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봉도와 장생도가 결합한 그림이라는 뜻에서 오봉장생도라고 부른다. 오봉도에서 다섯 개의 봉우리와 양쪽의 폭포를 차용하고 나머지는 장생도의 요소로 채웠다. 그렇지만 오봉도보다는 장생도의 요소가 강하다.
하지만 의심쩍은 부분이 많다. 좌우의 끝부분이 너무 많이 잘려나갔다. 우리그림의 조형원리로 보면 사물을 이런 방식으로 자르지 않는다. 4폭 병풍그림인데, 실제 6폭이나 8폭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학과 거북이 표현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바다와 파도가 우측 끄트머리에 작게 표현한 것도 문제가 된다. 특히 이런 규모의 장생도라면 빠짐없이 표현하는 붉은 해가 없다. 혹시 유실된 좌우 부분에 그려져 있을 수도 있다.
조금 특이한 것은 짙푸른 색으로 칠한 하늘이다. 짙은 파란색이라기보다는 가물가물한 색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오봉도의 요소이긴 하다.
화면의 구성으로 보면 중요한 요소는 모두 표현되어 있기에 좌우로 한 폭 정도만 유실된 것으로 판단한다. 그렇게 되면 산봉우리가 한 두 개 더 표현되어야 하는데, 오봉도의 권위를 얻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잘라버렸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자료사진 - 심규섭]

[오봉도]는 왕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이다.
근정전을 비롯해 침소에 이르기까지 왕이 거처하는 어디든 [오봉도]가 있었다. 심지어는 죽은 왕의 위패를 모시던 종묘에도 설치했다.

나는 [오봉도]가 ‘이상세계를 구현하는 왕의 역할과 지위’를 뜻하는 특화된 그림이라고 해석한다.
우리그림에서 봉우리의 숫자만 가지고 제목을 만드는 전례가 없고 5라는 숫자가 오행론과도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왕의 상징하는 그림에 이렇게 허술한 제목을 붙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오봉도]의 진짜 제목은 [십장생도]라고 본다. 장생도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십장생도]는 그야말로 완성된 장생도이다. [오봉도]와 [십장생도]의 연관성은 넘쳐난다. [십장생도]를 바탕으로 왕의 권위와 역할에 맞게 창작한 것이 [오봉도]인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십장생도]로부터 [오봉도]가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과 변주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편의에 따라 [오봉도]로 지칭했다는 것은 바탕이 되는 [십장생도]와 대략적인 구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하늘에는 일월(日月)이 아니라 두 개의 해(아침 해와 낮 해)라고 추정한다.
이것은 일월이란 개념이 모호하거나 지극히 도교적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원나라 말기 중국의 홍건적이나 백련교도와 관련이 있는 일월교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일월교가 명나라를 세우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나 명나라 황제에 의해 금지된 종교인 것도 사실이다.
주역의 음양론에 의해 해를 양, 달을 음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음양론은 남녀, 찬 것과 뜨거운 것, 남극과 북극, 열림과 닫힘, 있거나 없는 것처럼 동격이면서 다른 성질을 가진 요소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지만 압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해와 달은 동격이 아니다. 해가 달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달이 해에게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 일월을 음양으로 해석하면 오히려 음양론 자체가 위험해진다.

▲ 오봉장생도/비단에 채색/157.8*138/19세기/고궁박물관.
이 작품은 오봉장생도로 분류되어있기는 하지만 장생도에 가까운 작품이다. 산봉우리가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는데 어쨌든 온전한 산봉우리가 다섯 개인 것은 맞다. 특이하게 붉은 해를 중앙에 배치하고 양쪽의 소나무와 폭포를 좌우대칭 형태로 구도를 잡았다. 궁중회화의 여러 요소를 차용하고 있으나 도화서 화원이 그렸다고 보기에는 수준이 떨어진다. 또한 학과 사슴, 거북, 바다와 파도의 표현에 비해 산과 소나무, 폭포 따위를 그리는 기량 차이가 확연하다. 이것은 여럿이 분업을 하여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유학적 가치를 몰랐기 때문에 하늘을 파란색으로 칠했고, 거북의 표현도 지나치게 도교적이다. 또한 바다, 육지, 하늘, 해라는 수직적인 화면 구도를 무리하게 적용시킨 것은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지전에 소속된 화공들이 협업을 하여 판매용으로 그린 것이 확실하다. [자료사진 - 심규섭]

궁중회화에서 해는 일반적인 해가 아니다.
태양을 절대적 존재나 신이라고 규정하지도 않았고 숭배하는 어떤 장치도 없다.
우리그림 속의 태양은 모두 아침 해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붉은 색으로 그린다. 아침 해의 상징은 시간의 영원성이다.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달의 보편적인 표현은 반달이나 초승달이며 노란색이다.
보름달이나 하얀색으로 그리면 태양과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왕의 위한 특화된 그림을 창안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좌우대칭 구도를 사용하다보니 우측의 붉은 해가 좌측의 하얀 해로 복사되었다는 조형적 추측이 합리적이다.

궁중회화를 담당했던 도화서에서도 일월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래서 조선 중기의 선비 중에는 일월의 표현이 근거 없다고 일축하는 기록도 있다. 또한 일월이 아예 없는 [오봉도]가 창작되기도 했다.

조선은 주자성리학을 중심으로 나라를 통치했던 문치, 학문의 나라였다.
절대적 존재인 신(神)을 숭배하지 않았고, 그 흔한 귀신도 없었다. 선비들은 점괘나 부적, 영물, 행운 따위를 믿지 않았다.
유학의 당수인 조광조는 중종 때 덕과 예를 중심으로 유학적 이상세계, 즉 자연의 질서에 기반 한 인간존엄의 정치를 설파했다. 또한 도교신앙의 제사를 주관하는 관청인 소격서(昭格署)를 미신으로 몰아 혁파해 버렸는데 성리학적 의례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일월이나 다섯 개의 봉우리에 근거한 음양오행론으로 [오봉도]를 해석하면 도교나 미신의 미망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조선시대 왕을 상징하는 [오봉도]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가 아니면 도교적으로 해석하는가에 따라 조선의 정체성이 달라진다.

[오봉장생도]는 [오봉도]와 [장생도]를 결합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작품은 모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장생도의 구도와 청록산수기법이 활용된 점은 궁중회화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나 도화서나 자비대령화원에서 조직적으로 창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마도 전직 궁중화원이나 제자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창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오봉장생도]는 [오봉도]와 [십장생도]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이다.
[오봉도]가 [십장생도]를 바탕으로 양식화, 정형화되었기 때문에 반대로 [오봉도]를 풀어내어 장생도처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오봉장생도]는 [오봉도]의 권위를 가지면서도 [장생도]의 풍부한 내용을 결합할 수 있는 매력적인 형식인데, 우리그림을 창작하고자 하는 화가들에게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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