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저 가방 기억하시나요? 까만색 가방, 의장님과 근 10년 동안, 그리고 의장님 작고하시기 전까지 저 가방 하나 들고 전국을 다니셨거든요.”
정광훈(1939~2011)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5주기를 맞아 제작된 추모 다큐멘터리 상영회가 열린 11일, 토크 콘서트 배경으로 검은 가방 하나 메고 걷고 있는 ‘민중의 벗’ 정광훈이 나타났다.
순간, ‘모든 이웃의 벗, 최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라는 글귀가 뇌리에 겹쳐졌다.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을 기려 무위당 장일순 등이 원주 송골마을 입구에 1990년 세운 작은 비석에 새긴 글귀다.
해월 최시형은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가 1864년 처형되기 전에 이미 도통을 전수받았고, 수운의 ‘고비원주’(高飛遠走, 높이 날아서 멀리 가라) 유지를 받들어 1898년 원주에서 붙잡혀 처형당할 때까지 30여 년간 전국을 떠돌며 동학의 씨앗을 뿌렸다. 관의 눈을 피해 보따리 하나 달랑 메고서.

정광훈 의장과 오랜 기간 함께 활동한 주제준 한국진보연대 정책위원장은 “의장님은 괜찮은 사람을 발견하면 바로 그 사람이 어느 동네 누구와 친한지 알아보고 얼마 안 있어 그 사람을 찾아갔다”며 “처음에 농사를 도와주고 술한잔 하고, 그 다음 찾아가셨을 때는 한이불 덮고 잠도 같이 주무셨다”고 회고하고 “저 가방은 의장님께서 사람농사 지으러 가실 때 꼭 들고 가셨던 가방”이라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토크쇼 사회를 맡은 박웅두 ‘민중의 벗 정광훈 의장 추모사업회’ 사무총장은 돈과 집, 빚이 없는 ‘3무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유명한 정광훈 의장에게 “굳이 그렇게 안 사셔도 되는데 왜 그러셨냐”고 물어봤더니 “자발적 빈곤이 뭔지 아냐”는 답이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운동가는 고정자산이 많으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집착과 욕심이 생기고 결국 갈등과 분열, 눈물의 씨앗이 되니 남들이 욕심내기 전에 나눠 갖는 것이 행복한 운동가의 삶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 “당신의 주머니, 가방에 뭘 넣고 있는 걸 못 참으셨던 것 같고, 그래서 항상 책으로 바꿔서 활동가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어려운 분들에게는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냅다 꺼내주시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고.

까만 가방 하나 메고 고인은 방방곡곡을 ‘인기 강사’로 불려다녔고, ‘적자(기록) 생존’을 체화한 그는 기차표 한장까지 버리지 않고 모아둬 이날 행사가 열린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 로비에 고스란히 유품으로 전시됐다. 2009년 해남으로 내려간 뒤 민중학교 건립을 추진하면서 지인들에게 보낸 54통의 편지도 모두 복사해 모아두었다.
해남에서 고인과 함께 농민운동을 해온 김남주 시인의 동생 김덕종 전 전농광주전남연맹 의장은 “사진에 보니까 영락없는 시골 농부 같다. 그런데 사실 농사를 짓지는 않았다”며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해남에 내려오면 항시 회원 집에 들리고 농사도 돕고 그랬다. 밥도 같이 먹으면서 농민운동이나 변혁운동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고 회고했다.
또한 “의장님은 참 소탈하셨다. 같이 생활하다 보면 하나하나 다 소탈하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로 말씀 또한 소탈하셨다”며 “지역에서도 존경받으면서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셨다”고 말했다.
특히 김덕중 전 의장은 “70년대다. 해남에 김남주가 농민운동을 하기 위해 내려왔다가 정광훈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정광훈과는 농민운동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변혁운동에 관한 얘기까지도 상당히 발전적인 얘기들을 심층적인 얘기를 했다”며 “그때부터 김남주와 정광훈은 아마 혁명을 꿈꾸지 않았나 생각해본다”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또한 “함평고구마사건(1976~78년)을 계기로 해서 농민운동가의 길을 보다 더 본격적으로 접어들게”되었고, “KBS에서 취직을 권유, 충분히 대우해주겠다고 했고, 해남에서는 그를 ‘황금의 손’이라고 이야기했다”는 뒷이야기도 전했다.
과학적 탐구심이 강한 고인은 해남지역의 TV 난시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V 수신기 등을 지고 산으로 올라가 이른바 ‘사설 중계기지’를 시도하는 등 당시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많았다는 것.

주제준 정책위원장은 “의장님은 ‘노동자는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야 되고, 농민들은 논두렁을 넘어야 된다. 그렇게 해서 모이는 게 전선이고 연대투쟁체다’ 말씀했다”며 “당신 스스로가 그런 길을 걸으셨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 근저에는 ‘Down Down USA’가 있었다. ‘반미투쟁을 해야 된다. 반미가 없이는 이 나라의 민생도 민주도 없다’, 이렇게 생각했다”며 “그래서 당연히 전선의 귀결로 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 위원장은 “미국이라는 존재, 신자유주의라는 존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난장을 피워야 한다고 많이 말씀하셨다”며 “의장님 말씀, 어록에는 ‘선사고 후수습’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고 짚었다.
'영원한 청년'으로 불리운 그의 특유의 낙천가적 기질은 말년에 쓴 편지에도 역력히 드러나 다큐 감독은 <혁명으로의 초대>를 제목으로 삼았다.
“가장 대중적인 것이 혁명이라네. 우리는 이 땅에 막중한 과업을 위해 임무수행을 하고 있다네. 어떤 때는 빨리. 어떤 때는 느리게. 어떤 때는 상상을 초월한 핵폭탄과 같은 태풍이 쓸고 지나간다네. 그동안 현장활동 하면서 전망과 희망이 없다면 왜 우리가 존재했겠는가!
우리의 역사는 혁명의 역사를 쓰고 있다네. 혁명의 축제날은 분명히 정해졌다네. 우리 축제를 상상만해도 생기가 돌지 않는가!”
박웅두 총장은 “농민운동으로 시작해서 전선운동의 지도자로, 반세계화투쟁의 지도자로 자기성장을 해왔다”며 “99년도에 시애틀에 투쟁을 가서 거기서부터 반세계화 투쟁, 세계화와 관련된 새로운 영역들을 만들어 간다”고 정리하고 “10년 이상 반세계화 투쟁에서 새로운 구호, 전 세계 민중들이 함께 외치는 구호들을 만들었다”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고인과 반세계화 투쟁에 함께 했던 류미영 민주노총 국제국장은 “정광훈 의장님은 영어로 구호를 많이 외치셨다”며 “‘Down Down WTO’뿐만 아니라 ‘Our Word Is Our Weapon’,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다’. 멕시코 사파티니스타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쓴 책의 제목인데, 그 말을 항상 하셨다”고 회고했다.
또한 지식인과 언론이 앞장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조장한다는 뜻의 ‘조작된 동의의 배달부’, 세계적인 농민단체 비아 캄페시아(Via Campesina)의 유명한 구호 ‘투쟁을 세계화 하고, 희망을 세계화 하자’도 자주 말했다고 전했다.
류미영 국장은 “신자유주의가 수많은 열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우리는 사람이 사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직접 행동에 나선다”, “세계화에 단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투쟁을 세계화하고 그리고 희망을 세계화하면서 다른 세계를,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까만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발품을 팔아 전국을 누빈 ‘민중의 벗’ 고 정광훈 전 전농 의장은 100년전 해월 최시형의 여인여락(與人與樂,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고락을 함께 한다)을 실천했을뿐 아니라 미국 시애틀과 멕시코 칸쿤, 홍콩 등을 누비며 ‘Down Down WTO’를 외쳤고 ‘투쟁의 세계화, 희망의 세계화’를 외쳤던 것.
문경식 추모사업회 회장은 “우리가 정광훈 의장님을 회고하고 추모하는 것은 일평생을 민중에 대한 사랑, 변혁에 대한 열정, 혁명적 낙관, 해맑은 웃음과 따뜻한 가슴을 가졌던 의장님의 삶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고 단련하는 운동의 과정이기 때문”이라며 “정광훈 의장님과 새로운 혁명적 인연을 이어가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다큐멘터리 <혁명으로의 초대>는 완성본이 아니었고, 이에 대해 문경식 회장은 “준비과정에서 많은 부족함이 있음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혁명으로의 초대>를 제작한 김영순 감독은 “촌스럽다는 말이 비하의 뜻이 아니라 가장 고귀한 생명의 뜻으로 바꾸어 놓은 사람”이라며 “그 이름 영상에 담고 새기며, 농촌을 넘어 온 나라 생명을 잇고 챙기는 투쟁 현장, 삶의 현장에서 정광훈 의장님의 자취와 기록을 영상으로 제작해보았다”고 밝혔다.
조병옥 전농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상영회에서 정광훈 의장의 장남 경철 씨가 어머니를 대신해 감사의 선물을 받았고, 송경동 시인이 추모시 낭송을, 우리나라가 노래공연을 했다.
또한 울산지역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나란히 당선된 김종훈, 윤종오 당선자가 인사말을 했고,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과 김영호 전농 의장, 김순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남경남 전국철거민연합 의장, 박석운 민중의힘 상임대표가 무대에 올라 발언했다.
이날 유품 전시에는 연설문 메모 등 자필 원고들과, 민복과 잠바, 모자는 물론 안경과 사진기, 손피켓 등 다양한 유품과 사진들이 전시됐다.


▲ 여성플라지 로비에 정광훈 의장의 사진과 유품들이 전시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민복과 잠바, 모자 등도 전시됐다. 고인은 모자를 즐겨썼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추가, 23: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