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겸재 정선은 이 그림의 제목을 금강전도(金剛全圖)라고 붙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금강산이 불교성이 짙다고 해서 봉래산이라고 따로 불렀다. 봉래산은 신선들이 사는 전설 속의 공간이다. 당시 신선은 선비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금강산을 불교의 정토나 극락세상이 아닌 신선세계, 이상세계로 인식한 것이다.
그럼에도 선비 출신의 겸재 정선이 금강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금강은 불교용어이지만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사물을 뜻한다. 또한 전도(全圖)는 전모를 그린 그림, 혹은 완벽한 그림이라는 뜻이다.
금강과 전도(全圖)를 결합하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금강산그림’, 혹은 ‘완벽한 이상세계를 그린 그림’이 된다.
사실, 이런 해석은 잘못되었거나 의미 없는 잡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금강전도는 겸재 정선을 대표하는 그림이자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에 ‘완성된 그림, 완벽한 그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새로운 화풍을 창안하고 완성시킨 화가의 자부심이라고 여겨도 좋을 것이다.
진경산수화는 실경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풍경을 그린 것이다.
진경산수화는 조선중화사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화풍이다. 중국의 어디쯤 있다는 이상세계를 그린 것이 아니라 조선의 땅을 이상세계로 인식하고 수용한 결과이다.
금강전도를 보면 구체적인 이름을 가진 금강산을 직접 보고 관찰하여 사생을 했다. 이런 현실의 조각을 모아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린 것이다. 마치 비행기를 타고 본 것 같은 구도를 사용해서 금강산의 전모를 드러내고자 했다. 또한 암산과 토산의 적절한 배합, 심지어는 붓질의 차이를 통해 관념성을 극대화시켰다.
실경(實景)과 진경(眞景)을 미학적으로 해석하면 조금 복잡하다.
서양 철학의 핵심인 플라톤의 이데아론, 동양 철학의 주역과 뒤엉켜있다.
실경은 현실의 풍경이고 진경은 관념의 풍경이다. 실경은 눈에 보이고 진경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실경과 진경의 관계는 현상과 본질, 현실과 꿈, 그림자와 본체,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기(氣)와 이(理), 음(陰)과 양(陽)과 비슷하고 심지어는 디지털의 원리(o-x, on-off, open-close)와도 맥락이 연결된다.
사실, 이런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제나 철학과 삶의 중심이었다.
시대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실경의 관점이 우선하기도 하고 진경의 관점이 앞서 나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실경과 진경의 비율이다.
조선 초기에는 [몽유도원도]와 같은 관념적 그림인 진경이 주류였다. 그러다 조선 중기는 실제 경치를 보고 그리는 실경이 우세했고, 조선 말기에는 다시 관념적인 그림이 유행한다.
가장 이상적인 진경과 실경의 비율은 50대 50이다. 이것은 음양을 상징하는 태극 문양에 근거한 것이다. 실제 겸재 정선은 주역의 대가로 [도설경해]라는 주역해설서를 남겼던 학자였다.
진경산수화는 주변 나라에서 조선산수화(朝鮮山水畵)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독립적인 화풍이었던 것이다.
진경산수화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의 가치를 정확히 반영한 화풍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단순히 실경과 진경의 비율의 문제가 아니라 실경과 진경의 완벽한 조화를 뜻한다.
실경과 진경의 완벽한 조화는 현상과 본질, 꿈과 이상의 간격이 최대한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이러게 되면 사람들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고통에서 벗어난다. 현실의 활동은 곧바로 이상과 연결된다. 흔히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꿈을 가지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현실적 바탕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이다.
우리가 진경과 같은 이상의 세계를 살아가는지 아니면 실경과 같은 현실의 세상을 살아가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젊은이들이 꿈꾸던 미래를 포기하고 방구석으로 처박히는 현실, 기성세대가 알량한 재산과 권력을 미끼로 큰소리를 치며 안주하는 세상은 실경과 진경의 간격이 그만큼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진경과 실경 사이에 휴전선과 분단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