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12월만 되면 민족갈등의 진원지로 부각되던 서부전선 최전방 애기봉 등탑이 올해에는 켜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북측이 함께 등탑을 켤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북측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우려가 일단 사라져 다행입니다.

세밑에 다소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같은 일은 지난 21일 애기봉 등탑 점등과 관련, 갈등을 빚어온 진보·보수 기독교계와 김포주민대책위원회가 합의를 함으로써 이뤄졌습니다.

이들은 △남북 평화의 등탑을 남측 애기봉과 북측 해물마을에 동시에 지어줄 것을 양쪽 정부에 요구하고, △두 탑이 동시에 켜질 때까지 남쪽 애기봉 등탑을 점등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며, △또 ‘동시 점등’이전까지는 진보·보수 단체가 함께 애기봉 기도회를 여는 등 ‘애기봉의 평화’를 지키기로 다짐했습니다. ‘상호 양보와 동시 이행’의 해법이 돋보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10년부터 성탄절 무렵마다 격한 갈등을 빚어온 애기봉입니다. 그런데 5년 만인 올해 성탄절에는 진보·보수 교계가 애기봉 점등행사를 ‘애기봉 평화기도회’로 대체해 공동 개최키로 했습니다. 물론 북측의 입장을 알 수 없지만, 남측 진보·보수 교계의 합의로 예전보다 민족갈등의 소지가 현저히 낮아진 것은 맞습니다.

애기봉 등탑 역사는 이렇습니다. 1971년 애기봉에 처음 등탑이 설치됐다가 참여정부 때인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 활동 중단과 선전 수단 제거’ 합의에 따라 점등이 중단된 것입니다. 그러나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이 나자 정부가 허용해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다시 점등이 시작됐습니다. 이에 등탑 점등을 둘러싸고 남북갈등과 남측 내 보혁갈등이 첨예화되자 국방부가 지난해 10월 안전을 이유로 등탑을 철거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애기봉 등탑 철거 소식을 듣고 ‘왜 등탑을 없앴느냐’며 진노와 질타를 한 것으로 전해지자 국방부 측이 애기봉 등탑을 철거한 자리에 대형 전광판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혀, 북측의 더 큰 반발을 초래할 우려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진보·보수 기독교계와 김포주민대책위원회의 합의로 애기봉 등탑 점등을 둘러싼 남측 내 소모전이 없어졌으며, 특히 남북 간 민족갈등의 소지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지금 한반도에는 몇 개의 갈등이 있습니다. 북.미 간에는 북한 측의 평화협정 회담 제의와 미국 측의 비핵화 합의 이행 요구로 서로 평행선을 긋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 간에는 지난 12월 11일 차관급 당국회담에서도 드러났듯이, 관계개선 문제를 놓고 남측은 이산가족 상봉을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해 결렬된 바 있습니다.

진보·보수 기독교계가 애기봉 등탑 점등 문제를 풀어 민족갈등의 소지를 줄였듯이 북한과 미국은 ‘평화협정 회담-비핵화 이행’ 문제를, 남측과 북측도 ‘이산가족 상봉-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지요. 북미와 남북 간에도, 진보·보수 기독교계가 애기봉 등탑 합의에서 보여준 ‘상호 양보와 동시 이행’ 해법이 절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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