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 인간은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또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태생적인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협력하기 위해 노동을 한다.”

일을 하고 있어도, 일을 하지 않아도 불안한 시대다. 취업준비생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탄생한지 이미 오래고, 과연 내가 무엇 때문에, 왜 일을 하는지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의 노동이 좋은 노동인지, 혹은 나쁜 것인지 생각할 여유는, 물론 없다.

▲ E. F. 슈마허, 박혜영 옮김, 『굿 워크』, 느린걸음, 2011.10. [자료사진 - 통일뉴스]

‘역사상 가장 창조적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슈마허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릇된 가치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했던 선구자적 인물이다. 현대 산업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 죄악, 즉 종교화되어버린 경제성장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정작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 되어 버린 인간의 본성, 행복을 되찾을 것을 제안한다.

그는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지금의 모순과 고통을 예언했던 ‘특별한’ 이였다. 그는 현대 문명의 가장 큰 죄악이 인간의 노동을 파괴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책은 그가 눈을 감은 1977년까지 미국 전역을 돌며 강연했던 내용을 사후에 정리했다. 마치 강연장에 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강연을 대화체 그대로 책에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책의 곳곳에는 그의 성찰과 지혜와 철학이 빛을 발한다. 규모,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외눈으로는 그의 메시지가 다소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말한 대로 ‘파국’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고,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한 세대라 할 수 있는 30년을 훌쩍 넘겨 전해지는 그의 메시지는, 이 세상이 뒤틀린 딱 그만큼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좋은 노동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좋은 교육이란 무엇이어야 할까? 슈마허의 다음과 같은 메시지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지금 젊은이들이 갈망하는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일부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가면이 아니라 진짜 인간을 상대하고 싶다.”

말년에 교육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슈마허는 “노동이란 삶의 즐거움이자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노동은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점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득 생각해본다. 지금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무의미’하다못해 매우 ‘나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과연 그들은 자신의 노동으로 인해 고통을 입을 이들을 생각해 봤을까. 우리 사회는 점점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고, 착취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변태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정말 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오로지 지식의 축적으로만 학생들을 평가하고 줄 세우는 시스템 속에서 과연 아이들은 자신의 공부가, 자신의 노동이 어떠해야 한다는 자각을 할 수 있을까. 오로지 타인을 누르고 올라서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현실의 공포가 더 강하게 그들을 억누르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 교육은 지금 정상일까.

정직한 노동이 천시받고, 세습귀족들이 정당한 노동을 욕보이는 시대다. 가진 자들의 횡포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그들에게 끝은 보이지 않는다. 대한항공 후진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대한민국 지도층, 지배계급의 본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그들은 타인을 인격적 존재로 생각하기보다는 마치 노예처럼 다룬다. 그런 이들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는 것은 나름 아닌 우리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선출한 정부 권력이다.

규모에 압도당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노동을 거부하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적정한 기술을 통해 결국 좋은 노동, 좋은 삶을 이뤄낼 수 있다는 슈마허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단순하고도 명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물질의 축적과 소비의 무한한 반복으로 이 세상이 지탱될 수는 없다. 한 번 소비되면 다시는 재생될 수 없는 화석연료를 마구 낭비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결국 파국을 향해 치닫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속도를 더 내려한다. 흡사 지옥의 끝판을 보자는 것처럼 보인다.

매우 적긴 하지만, 더구나 지금과 같은 시대엔 더욱 찾기 힘들지만, 분명 더 나은 삶을 위한 지혜를 가진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느냐는 온전히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슈마허의 철학과 사상이 여전히 울림을 주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그와 같은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 어떻게 비관하든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파국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해도, 도저히 인간에게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해도, 멈춤 없이 생각하고 또 행동해야 할 이유다. 좋은 노동은 결국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전염성은 생각보다 클 것이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을 다시금 진정한 노동으로 이끄는 시대, 임금이 아닌 노동 그 자체로 자신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시대, 그리고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진정한 교육. 그것은 우리의 손으로부터,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아쉽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책임감과 고귀함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타인을 숫자로 평가하는 비정상적 사회에서 최대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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