생각했던(순전히 나 혼자의 생각) 것이다. 나는 바보 같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흘렀고, 김근태라는 정치인은 훌쩍 우리 곁을 떠났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믿기지 않게 그는 그렇게 떠났다.

그는 이 땅덩어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정치인 같지 않았다. 권력에 대한 욕망도 강해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와 격렬하게 대결을 펼치거나, 누군가를 격렬하게 비난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짓말을 하거나 핑계를 대는 일에 참으로 서툴렀다. 국회의원, 정치인을 하기엔 영 글러먹은 성품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이었고, 민주화를 위해 그야말로 온 몸을 바친 사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정치의 변화, 개혁을 위해 노력했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고, 취중 방송출연으로 유명해진 뉴라이트에게 패배해 국회에서도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했다.

그를 무참히 고문한 이가 나중에 자서전을 냈다. 그리고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라 항변했다. 김근태 의원이 겪어야 했던 지옥 같은 시간들이 훗날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정작 김근태는 이제 없다.

그의 평생의 동지였던 부인이 이제 그를 대신해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역시 그를 대신해 민주화와 진정한 복지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김근태를 그리워하고 또한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를 잘 모른다. 그가 얼마나 느린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신중한 사람이었는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신의 고통을 원한으로 되갚지 않기 위해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감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의 삶, 그의 신념, 그의 눈물까지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2012년을 점령하라는 최후의 외침도 기억하려 한다. 비록 우리는 그의 바람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외침이 그대로 끝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김근태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잘 모르는 이에 대해 평가하는 것만큼 무모하고 무참한 일도 없다. 때문에 이 얇은 책 한 권을 읽었다고 그에 대해 주절거리는 것 역시 주제 넘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참여정부는 실패했다고 외치는 사람들, 노무현은 실패했다고 외치는 사람들 그리고 김근태는 시대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이들 모두, 여전히 무언가를 온전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렇게 무참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온전히 노무현, 김근태의 탓으로 돌리는 이들의 그 무모한 편리성이 옳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실패, 좌절이 이 땅의 모든 진보와 민중의 실패가 아님을 알기에, 나는 그를 단지 조금 더 오래 기억하려 할 뿐이다.

책은 김근태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이의 담담한 이야기다. 김근태의 이야기이고, 인재근의 이야기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진정한 복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을 읽고 얼마 있다가 김근태의 평전을 구입했다. 제법 두꺼운 책이니 차근차근 읽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 책을 다 읽었다고 해서 역시 김근태를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그저 그렇게 그에게 다시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하고.

그를 웃으며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쯤이면 올까. 그의 묘비에는 “나는 정직과 진실이 이르는 길을 국민과 함께 가고 싶다”고 적혀 있다.

그 길을 만드는 데 조약돌 하나라도 보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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