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성령(杜城令) 이암(李巖)(1499~?)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증손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림을 잘 그려 중종의 어진을 그리는데 뽑혔다고 한다. 직접 그림에 참여했는지 아니면 감독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남겨진 그림으로 보자면, 이암은 동물(영모) 화가이다.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새를 잘 그렸다. 특히 귀여운 강아지의 표현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라고 평가받는다. 이후 고양이를 잘 그려 변고양이란 별명을 얻은 숙종 때의 화원 변상벽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개를 애완용으로 키웠다는 기록은 없다. 개는 집을 지키거나, 동시에 식용이었다.
소는 농사에 꼭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했기에 당연히 먹지 않았고, 돼지의 주요 먹이였던 인분을 농사용 거름으로 활용하면서 아예 사육을 하지 않았다.
소나 돼지를 먹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개와 닭은 가장 일반적인 단백질 보급원이었다.
고양이를 애완용으로 키웠다는 기록은 있지만 주로 왕실에 국한되었다.또한 고양이에 붙은 상징은 고작 ‘장수축원’이 전부였다. 다른 말로 유학적 상징을 얻지 못했다는 말이다. 고양이에게 붙은 [장수축원]도 고양이의 생태적 특성에 따른 상징도 아니고 전설이나 고사(故事)에 따른 것도 아니다. 그저 고양이를 뜻하는 한자 묘(猫)가 70세 노인을 뜻하는 중국어인 모와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문자유희]에 다른 상징법이라고 한다.
또한 개에게는 보통 주인에 복종하는 성질 때문에 뭔가를 지키는 상징이 붙는다. 민화에서는 사악한 것으로부터 재물이나 건강을 지키는 벽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닭이나 까치호랑이 그림처럼 세화의 단골 소재였다.
하지만 이런 도교적인 내용은 선비들에게 수용되지 않는다. 개 그림은 꾸준히 그려졌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다.
유학은 동물적 삶과 인간적 삶을 철저히 구분했다. 동물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원초적 욕망에만 충실 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개는 인간과 가까워 생태성이 자세하게 관찰되었다. 어미나 형제와 교미하고 인분을 먹고, 먹이만 주면 누구나 따르는 개의 특성을 선비들이 좋아했을 리가 없다. 오히려 예법을 지키지 못하고 염치가 없는 사람을 개, 돼지에 비유해 멸시했다.
우리그림에서 궁중채색화의 상징은 명쾌하다. 그것은 바로 ‘생명력이 풍부한 이상세계’이다. 선비들이 좋아했던 수묵산수화의 내용은 ‘엄격한 예법과 자발적 청빈이 만들어 내는 이상세계’이다. 철저히 인문학적 관점의 그림인 셈이다.
그럼에도 ‘출세, 장수, 풍요’와 같은 도교적 내용을 담은 그림은 꾸준히 창작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는 ‘출세, 장수, 풍요’는 ‘풍부한 생명력’의 사회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인간은 출세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높인다. 또한 장수는 크고 긴 사회적 생명활동을 뜻하고 풍요는 그야말로 생명활동을 풍성하게 한다.
그렇지만 선비들은 이러한 ‘출세, 장수, 풍요’를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자칫 허영과 미망에 빠질 수 있고 반사회적, 반자연적인 문제와 만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자유희’라는 방식으로 내용을 숨긴 것이다. 이것 때문에 우리그림의 상징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100여 년이 걸렸다.
또 하나는 중국과의 관계 때문이다.조선은 명과 청이라는 두 개의 중국과 관계를 맺었다. 유학이 중국에서 유래한 것은 맞지만 수많은 민족과 세력에 존재했던 중국에서의 발전은 한계가 있었다. 특히 유목을 했던 만주족의 청나라는 학문적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아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구현하는 도교가 발전했다. 도교는 그야말로 ‘부귀, 장수, 건강, 출세, 가정화목’을 기원하는 구복신앙이다.
이러한 청나라의 도교문화를 거부할 수 없었던 조선의 선비들은 하나의 그림에 두 가지의 내용을 중복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이런 경향이 강해져 최종에는 민화를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특별히 인문학적 내용이 없는 개와 고양이를 꾸준히 그렸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양이는 장수축원이라는 도교적 내용을 숨기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고양이의 특성은 장수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들과 친하고 자세히 관찰되는 동물이어서 그림의 소재로 적합했다.
개도 인간과 친숙하면서 동물성단백질을 제공하는 고마운 존재였다. 예로부터 인간과 가까운 동물은 모두 그림에 등장하는 호사를 누린다. 개를 상징하는 ‘지킬 수(守)’가 선비의 양심과 신념을 지키는 상징으로 승격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무시할만한 소재는 아니었다.
시대가 변해서 지금은 개와 고양이의 전성기이다.
개와 고양이를 식용으로 사용하거나 죽이는 것은 문화적으로 금지되었고 ‘개 팔자, 상 팔자’라는 속담은 현실이 되었다.
그러면서 개와 고양이에게 붙었던 장수축원과 벽사의 뜻은 사라지고 풍요와 여유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