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88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거산(巨山)이라는 호처럼 그는 민주화의 큰 산이었다. 군부와 손잡은 3당통합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유신독재에 저항한 상징이었다.

그의 서거를 두고 최근 언론들이 북한의 조전 발송 여부에 주목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조전을 보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는 조문단까지 파견했다는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조전을 보내고 조문단을 파견한 이유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 양 대통령과 만났기 때문이다. 또한 그 만남은 남북화해의 산물인 '6.15남북공동선언', '10.4선언'에 서명한, 단순한 대면이 아니었다.

북한은 6.15선언, 10.4선언 서명 이후 이를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금과옥조로 삼고 있다. 그리고 지키고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들의 최고 존엄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손을 맞잡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조전은 물론 조문단도 파견한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달랐다. "어떤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라고 한 취임 일성은 북핵문제에 대처한 대북강경책으로 빛이 바랬다. 1994년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목전에 두고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볼모로 잡히지 않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고 '조문파동'에 공권력을 휘둘렀다.

그랬던 그에게 '문민 대결광'이라고 비난하는 북한이 조전을 보낼 리 만무하다. 그리고 북한 언론들이 부고 기사를 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일부 언론은 'YS 마지막 가는 길도 불편하게 만든다'라고 비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조전을 보내고 조문단을 파견했다는 말인가. 우리도 하지 않은 일을 북한은 반드시 해야할 의무라도 있는가.

오히려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는 조문파동으로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맞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에는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답례라는 조건으로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의 조문방북을 허용했을 뿐이다.

'요단강을 건너가는' 뱃길에 오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우째 이런 일이..."라고 탄식할 노릇이다. 고인의 영면을 두고 북한을 비난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과연 고인을 위함인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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