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습니다.

어떤 죽음을 접해 이는 마음이 있다면, 이 경우는 “아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다른 뜻이 아닙니다. 고인이 유능한 대남사업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남측으로서는 훌륭한 대화 파트너를 잃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가 남북관계에서 해결사 역할을 했음은 그의 경력이 말해줍니다.

2003년인가요, 당시 직책이 같은 전임 김용순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같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한동안 대남담당 실세로 누가 나올까 궁금해 했는데 다름 아닌 김양건 비서였습니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때 김용순 비서가 동석했듯이,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때 김양건 비서가 동석했던 게 아직 눈에 선합니다.

2013년 봄 한반도 위기 과정에서 그 유탄을 맞고 개성공단이 가동 10년 만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4월 초순경, 김양건 비서가 개성공단에 나타나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이 밝힌 ‘개성공단 인질사태’, ‘군사적 조치’를 빌미삼아 개성공단 잠정 중단과 북측 근로자 전원 철수를 선언해 강골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 비서는 대화와 해결사의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김 비서는 지난해 10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와 함께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차 전격 방남해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 등과의 남북 고위급 대표단 회담에서 그동안 남측이 제안했던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수용한 바 있으며, 지난 8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함께 김관진 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을 상대로 이른바 ‘2+2 고위급 접촉’을 통해 8.25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북측 내에서도 김 비서의 비중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데서도 잘 나타납니다. 북측은 부고에서 김 비서에 대해 “김정은 동지의 가장 가까운 전우, 견실한 혁명동지”라면서 “우리 당의 자주적인 조국통일정책을 실현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고 기렸습니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은 30일 고인의 빈소를 찾아 “함께 손잡고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간다는 말도 없이 야속하게 떠나갔다”고는 “금시라도 이름을 부르면 눈을 뜨고 일어날 것만 같다”고 깊은 애도를 표했습니다.

이런 김양건 비서 급서에 즈음해 우리 정부가 30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의 전통문으로 조의를 표명한 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홍 장관이 북측 당 통일전선부 앞으로 “지난 8월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함께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낸 김양건 당 비서 및 통일전선부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내용의 전통문을 발송했다고 합니다.

남측과 관계를 맺었던 북측 인사의 부고에 우리 정부가 조의를 표명하는 건 자연스런 일입니다. 2003년 10월 김용순 노동당 비서에 이어, 2005년 10월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2006년 8월 림동옥 통일전선부장, 2007년 1월 백남순 외무상 그리고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시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조의를 표시한 바 있습니다.

이제 주목되는 것은 북한의 대남관계를 총괄하는 김양건 비서가 급서함에 따라 대남정책에 미칠 영향과 후임자 인선입니다. 대남정책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후임자가 당장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남북이 만나다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데 이를 풀 수 있는 해결사가 자꾸 세상을 뜬다는 게 영 안타깝고 아까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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