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1년에 출간되는 책이 100만 종. 한국에서 출간되는 책은 4만 종 이상. 하루에는 1,000종 이상. 부수로는 1억 부 이상. 그 대부분은 국가자격시험을 비롯한 각종 시험을 위한 문제집, 수험서, 참고서.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서적은 130만종. 한편 보통 사람이 일하고 공부하고 밥 먹고 잠자고 남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 매일 다섯 권씩 책을 읽는다면 1년에 1,825권. 이 짓을 100년간 하면 18만 2,500권. (중략) 아무도 읽지 못한, 띠지도 벗기지 않은 1판 1쇄의 책들이, 제지 공장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책의 지옥이죠.”

뭐, 이처럼 자세히 알아본 것은 아니지만, 이 지구상에서 매일 얼마나 많은 책이 태어나고 사라질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그나마 도중에 멈추지 않고 근면하게(!) 지속하고 있는 유일한 취미가 독서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엔 저자의 말처럼 하늘의 별만큼 많은 책들이 존재할 터인데, 거기에 매 초마다 또 얼마나 많은 책들이 보태어질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어느 사진작가가 자신의 사진을 위해 200년이 넘은 나무를 무참히 베어버렸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의 무참한 정신상태 역시 심히 측은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나무들을 순전히 우리만을 위해 베어내고 있는지 생각조차하기 두렵기 때문이었다. 저 수많은 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가 매일 매일 무심코 버리는 수많은 종이들을 만들기 위해, 또 이런 저런 쓰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지금도 베어지고 있을까.

때문이다. 책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겠지만, 우리는 항상 그 별들이 아름답고 또한 다른 이들을 비출 수 있는 것이기를 바라며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쓰레기와 같은 책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소중한 나무를 마구 베어버리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는, 아주 당연한 바람을 가져본다. 그리고 아주 먼 훗날이 될 지도 모르지만, 만약 내가 책을 펴내는 날이 온다면, 부디 그 책은 어둠이 아닌 빛을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갖는다.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만.

▲ 오수완,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뿔, 2010.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 소설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책을 위한 찬가이자, 책들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들의 이야기이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책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한 곧 사라질 책들, 또 곧 태어날 책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놈의 직업병이 문제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작가의 길고 긴 문장의 호흡에 적응키 어려웠다는 고백을 해야겠다. 무조건 문장은 간결하고, 가능하면 짧은 것이 좋다는 기자로서의 강박관념이 감히 소설이라는 전혀 다른 글에까지 적용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글에 대한 평가나 기준은 그야말로 ‘엿 장수 맘’이 아니던가. 그 엿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받아들이고, 달디 달게 먹는가는 다른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책은 매우 흥미롭다. 저자의 해박함(이 정도의 단어로 표현이 될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독서량을 가늠케 만드는)에 감탄하고, 또한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며 다시 한 번 감탄. 어떤 독자들은 결말이 조금 허무하다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그리 나쁜 마지막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끝은 끝이 아닐 것이기에.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책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전직 책 사냥꾼 반디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 ‘소리’를 위해 의뢰를 맡게 된다. 그리고 책을 찾아 단서를 찾아 헤매는 동안, 점점 그 책이 또 하나의 책을 찾기 위한 단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곧 무언가 더 큰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과 만남이 이어지게 된다.

그가 찾으려 한 책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 반디가 겪은 모든 일들이 애초 일어나기는 한 일이었을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의 존재함.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책에 대한, 출판사 등 책으로 먹고 사는 이들에 대한 극심한 탄압이 절정을 이룬 때로 표현된다. 출판사들을 규탄하는 관제데모가 벌어지고, 책들을 모아 불태우는 퍼포먼스가 벌어진다. 정부는 강력한 정책으로 출판문화를 규제 혹은 변화시키려 하고, 책이 사라질수록, 오히려 어떤 책들은 더 높은 가격에 어둠 속에서 거래된다. 허구의 시대이지만, 과연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그 허구가 허구인지도 역시 나는 어지럽다.

모든 권력은 문화를 통제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거기에 빌붙어 열심히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항상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허영과 욕망을 온전히 다 바치며, 찰나의 존재감, 찰나의 권력에 취한다. 그리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사라진다.

그동안 그리 많은 책을 읽지는 못하였다. 물론 책의 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책들을 어설프게나마 읽다보면 쓰레기를 발견하는 일도 가끔 발생하기 마련이다. 정치적 욕망을 위한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찬 책, 자신의 어설픈 지식을 늘어놓으며 결국은 되도 않는 훈계나 일장 연설로 마감하는 책, 처음부터 ‘난 돈을 벌고 싶어 미치겠어!’를 노골적으로 선포하며, 독자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자기계발서, 투자안내서 등 그리 반갑지 않은 책들도 적지 않게 만났던 것 같다. 물론, 그것도 누가 어떠한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겠다.

책을 주제로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진지하게 생각게 하는 작품은 적어도, 무지한 나로서는 처음이었다. 책은 과연 나에게 무엇인지, 인간에게 책은 어떤 존재이자 의미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책을 만들고 어떤 책을 버리며 어떤 책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작지만 신념을 가지고 의미 있는 책들을 펴내는 소중한 출판사들이 있다. 물론 그 반대가 더 많지만. 돈이 된다면 박근혜든, 박정희든 그 어떤 무엇이 되던, 높이 칭송하고 떠받들며 온갖 역겨운 소리들을 지껄이는 책들, 우리들의 마음속에 욕망과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책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펴내는 그런 곳들도 여전히 많다. 그리고 그런 곳들이 그렇지 않은 곳들보다 많은 돈을 버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책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많고 우리는 그 많은 별 중 하나하나를 우리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은 언제나 자유로울 것이며, 또한 무거울 것이다. 우리의 선택으로 밤하늘은 아름다울 수도 있고, 암흑 그 자체가 될지도 모른다.

책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애증과 욕망과 고뇌가 모두 다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가 책이라는 화두를 오래 붙잡으며, 우리에게 또 다른 책 이야기를 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그의 후속작을 살펴보다 이미 현실이 되었음을 확인했다.

소설이 전해주는 재미와 감동 그리고 그 이후의 난처함까지 온전히 전해준 작품이다. 즐겁고도 난처한 경험이었다.

어찌 하다 보니 주제넘게도 서른 편이 넘는 서평을 부끄러움 없이 올렸다. 염치없는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새해에는 부디 해의 이름과 같은 일들이 덜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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