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부와 보수언론의 ‘신 북풍몰이’가 한창이다. 지난 8일 통일부의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입국 사실 발표를 시작으로 철 지난 북한 정찰총국 대좌급 인물의 망명, 북한 외교관들의 탈북 소식이 보수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통일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청와대의 발표 지시를 받아’ 집단 입국 하룻만에 이례적으로 이들의 소식과 사진이 공개됐고, 이어 그들의 발언까지 추가 공개됐다. 누가 봐도 총선용 북풍 소재로 써먹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탈북자들의 인권은 고사하고 중국에 남은 동료들의 신변안전마저 짓밟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탈북 브로커조차 흉내내기 어려운 역겨운 짓거리를 정부가 나서서 버젓이 벌이고 있다.

심지어 이들의 입국과정을 담은 사진은 가로와 세로 비율을 왜곡해 여 종업원들의 ‘롱다리’를 부각시켰다. 1987년 12월, KAL858기 사건의 주범이라는 김현희를 대통령 선거 하루 전에 입국시키며 ‘미모의 테러리스트’ 사진이 일간 신문 첫 면을 장식했던 악몽이 되살아난다. 북풍몰이라면 성마저 상품화하는 안전기획부의 피가 국가정보원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단 말인가?

이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KAL858기 사건을 ‘북괴의 테러 공작’으로 규정하고 ‘일부 (대선)후보’들을 규탄하는 소재로 활용키로 한 ‘무지개공작’이 존재했다고 2006년 발표했다. 20년만의 일이었다. KAL858기 사건은 사건 자체의 진위 여부를 떠나 주요 선거를 앞둔 북풍 공작의 전형임이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군사독재정권이나 안기부의 북풍 공작이 효과를 발휘하고 이후 ‘총풍 사건’으로 재현된 배경에는 김대중-김영삼 후보 단일화 실패라는 쓰라린 야권의 실책이 놓여있다. 온갖 부정선거과 북풍 공작에도 불구하고 야권후보 단일화 실패라는 쓰나미로 모든 상황이 종료됐던 것이다.

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 관련자가 북한에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총풍 사건’은 KAL858 사건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야권이 분열된 결과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아가 보수세력이 분단과 안보 문제를 얼마나 철저하게 국내정치의 목적을 위해 써먹을 수 있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같은 북풍몰이는 이후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북한 1번 어뢰’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점을 드러낸 2년전 세월호 사건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고난에 찬 민주화 과정을 거쳐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87년 체제’의 취약성과 분단 현실을 규정하고 있는 ‘53년 정전체제’의 극복 필요성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만은 않다. 87년 ‘무지개 공작’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김대중-김영삼 후보의 분열이라는 더 큰 무력감을 걷어내지 못했고, 이번 총선 역시 청와대가 통일부를 앞세운 북풍몰이에 나서고 있지만 야권의 분열이라는 깊은 골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저 자신은 그동안의 활동과 정책공약, 공천과정 등을 저나름으로 평가해서 가장 낫다 싶은 정당에 한 표를 주고, 나머지 한 표는 형세를 끝까지 관찰하다가 당선권에 제일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 야권의 지역구 후보에게 던질 작정”이라고 ‘깨끗한 두 표’의 향방을 제시했는데 참고할만 하다.

북풍몰이를 극복하고 야권의 분열을 넘어서는 일, 둘 다 쉽지 않은 숙제지만 신성한 한 표를 지닌 유권자 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역겨운 북풍몰이를 심판하고 실망스러운 야권분열을 뛰어넘는 한 표의 힘을 투표장에서 보여주자.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