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글로 말미암아 누군가 깊은 울림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니, 깊은 울림까지는 감히 바라지 않는다 해도, 적어도 그 어떤 작은 이야기나마 전해주고자 한다. 글쓰기는 너와 나 사이의 진중한 대화가 아닌가.

하지만 대부분 겁쟁이이자 소심한 글쟁이들은 정작 자신의 마음을 ‘쿵’하고 울리는 글을 만날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겁쟁이이자, 소심한 그들은 또한 그리하여 지극히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내가 일컫는 글쟁이들은 돈이나 명예 따위에 글을 팔고 살아가는 이를 뜻하지 않는다. 물론 생계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돈이나 명예 따위에 글을 팔고 살아가는 이’들은 주로 거짓과 기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독’과 같은 글을 써대는 이들을 말한다. 그러니 이들은 내 기준에서는 글쟁이라 할 수 없다. 구역질도 아까운 이들일 뿐.

나 역시 마찬가지다. 멋이 들어지게 눈물 나는 글을 만나거나, 먹먹하고 뻐근한 이야기들을 읽을 때면, 솔직히 아프고 두렵다. 아, 생각해보니 이렇게 말하면 나 스스로 ‘나는 글쟁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셈이구나. 부끄럽다. 그냥 글쟁이 흉내 내는 어설픈 삼류 중 삼류다.

▲ 박용현,『정당한 위반 - 나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묻는다』, 철수와영희, 2011. 10.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한 저자의 글은 내게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세상 어느 한 곳 아픈 곳들을 놓칠세라 눈물겹게 눈을 부릅뜨고 글을 써왔다. 그 눈에서 서러움과 억울함, 연민의 눈물이 철철 흘러내려도,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렇게 여린 눈으로 세상의 온갖 서러움과 아픔을 다독거리려 노력했다.

2012년 말 집어 들고, 차마 빠르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질질 끌어왔다. 절망과 한숨이 이 땅 곳곳에 울리고 있는데, 그 아픔을 더욱 더 확실하게 각인시켜 줄 것만 같아, 아무래도 미완의 독서로 남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저자 역시 끝내 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관심의 손, 외면의 손대신 타인과의 공감, 연대의 손, 서로를 끌어당기는 점성의 힘을 저자는 믿었다. 그리고 더러운 세상 속에 살아야 할 우리 모두를 위한 연서를 끝내 써내려갔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보다 더 세련되어져 더더욱 잔혹하고, 예측보다 더 은밀해져 더더욱 야비한” 모습이다. “과거에는 일도양단의 명쾌한 논리로 정의와 부정의를 재단할 수 있었다지만, 이제 세상은 회색의 정의를 둘러 입고 그 모호함 속으로 추악한 본모습을 숨겨버렸다.”

어찌 해야 하는가. 이대로 더러운 세상에 한 가득 침이나 뱉어주고 콱 죽어버려야 할까. 거꾸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더 이상 미련 따위 두지 말고 영영 눈을 감아버려야 할까.

아니다. 저자는 나쁜 세상을 그대로 기록하고, 그 세상에서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법을 종이에 옮겼다. “나쁜 세상에 깨지고, 스스로 성찰하고, 다시 일어나 부딪쳐 살아가고, 몸과 마음에 멍이 들어도 여전히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놓지 않는” 처절한 끈질김으로 글을 써내려갔다.

얼마나 고마운가. 상식이라는 것에 대한 갈증으로 목이 말라 죽어가는 이들에게 그의 글은 분명 시원한 냉수 한 잔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끝내 생을 지탱하게 해주는 고마운 생명수임은 분명하다. 적어도 나는 그의 글에서 수많은 분노와 위안을 동시에 느꼈으니 말이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한 전직 대통령이자, 범죄자는 꽁꽁 숨겨둔 재산이 얼마인지 헤아리기 힘들고, 가난한 이들의 표로 당선된 귀족 출신의 대통령은 자신의 높은 지지도에 만족하며, 힘없고 소외된 이들의 외침에 귀를 닫아 버렸다.

자신이 대통령에 오르기 전 10년의 세월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당당히 명토 박아 두었던 전직 대통령은 정작 자신의 임기 중 우리가 잃어버리고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겠다는 모습이다

이 책이 나온 후 지금도 역시 세상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더럽고 추악하다. 그리고 눈물겹게 치열하다. 그 시간을 온전히 기억한다는 것은 더더욱 벅차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나쁜 세상에 살아가는 법을 배우도록 강요한 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왜 그렇게 옳지 못한 선택과 행동을 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이웃들의 눈물, 상처, 절망에 눈감지 말고, 그들의 고통이 곧 나에게 이어질 것이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되리라.

저자는 해박하다. 어설픈 지식의 향연을 벌이거나 하찮은 논리로 다른 나라의 지식을 주워섬기는 사기꾼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삶의 치열한 복판 속에서 온 종일 아래만 두리번거리며, 함께 울어온 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해박함이다. 눈물이 만든, 연대와 점성의 가치를 깨달은 해박함이다. 그렇기에 한 없이 부럽고, 또 고맙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선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 반대 역시 듣기 싫다. 하지만 지난 MB 정권 5년이, 그리고 지금 정부가 우리에게 준 상처와 아픔은 여간 크지 않다. 애써 만들어 온 가치들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기란 여간 벅차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추락을 목격하고 있다.

책은 그 추락의 기록이자, 다시 날아오르고픈 희망의 고백이다. 아프지만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 이야기들이다. 외면할 수 없다. 그럴 수도 없다.

매일 쓰레기와 같은 글들이, 이야기들이 오르내린다. 진실을 가리고 외면하는 이들의 끔찍한 욕망과 저열함이 나라 전체를 썩게 만든다. 추악한 권력의 범죄를 폭로하고 단죄하려 하기보다는 숨기고 덮어두기에 급급한 언론 그리고 언론인이라는 이들. 그들에게 저자의 글은 무엇보다 두려운 존재이리라.

저자와 같은 언론인, 기자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적어도 존경할 만한 선배들이, 언론인들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많이 배우고 많이 깨우쳤다.

위반은 ‘법률, 명령, 약속 따위를 지키지 않고 어기는 것’을 말한다. 정당한 위반은 그러나 이 시대에서 모순이 아니다. 대상을 선별해 적용하는 법, 명령, 약속 따위는 준수할 가치가 없다. 우리는 슬프게도 정당한 위반이 ‘정당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정당한 위반이 모순처럼 들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책을 덮는다. 감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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