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큰 외삼촌이 소천 하셨습니다. 어머니에겐 큰 오빠입니다. 외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남겨진 많은 형제들을 위해, 아버지와 같이 살아내신 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슬픔이 때문에 더욱 크고 서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그 큰 슬픔을 묻고 다시 제 딸아이를 돌보며 저에게 끼니를 묻습니다.

얼마 전 지인이 그만 훌쩍 세상을 떠났습니다.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던, 그저 운 좋게 서로 만나게 되면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이러 저런 객담을 주고받는 사이였습니다. 그에겐 남겨진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소주 한 잔 건네주고 장례식장을 나왔습니다. 차마 아이들과 제수씨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담배 맛이 썼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며 이별을 합니다. 우리는 짐짓 이별에 담담한 척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이별에 무너지고, 또 무너지게 됩니다.

▲ 우에노 켄타로, 『안녕이란 말도 없이』, 미우, 2011. 12. [자료사진 - 통일뉴스]

여기 한 개그만화가가 있습니다. 평생 남을 웃겨야만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갑자기, 정말 ‘안녕이란 말도 없이’ 곁을 떠나고 맙니다. 이 황당하고 엄청난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느낄 수 없는 슬픔. 그는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신이 평생 그려온 만화라는 방식을 통해서.

이 작품 전체에 흐르는 슬픔은 애절함이나 비통함보다는 갑작스런 상실에 대한 주인공의 당황과 혼란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아내와의 사소한 일상, 추억들을 되새기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됩니다. 장례를 마치자마자 다시 생업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혹시 이대로 아내를 잊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장례가 끝나면 사람들은 곧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배설을 하며, 그렇게 또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냉정하다거나, 고인에 대한 예의 없음을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슬픔을 안고 살아갈 뿐입니다.

저자의 고통과 슬픔을 느끼며 책장을 넘겨야 했기에,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틈틈이 자신의 장기인 웃음을 무심하게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시 나락에서 조금씩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삶은 참 허무합니다. 멀쩡히 어제까지 있던 사람과 오늘 문득 이별할 수도 있고, 나 역시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릅니다. 그럼 이렇게 매일 아등바등 하면서 살 필요가 있나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아무렇게나 살기 보다는 그래도 노력하며, 조금이나마 나은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만화가 이렇게 무거워도 되는 거야? 혹은 이렇게 슬퍼도 되는 거야? 라고 하소연하실 수도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분명 삶의 의미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할 수 있도록 만든 책임엔 분명한 듯합니다.

많은 이들이 오늘도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그리곤 또 많은 이들이 우리 곁에 다가오겠지요. 이 모든 소중한 인연, 아름답고 후회 없도록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부 인사 전하는 것도 잊지 말고요.

“어서와”

“안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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