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그림에서 매화와 복숭아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매화는 이른 초봄에 피고 복숭아꽃은 4월 중순 이후에 핀다. 모두 꽃이 먼저 피고 잎은 나중에 난다.
복숭아꽃과 매화는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다. 꽃과 나무의 모양만 가지고는 도무지 복숭아를 그렸는지 매화를 그렸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묵화에서 매화는 꽃과 가지를, 복숭아는 꽃보다는 열매와 이파리를 중심으로 그린다. 아무래도 매화와 복숭아의 차이는 꽃보다는 열매에서 확연하다.

매화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수묵으로 매화를 그리는 것은 지조와 절개의 상징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색은 현실성이 강하고 허영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숭아는 신선세계, 이상세계의 상징이다. 복숭아는 [십장생도]에서 빠져서는 안 될 소재이다. 심지어는 소나무를 밀어내고 중심을 차지하기도 한다.
[장생도]에는 아예 매화가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수묵화에서는 좀처럼 복숭아를 그리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복숭아는 이상이고 매화는 현실을 상징한다.

▲ 심규섭/월매/디지털회화/2012.
달은 어두운 밤과 어려운 상태를 상징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달은 부정의 상징이다. 이런 상징이 소비와 허영이라는 자본주의와 만나 로망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돈이 밤을 지배한다는 의미도 들어가 있다. 돈이 없고 고통스런 상태에서 보는 달은 그야말로 유일한 위안이고 동시에 가느다란 희망일 뿐이다. 달을 긍정하는 문화는 민중문화와 연관이 있다. 조선 말기 외세의 침략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낮의 주인공에서 밤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백성들의 정서를 반영하다보니 달을 좋게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달은 백성의 상징이 아니다. 이런 상징을 가지면 패배주의에 빠진다. 누가 뭐래도 백성들은 밤에서 낮으로 나아가고자 하다. 달이 아니라 태양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복숭아와 매화는 상징과 역할이 다르다.
복숭아는 유학적 가치에 의해 구현되는 최종적인 이상세계를 뜻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세계는 누가 만들어 주거나 저절로 오지 않는다.
철저히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고 해석하지만 인간을 이롭게 하는 주체도 곧 인간이다.

선비는 조선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지식인이자 문인이고 예술가이며 정치인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자기수양을 통해 이상세계(在世理化), 대동사회(大同社會)를 건설할 수 있다고 여겼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그것을 뜻한다.
군자(君子)는 학문과 수양을 통해 하늘의 이치를 체화한 인격적 완성체를 뜻한다.
이러한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의예지신염치’라는 덕목이 있어야 한다.

▲ 해학반도도/384*140/비단에 채색/19세기.
해학반도도는 장생도 중에 하나다. 바다와 학, 복숭아가 어우러지면서 나름의 독립적인 형식을 갖췄다. 복숭아가 그려져 있다는 것은 그곳이 곧 이상세계라는 뜻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이 중에서 선비들은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이라는 행동지침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생명존중을 바탕으로 한 상호존중이라는 사회적 관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재부의 독점을 막고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잘 살기 위해서는 이타심의 구현인 자발적 청빈이 선행되어야한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허영과 거만이라는 동물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동물적 본성을 경계하고 유학적 가치와 인간적 존엄에 대해 절대적 확신을 지조와 절개라고 불렀다.
한파가 남아있는 초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의 생태적 특징을 어려움 속에서도 유학적 가치를 잃지 않는 선비의 마음에 비유한 것이다.

수묵화는 선비들의 철학과 정서를 담은 그림이다.
수묵화 속의 매화는 언제나 단정하면서도 비장하다. 매화는 향유의 꽃이 아니라 실천의 꽃이기 때문이다.
달과 매화를 함께 그린 [매월도]는 깊은 어둠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달빛에 보이는 매화를 그리고 있다.
보름달을 그린 것은 달을 찬미하기 위함이 아니라 깊은 밤, 어둠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미술적 장치이다.
수묵화에서 밤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배경을 어둡게 칠하면 수묵화는 시커멓게 변한다. 이런 수묵화는 그림에 원리에 맞지도 않고 담백한 맛도 없어져 버린다.

동시에 달빛은 가느다란 희망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달빛은 낮을 상징하는 태양에 대한 갈망이다. 지조와 절개가 상징하는 인문학적 가치가 언젠가는 구현될 수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또한 눈과 매화를 함께 그린 [설중매]가 있다.
이것도 눈(雪)을 무슨 연말 정서처럼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 아니다. 눈은 그야말로 추운 겨울의 상징일 뿐이었다.

아무튼 매화가 고통의 꽃, 실천의 꽃이라면, 풍성한 열매를 중심으로 표현하는 복숭아는 행복과 결실의 꽃이다.
[십장생도]에는 매화가 등장하지 않는다. 복숭아가 상징하는 이상세계가 완성되면 더 이상 인간의 존엄이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 없는 것일까?
아니다.
선비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고 그 수혜자는 언제라도 백성들이다. 정치를 하고 그 수혜까지 받으려고 하는 것은 염치가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