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시스템’에 맡기면 예측 가능한 삶을 살지만, 자신의 ‘나침반’을 따르면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된다.”

누구에게나 어차피 삶은 한 번 뿐이다. 그리고 수많은 주위 환경의 영향이 물론 작용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삶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물론 그것은 세뇌일 뿐, 우리는 우리 삶을 온전히 우리 마음대로 다루지 못한다. 그저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처럼 ‘오늘도 대충 수습’하며 살아갈 뿐. 음, 이렇게 말하니 짠하긴 하다.

지금까지 오래 오래 살아왔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제 마흔인데(생각해보니, 참 신비주의가 없어요) 어디서 감히 오래 살았다고 까불겠나. 추호도 그런 생각 한 적 없습니다요.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오래 살았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할 만한 꺼리도 아니다 싶다. 진부한 말이겠지만, 오래 사는 것 보다는 어떻게 사는지가 조금은 더 중요하다고, 아직까지는 믿고 싶기 때문이다.

저자의 전작이자, 글로벌 베스트셀러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읽어보진 못했다. 그 작품에 감동을 받은 이들이 많은 것으로 봐서, 괜찮은 작품인 것 같긴 하다. 저자는 전작에서 인생을 ‘모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고 두려운, 그러나 장대하고 아름다운 사막’으로 비유하며, 자신의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문체로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고 출판사는 홍보하고 있다.

▲ 스티브 도나휴,『인생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김영사, 2011. 8.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번 책은 사막이 아닌 바다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바다거북의 그것과 함께 바라본다. 평생 바다 속을 누비며 여행하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마침내 삶을 마치는 바다거북의 일생을 통해, 역시 인생이라는 바다에 뛰어들어, 두렵지만 매혹적인 여행을 하다 삶을 마치는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인생이란 여행에서 끝내 길을 잃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원체 컨설턴트나 유명 강사들의 이른 바 ‘동기 부여’, ‘자기 계발’ 도서를 읽지 않는 편이다. 예전에도 몇 번이나 말했던 것 같다. 뭐, 그냥 취향이니 양해해 주세요. 무지한 녀석에게 아무리 옆에서 경을 읽어줘 봐야 별 소득이 없다는 생각도 있고, 솔직히 말하면 그런 책들을 읽어도, 반성할 기미나 ‘그래! 나도 해보는 거야!’ 따위의 자극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그래요. 참 대단하십니다 그려~’ 정도? 영 구제불능이다.

그럼, 이 책은 왜 집어 들었지? 예전 직장 동료의 서평을 읽었기 때문이다. 참 글을 맛있게 쓰는 친구였는데, 지금도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 친구의 짧은 글 한 편을 읽고, ‘아, 나도 인생을 한 번 건너가 볼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감이지만, 지금 그 친구의 서평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느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지구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철새들은 어김없이 특정 장소로 일정하게 이동할 수 있고, 바다거북도 태어난 모래사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저자는 우리 인간의 내면, 존재의 중심 깊은 곳에서도 이처럼 끊임없이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무어라 표현하는지는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그 힘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고유한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존재 깊숙이 자리 잡은 이 힘은 우리에게 의도되어 있는 삶을 살도록 안내하는 운명이라고. 심히 심오하다.

우리는 명확한 지도를 갖고 싶어 한다. 그 지도대로 묵묵히 따라가기만 하면 흔히 말하는 성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결국 타인이 만들어준 지도를 가지고 성공에 이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당최 어떻게 믿냐고!!

때문에 저자는 우리 내면의 나침반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신호를 수신하고, 해석하고,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매일 나만의 나침반을 따라 올바른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글쎄, 이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나 같은 위인에겐 더 어려운 이야기다. 내면아,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나는 어리석기에, 당연히 귀도 A4용지마냥 얇고, 내면이 말하는 깊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서툴다. 최근에는 ‘도대체 나에게 사회성이란 게 있긴 있는 거야?’라는 심각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당최 어울림을 어려워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으아~! 어렵다. 나침반은커녕 남들이 주는 지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나 같은 녀석은 어떻게 인생을 폴짝 건널 수 있을까? 저자는 인간의 나침반은 머리가 아닌 심장에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일들, 세상에서 사랑을 찾고 사랑받는 방식은 인간의 나침반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단서들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가끔 나침반을 이해하기 어렵고, 절망하기도 하고, 놓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그리고 결국은 듣게 될 것이다. 내가 진정 지금 이 자리에서 원하고, 느끼고, 하고자 하는 것이 무언지 말이다. 쉽진 않겠지만, 결국 나침반은 내 안에 있는 것이고, 나는 화려한 지도보다는 내 안의 나침반을 더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때 ‘잘 죽는 것’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죽는다는 것은, 역으로 잘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매 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나가는 것이 결국 좋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나 역시 저자의 이야기처럼 나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인생을 무사히, 잘, 그리고 의미 있게 건너고 싶다. 나름의 보람을 느끼며, 후회도 물론 많겠지만, 그럼에도(!) 치명적 후회 없는 그런 삶을 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에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힘들고 지친 이들과, 때론 힘들고 지친 내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인생을 건너는 것이다. 홀로 독야청청 인생을 잘 건너는 것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다. 난 이 상식 초월, 이해 불가의 세상 속에서 나와 함께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끝까지 웃으며, 끝까지 지지 않으며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 죽고 싶다.

‘둥지 떠나기’에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여섯 단계의 인생을 건너는 법을 따라가면, 결국 난 누군가와 함께 갈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혼자는 아무래도 쓸쓸하고, 아무래도 힘이 덜 난다. 연대가 무너진(물론 연세대는 건재하다) 이 사회에서, 그럼에도 연대는 살아있기에 오늘도 희망을 갖고, 잘 살고 잘 죽는 연습을 해야겠다.

조용히 책상에 앉아, 찬찬히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나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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