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한 취미 하나 없는 이들이 꼭 취미가 뭐냐 물으면 ‘독서’라고 대답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취미는 독서다. 물론 변변한 여타 취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취미가 반드시 1인당 하나일 이유는 없다. 난 독서 외에도 나름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변변치 못한 녀석이 아니다!

사실 요즘처럼 취미 생활에 적잖은 돈이 들어가는 시대에, 독서만큼 수지맞는, 알뜰한 취미생활도 없지 싶다. 물론 애서가, 장서가 수준으로 내공이 오른다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애서가, 장서가의 수준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지만, 나 역시 유일하게 충동구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책이기도 하다. 아, 유일한 건 아닌가.

하지만 적당히 자제하며, 현명한 독서를 한다면, 독서라는 취미는 알뜰하게 영혼을 살찌울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취미생활임이 분명하다. 과거에 비해 공공도서관도 꽤 늘었고, 한 달에 몇 권의 책 정도는 분명 사치는 아닐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주마! 라는 실현 불가능한 꿈을 이루기 위해 잠시 어리석게 행동한 적이 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책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활자 중독 수준의 병적인 습관으로 그 책들을 모조리 읽겠다고 허풍을 떤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당연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고맙게도, 책을 보내주는 이들이 있다. 물론 출판사들의 입장에서는 홍보의 차원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행하는 투자일 것이다. 제법 책을 읽는다는 녀석들에게 책을 공짜로 보내주고, 그럼 미안한 맘에서라도 책에 대해 제법 그럴듯한 평을 해줄 것이라는 계산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형편없는 투자 대상임이 분명하다. 먼저, 일단 책은 발간되었을 때 집중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요즘처럼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신간은 곧 구간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책을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배은망덕하게도 나는, 신간이라고 바로 읽고 소개할만한 근면함이 없다. 게다가 내가 구입한, 혹은 받게 된 순서대로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아주 사소한 원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가끔 꽤 흥미로운 주제의 책이나,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서를 어기며 독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가끔일 뿐이다. 대부분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어나간다. 게다가 책의 내용이 형편없다면, 거저 받았던 구입했든 좀 심하게 비난하기도 한다. 미안하게도.

결국 출판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초반 홍보의 면에서 난 영 쓸모없는 녀석인 것이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변명도 있다. 정말 좋은 책이라면, 굳이 떠들썩한 홍보가 없이도, 분명 눈이 밝은 독자들에게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뭐, 이렇게 말한다고 나의 게으름이 덮어지진 않겠지만.

▲ 유시민,『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웅진지식하우스, 2009. 10. [자료사진 - 통일뉴스]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책은 그 순서를 어겨가며 읽은 책 중 하나이다. 이 책은 구입 후 한참동안 숙성시킨 경우이지만, 일단 그가 쓴 글은 적어도, 재미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대부분 그 믿음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나름 독서를 ‘취미’라고 부를 만큼, 어설픈 애서가 흉내를 내는 나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책들이 무엇이냐 물으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책을 읽으며 성장했으며, 어떤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을까. 갑자기 물어보면, 순간 답하기 어려울 듯하다. 판에 박힌 빤한 대답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야 한다면 고민 좀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참고로 난 대학 면접 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어냐’는 질문에 그리 망설이지 않고,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다지 궁금해 하지도 않으면서 묻는 것 같아 짜증도 있었고, 솔직히 슬램덩크 만한 명작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쾌한 저자는 역시 명쾌하게 14권의 책을 ‘청춘’에게 소개한다. 하나같이 무게감으로 따진다면, 헤비급에 해당하는 책들이다. 다소 따분하면서도 공포스럽게 두꺼운 책도 있고, 내 경험에 비춰본다면 한 두 페이지를 넘기는 데 하루 이상이 걸린 무지하게 어려운 책도 있다.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는 아니겠지만,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은 무의식중에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때론 나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커다란 선택의 기로에서, 어떠한 길 하나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여기에서 다시 말해야겠다. 독서는 알뜰한 취미이자,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일생의 취미’이기도 하다.

같은 책도 누가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치고, 다른 평가를 받는다. 어떤 이에겐 <자본론>이 ‘세상을 전쟁과 기아로 몰고 간 광기의 책’일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겐 ‘자본주의 어둠을 밝힌, 인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고전’일 수 있는 까닭이다. 그것이 바로 독서의 치명적인 매력이자 힘일 것이다.

14권의 책은 정치인, 민주화 운동가, 방송인 유시민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들이다. 젊은 시절, 정의에 대한 뜨거운 목마름을 불러일으킨 책도 있고, 인류 역사의 진보에 대한 굳은 믿음을 전해준 책도 있다. 또한 세상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도와준 책도 있었다.

다시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 그런 책들은 무엇이 있었을까. 나는 과연 그런 책들을 언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어떤 책이 나에게 양서이며, 어떤 책이 금서가 될 것인가.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어리석다. 하지만 유시민과 같은 친절한 선배들이 있기에 나의 독서는 앞으로도 더 즐겁고, 유쾌한 모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나만의 ‘삶의 지도’를 만들어준 책들을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다는, 그리고 그것을 소중히 갈무리해, 언젠가 신중히 책을 집어들 딸아이에게 슬며시 권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책,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대부분 이 세상이, 수많은 독자들이 그리고 거기에 권력이 결정하곤 한다. 물론 각각 모두 타당한 이유와 어쩔 수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 하나, 내 인생의 책은 바로 내가 선택한다는 점이다. 나에게 좋은 책은 오로지 내가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찰나와 같은 인생, 부디 좋은 책을 만나 행복하시라. 그리고 영혼을 더욱 풍요롭게 하시라.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과연 나의 선택인가, 무의식의 강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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