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타깝게도 여성혐오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아무 이유 없이 생면부지의 여성을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개인의 일탈이 그동안 켜켜이 쌓여있는 사람들의 분노를 다시 한 번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과연 이 끔찍한 범죄가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 있는가, 뼈아픈 성찰의 시간들이 지나고 있다.

벌써 꽤 지난 일이지만, 남성의 권리를 대변한다는 어느 민간단체의 대표가 한강에서 투신하여 끝내 사망한 일이 있었다. 어찌하다보니 자신의 자살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 온 세상에 알린 꼴이 되어서 이래저래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난 솔직히 그런 단체가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단체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쉽게 수긍할 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고인이 생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 발언들 역시 인정할 수 없다. 그는 이 시대의 남성들이 오히려 여성들에게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식으로 발언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식의 표현도 있었다. 전혀 수긍할 수 없다.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행복할까? 온전히 말이다. 남녀평등의 시대, 혹자는 여성 상위 시대라고 비꼬기도 한다. 하다못해 우리는 ‘여성 대통령’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과연 여성들이 행복한가? 내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너무도 피곤하고 너무도 많은 역할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녀들은 모두 스스로 ‘수퍼울트라우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다.

때문에 남성이 오히려 힘든 세상이라느니, 여성이 행복한 시대라는 등의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 인간적으로 양심이 있는 남자들이라면 내 주장에 수긍이 갈 것이다. 당장 우리 주변의 어머니, 아내, 여동생, 전업 주부, 여성 직장인들의 모습을 본다면 그런 말을 함부로 쉽게 내뱉을 수 없다.

▲ 채민,『그녀의 완벽한 하루』, 창비, 2010. 1.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딱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기쁨에 차 넘치지도 않는, 그냥 그런 일상, 삶을 꾸려가기 위해 버텨야 하는 일상의 모습들을 담담히 그려냈다. 그리고 잘 알려진 유명 시인들의 시를 그 내용의 바탕으로 삼았다. 독특한 시도다.

남루한 삶, 구질구질한 삶을 바라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모두들 티브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화려한 삶을 동경한다. 하지만 그것은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작 삶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다. 저자는 자신이 아니어도 이미 이 남루한 세상을 짐짓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꾸며 내놓는 이들이 차고 넘쳤음을 알고 있다.

때문에 자신은 “삶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삶의 어두운 면에서 눈 돌리지 않는 것. 희망이 없다고 해서 짐짓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는 것. 대신 절규해 주는 것”을 택했다. 그 선택은 때문에 희망을 거짓으로 꾸며 내놓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실만큼, 오히려 막장드라마나 싸구려 판타지가 난무하는 지금이다. 상처받고 힘겨운 사람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거짓된 삶이 말 그대로 거짓임을 알면서도, 이를 통해 현실을 잠시나마 잊으려 한다. 그리고 잠시나마 남루한 자신의 삶을 유예시킨다. 하지만 그건 결국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짝 가리는 것뿐이다. 아니, 가릴 수도 없다. 짐짓 눈을 감는 것뿐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눈을 뜰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새삼 잔혹한 현실에 더 힘겨워 한다.

여성을 중심에 둔 만화는 대부분 순정 판타지나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기억한다면 채민 작가의 만화는 잔인하게 현실적이다. 현실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담담히 보여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6명의 여성들의 일상을 통해,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네 삶, 생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왜 암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까. 아픔은, 괴로움은 잠시 접어두고 마약과 같은 환상에 빠져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 이유는 간명하다. 거짓된 희망을 지어내지 않는 것이 참다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고통’을 겪어야 만이, 우리는 허황된 외면이나 회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애인과의 의무적인 섹스, 더 이상의 감정도 없는 사이. 오늘이 어제와 같은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제는 그것도 희미해진, 동사무소 사회복지사 강희정. 오래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살아가던 독거노인 김발근례 할머니. 그녀는 이생의 마지막 순간, 가장 행복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그리고 차가운 세상 속에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백화점 판매원 박윤정, 노예처럼 자신을 부려먹는 시어머니와 우유부단한 남편 사이에서 힘들어 하는 전업주부 정지은, 일상의 끈이 갑자기 끊어진 순간, 처음 만난 남자와의 섹스를 위해 훌쩍 떠나버린 출판사 편집인 김미영, 그리고 삶이 더 나아질 것이란 생각이 결국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일러스트레이터 양수현.

누구에게나 삶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단 하루만이라도 누구에게나 완벽한 ‘하루’는 주어져야 한다. 철저하게 아프고 남루하지만 그럼에도 따뜻한 책이다.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 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 기형도 〈가는 비 온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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