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권 /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박사과정


책, 350쪽에 이런 문장이 있다. “임정(임시정부)의 김구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김일성에게 사람을 보내 그 예를 다했고, 당시 금주(禁酒) 중이었던 여운형은 김구와 같은 방식으로는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성이 차지 않아 그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보천보 현장으로 달려갔고 …” 보천보 전투가 실제 김일성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보천보 전투는 남한역사에서 배제된 항일혁명역사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 『수령국가』 표지, 김광수 저, 도서출판 선인, 2015.10.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분단된 남과 북. 각자 정부를 구성하고 전쟁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충돌해오고 있다. 좁은 한반도에 전쟁을 치른 두 적대국이 휴전이라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70년 동안 체제대결을 벌이며 공존해 온 것이다. 분단과 전쟁이 낳은 결과이자 극도의 불안과 증오심으로 인해 두 개의 비정상 국가가 만들어 졌고, 그렇게 현존하는 ‘남과 북’이 되었다.

미국이라는 동맹의 덫에 포획된 친미국가. 천민자본주의와 반공 이념이 곧 국가이념으로 일체화된 철저한 반공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 종북, 반북 담론의 광기에 휩쓸려 형식적 민주주의마저 무너지며 역사적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의 바닥에는 분단체제가 존재하고 있다.

미국과의 투쟁을 혁명과업으로 맹세한 반미국가. 중국과 소련의 틈바구니에서 자주를 선언하고 ‘예외국가’로서 수령의 유일지도체제를 수립한 북한. 전방위적인 고립과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3대째 권력을 승계하고 있는 현실도 분단체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분단과 전쟁의 후유증 속에서 성장한 남과 북의 두 체제는 이란성 쌍둥이와도 같다. 같은 역사와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래서 서로를 증오하는 쌍둥이. 분단체제 하에서 형성된 서로의 정치체제는 서로의 몸에 새겨진 흉터와 다름없다. 70년 세월이 쌓은 뿌리 깊은 상처와 증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 책 ‘수령국가’는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수령’과 ‘수령체제’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수령체제 이해하기를 제안하며 책의 첫 페이지에 ‘수령국가’를 정면으로 해독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수령체제: 과연 북한식 사회주의인가?

저자는 북한의 정치체제를 전체주의, 전제주의, 유교주의 등으로 설명하는 경향에 대해 북한에 대한 포비아(phobia)적 증상으로, 이미 정해진 결론을 위해 과정을 강박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인식의 근원에는 냉전적 적대감이 존재하고 있으며 열린 시각으로 북한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냉전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또한 북한의 수령체제와 권력승계를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경험과 비교하며 사회주의 이론의 틀 안에서 설명하고 있다. 북한만이 가지는 특수성이 존재하지만, 사회주의 이론 및 역사적 경험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의 ‘수령체제’는 사회주의의 보편적 이론과 경험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수령체제라는 북한적 특수성이 생겨난 과정을 역사적으로 이해할 때 북한적 특수성과 보편적인 사회주의 이론과 경험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수령: 사회정치적 생명의 어버이

북한의 수령은 사상적 영도자를 의미한다. 국가나 당의 직책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은 수령의 지위는 ‘근로 인민대중의 최고 뇌수이며, 통일단결의 중심이며 혁명투쟁의 최고영도자’이며, 수령의 역할은 ‘지도사상을 창시하고, 혁명역량을 마련하여 대중의 혁명투쟁을 승리의 길로 이끌고 수령의 후계자를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체사상이 규정한 수령의 지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요지는 이렇다. 인간에게는 유한한 육체적 생명보다 무한한 사회정치적 생명이 더 귀중하며, 사회정치적 생명은 수령이 영도하는 당의 지도 아래 혁명활동을 진행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사회정치적 생명을 부여해주는 주체는 바로 수령이다. 즉, 사회정치적 생명의 어버이가 바로 수령인 것이다. 또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은 한 개인이 뇌수-몸통․심장-팔다리로 이뤄지듯이 한 국가는 수령-당-인민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수령이 주체사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 헌법과 조선로동당 규약은 수령이 최고지도자이며 당과 국가는 수령의 지도아래 활동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체제 안에서의 작동원리와 방식을 통해 수령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수령체제 이해하기
 
이 책은 북한의 수령과 수령체제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령과 수령체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들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방대한 내용과 수많은 인용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북한의 입장을 설명하는 내용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방대한 내용을, 다양한 입장에서, 집요하게 추려낸 저자의 노력과 집요함에 대해서는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수령국가를 정면으로 해독하겠다는 선언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이토록 집요하게 ‘수령’이라는 주제를 파고든 이유는 북한의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수령’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북한의 ‘수령’을 알아야만 한다는 그의 지론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저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수령체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도 완전한 이해란 있을 수 없으며 완전한 이해가 목적일 수도 없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한 것이고 끝없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상대를 완전하게 이해했다고 자만하는 순간 관계의 발전도 끝이다. 오늘 우리는 ‘통일 대박’에 취해 북한을 잘 알고 있다고 자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이 책을 앞에 두고 깊이 고민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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