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 국가적 행사나 공공기관 행사에서 그 첫머리에 순국선열들을 위한 묵념을 하는 것은 역사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과시하는 데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세리머니인 듯싶습니다. 북측도 예외는 아닙니다.

6일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제1비서는 개회사 발표 도중에 ‘북한판 순국선열들’이라 할 수 있는 ‘혁명열사들’과 ‘애국열사들’의 이름을 호명하고는 묵상할 것을 제의했습니다. 그러자 4.25문화회관에 참석한 5천 50여 명의 대표자들과 방청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고개 숙여 묵념을 했으며, 묵념 후 개회사가 이어졌습니다.

김 제1비서는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이날 7차 당대회 때까지의 36년을 ‘총결기간’이라 부르고, 이 기간 중에 세상을 뜬 ‘열사들’을 몇 개 그룹으로 나눠 호명했습니다.

먼저, ‘김일 동지, 최현 동지, 오백룡 동지, 오진우 동지, 최광 동지, 림춘추 동지, 박성철 동지, 전문섭 동지, 리을설 동지’ 등을 ‘항일혁명투사’라 부르고는 “자기 대열에서 위대한 수령님들을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의 먼 길을 걸어오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했다고 기렸습니다.

‘허담 동지, 연형묵 동지, 김중린 동지, 허정숙 동지, 김국태 동지, 김용순 동지, 김양건 동지, 전병호 동지, 박송봉 동지, 리찬선 동지, 리제강 동지, 리용철 동지, 강량욱 동지, 리종옥 동지, 김락희 동지, 안달수 동지’ 등을 ‘혁명동지’라 부르고는 “우리 당의 강화발전과 사회주의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했다고 기렸습니다.

‘조명록 동지, 김광진 동지, 김두남 동지, 전재선 동지, 윤치호 동지, 리동춘 동지, 김하규 동지, 리진수 동지, 심창완 동지’ 등을 ‘선군혁명전우’라 부르고는 “혁명무력의 강화발전을 위한 투쟁에서 영웅적 위훈을 세”웠다고 기렸습니다.

또한, ‘리승기 선생, 임록재 선생, 천세봉 선생, 백인준 선생, 유원준 동지, 리상벽 동지, 박영순 동지’ 등과 ‘한덕수 동지, 최덕신 선생, 리인모 동지, 림헌식 동지, 김광택 동지’ 등을 ‘혁명동지들과 통일애국인사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김 제1비서는 이들을 “사회주의건설과 조국통일, 세계자주화 위업을 위한 투쟁에 고귀한 생을 바친 항일혁명투사들과 애국열사들, 잊지 못할 우리 당의 혁명전우들과 통일애국인사들”이라고 평했습니다. 대략 네 그룹으로 나눈 것 같습니다.

열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것은 우리에게도 낯익은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닌 1987년 6월항쟁 승리의 소용돌이 속에 7월 9일 연세대에서 거행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입니다. 당시 문익환 목사는 추도사에서 전태일 열사를 시작으로 민주화의 길에서 사라진 열사들 26명의 이름을 한 명씩 목놓아 소리쳐 불렀습니다. 문 목사의 절절하고 장엄한 울음소리가 교정을 울리자 식장은 온통 오열과 통곡의 바다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남측에는 이렇게 목놓아 부를 ‘애국열사’들이 합의돼 있지 못합니다. 친일파와 반민족주의자가 종종 ‘애국열사’로 둔갑해 있는 일이 있기도 합니다. ‘죽은자들’에 대한 평가가 시기와 정권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친일문제가 청산되지 못했고 오랜 기간 반민주적인 군부독재시대를 거쳤으며 또한 아직 분단 상황 때문이기도 합니다.

북측은 조선노동당이 정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기에 ‘열사들’을 ‘항일혁명투사들’, ‘애국열사들’, ‘혁명전우들’, ‘통일애국인사들’이라고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 있지만, 남측은 아직 ‘열사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돼 있지 않기에 국가적 행사나 공공기관 행사 때 ‘호국영령’ ‘순국선열’ ‘전몰장병’이라는 다소 추상적이지만 폭넓은 이름으로 묵념을 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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