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진정한 천재가 나타났음은 바보들이 모조리 결탁하여 그에게 맞서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 조너선 스위프트

1976년,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1969년 서른 두 살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들이 남긴 소설 한 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 어떤 고난이라도 겪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던 중 뉴올리언스의 한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던 작가 워커 퍼시에게 아들의 원고를 소개했다.

얼떨결에 묵직한 원고 뭉치를 건네받은 워커 퍼시는 첫 몇 페이지를 읽고 글이 형편없다면 더 읽을 필요도 없이 정중히 죽은 소설가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려 했다. 출판이 어렵겠다고 말이다. 양심에 꺼릴 것도 없는 일이었다. 작가가 직접 홍보할 수도, 후속작이 나올 수도 없는 상황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기대할 수 없었던 여타 출판사들과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이 원고의 경우는 계속 읽었다.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처음에는 그만 읽어도 될 만큼 형편없는 원고가 아니어서 낙심한 채로,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짜릿한 흥미를 느끼면서, 그러다 점차 강도를 더해가는 흥분상태로, 급기야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나는 읽고 있었다. 이렇게 훌륭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의 눈물 나는 노력과 작품의 비범함을 알아본 퍼시의 중재로, 결국 작가 사후 11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소설. 바로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결탁>이다. 1980년 출판된 이 작품은 코믹 소설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981년 퓰리처상을 받았고, 2006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지난 25년 간 출간된 최고의 미국 소설’에 여섯 번째로 많은 지지를 얻었다. 이제 이 작품은 당당히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 존 케네디 툴, 『바보들의 결탁』, 도마뱀출판사, 2010. 12.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저자 존 케네디 툴은 조용한 외톨이었다. 문학적 재능이 넘치는 천재였지만, 가난과 고독,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절망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지나치게 기대를 걸었던 어머니와의 갈등도 그를 힘들게 했다. 사람들이 분명 인정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바보들의 결탁>은 그 어느 출판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이런저런 수많은 절망 사이에서 허우적대던 그는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자신의 차 안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바보들의 결탁>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워커 퍼시나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김선형 교수 모두 인정하는 바, 그 어떤 장르로도 구분이 불가능하며, 그 어떤 작품과도 다른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특징이다. 그 어떤 문학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지독히 지독한(!) 캐릭터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가 만들어내는 갖가지 소동을 따라가다 보면 당신 역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할 것이다.

나 역시 기존 문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정한 기준이랄까, 그것이 사정없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해야만 했다. 솔직히 이렇게 불쾌하고도, 유쾌하게 읽은 소설이 있었나 싶다. 장담하건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작품은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시를 배경무대로 삼고 있다. 존 케네디 툴의 고향이다. 툴은 자신의 고향이 가진 수많은 매력과 어둠 그리고 사람들의 삶 그 자체를 지독히도 세밀히 묘사한다. 오직 뉴올리언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 문화, 방언을 생생히 전달한다.

역자가 도저히 옮길 수 없었던 뉴올리언스 특유의 사투리도 이 작품의 커다란 성과 중 하나다. 이를테면 우리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를 매우 성실하고 완벽하게 작품 속에 녹여낸 것과 같다고 할까. 작품을 읽으면 1960년대 뉴올리언스의 밑바닥 인생들, 그들의 치열하고도 가난한, 그리고 뜨겁고도 축축한 삶들을 느낄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이 세상의 모든 악과 외로이 투쟁을 벌여나가는 우리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 라일리. 중세를 흠모하고 타락한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장문의 고발장을 쓰며, 동시에 만년 백수로 어머니에게 얹혀사는 우리의 주인공 이그네이셔스. 참다못한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드디어 취업전선에 뛰어든 그는 드디어 타락한 자본주의 체제와의 한 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과연 이 대책 없는 뚱보는 이 사회를 무너뜨릴 것인가!

책은 분명 어처구니없는 소동과 소극으로 범벅이 된 코미디다. 하지만 웃음 뒤에는 씁쓸함과 쓸쓸함이 함께 이어진다. 가슴이 저릿한 먹먹함도 느닷없이 덮쳐온다. 물론 이는 저자 존 케네디 툴의 쓸쓸했던 짧은 생이 작품과 겹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었던 2013년 8월이 아닌,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의 심정으로 다시 바라본 <바보들의 결탁>은 결코 같은 느낌일 수 없다.

온갖 소동을 일으키며, 뉴올리언스를 떠들썩하게 만들고자 했지만, 결국 하나도 제대로 이룬 것이 없는 이그네이셔스. 그와 함께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 속에서, 그들의 대화와 행동과 사건과 사건들 속에서, 나는 우습고도 슬픈 우리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이 슬픈 난장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 벌어지는, 그렇지만 무엇 하나 마음대로 화조차 낼 수 없는 상황.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뜯어 고쳐야 하는지, 난감하고 어지럽기만 한 이 세상.

빤한 미래에 신물이 올라오려 한다. 어찌어찌 덮고 어찌어찌 달래고 어찌어찌 윽박질러, 세월호의 눈물을 지우려 했던 이들. 사람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일어섰지만, 그로 인해 큰 손실을 입는 정치인, 관료, 기업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들은 다시 그들 일부에게 권력을 쥐어주었다.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이 어찌 슬픈 난장판이 아니겠나.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모르는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에게 들러붙어 연명하고 있는 벼슬아치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 어찌 우습고도 슬프지 않겠는가. 언론은 더 이상 썩을 수 없을 정도로 썩었고,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국민들의 남은 피 한 방울까지 짜내려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국제화, 경쟁력, 국민행복시대를 말하고 있는데, 이 어찌 우습고도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무능하고 거기에다 부패하기까지 한 권력, 그 권력의 찌꺼기를 받아먹으며 기생하는 언론, 지식인. 그리고 자식을 잃고 자신도 잃어버린 부모들.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죄인처럼 가슴 뜯으며 유가족들을 위해, 먼저 간 아이들을 위해 울고 기도하고 숨죽이고 있는 국민들.

지금 대한민국은, 여소야대가 어쩌고 떠드는 지금에도, 기가 막히게 우습고도 억장이 무너지게 슬픈, 개판, 난장판, 지옥이다. 이런 놀라운 시대에 <바보들의 결탁>은 어찌 보면 그저 무난한 코미디 한 편일 수도 있겠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